방명록을 남겨주세요!

  1. 서산문화원 2017.03.23 09:46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서산문화원 강현숙 주임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선생님 고견이 담긴 책자들을 보고 원고의뢰 건으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저는 서산문화원에서 매달 발간되는 서산문화원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혹시 책자에 선생님의 고품격 원고를 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주로 역사와 문화 관련된 내용을 많이 실으며 매달 1800부가 발간되어 발송되고 있습니다
    고료가 적어서 선생님이 수락해 주실지가 관건이네요 ㅜㅜ
    분량은 원고지 15매 내외이며 고료는 원고지 매당 오천원입니다
    혹시 원고청탁이 가능하시다면 답변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회신 : seosan5050@kccf.or.kr
    문의 : 041-669-5050

    서산문화원 강현숙 올림

  2. 정기영 2017.01.26 13:43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0.008cm의 백운모 장식품을 보고 놀랐습니다. 백제시대에 백운모를 이용하여 저런 장식품을 만들 생각을 했다니. 운모에는 백운모와 흑운모 두 종류가 있는데, 색조로 보아선 흑운모로 보이는데,,, 감정은 뭐 잘되었겠죠. 그리고 0.0008cm 두께의 백운모판을 얻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마치 송판이 결따라 잘 쪼개지듯이 백운모도 벽개(cleavage)를 따라 얇게 잘 쪼개지는 성질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뭔가 공구를 써서 가공한 것이 아니라 얇은 판으로 쪼개서 뜯어낸 것이지요..
    광물 연구자

  3. 김진희 2016.12.09 19:30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사라바! 살아서 다시 봐!… 일본 난고손 1300여년 이어온 백제왕의 전설을 만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travel/khan_art_view.html?artid=201402192127515&code=900306#replyArea#csidx3ce2570c5015b9a8a4b766bcdefdcc3

    기사를 보고 방명록을 남겨요.~ 저는 2017년 1월19일~22일 있을 스와스마츠리 축제탐방을 가려고 하는 대학원생입니다.~ 저희 교수님 탕방팀이 미야자키현에서 난고손까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축제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궁금해서 여쭤보고싶어요~ ^_^

    • Favicon of http://leekihwan.khan.kr 이기환기자 2016.12.12 10:16 신고  수정/삭제

      제가 갈 때 행사에 관심을 갖고 답사를 주도하신 분은 도서출판 주류성의 대표이자 강남문화원장인 최병식 사장입니다. 그분께 여쭤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02-3481-1024가 주류성 출판사 번호입니다.

  4. Favicon of http://pt10202003.tistory.com pt10202003 2016.11.27 14:33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편 기황후가 공녀 폐지를 했느니 입성론을 막았느니 고려양의 시초네 뭐네 하는 주장들이 존재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먼저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기황후는 고려 출신이면서도 고려의 독립성을 부정한 친원 세력의 배후이자 중심인물"이라고 말했다. 순제 때 원으로 보내는 공녀가 중단된 사실을 들어 기황후가 '공녀 중단'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가 공녀 중단에 기여했다는 기록은 없다"면서 "당시 관점에서나 지금 관점에서나 기황후가 고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부분은 없다"고 단언했다.[7]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정책실장으로 재직중인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이숙인 교수는 “고려 때 기황후를 모델로 해 공녀가 더 늘었다”며 “기황후가 당시 권력 기반을 위해 더 많은 고려 사람들을 원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과 원나라 조정 관리들 사이에서는 고려 공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8] 게다가 1343년(충혜왕 복위 4) 역시 원나라에서 이운(李芸)·조익청(曹益淸)·기철(奇轍) 등이 제4차 입성책동을 일으켰다. [9] 동생이 입성론을 일으키는데도 기황후가 이를 막으려 했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자기가 불리하거나 필요할 때 권력자에게 또 다른 공녀를 뇌물로 갖다바치고, 이곡이 순제에 상소를 넣어 중지시켰으나 기황후는 오히려 박불화를 시켜서 공녀를 계속 보내라고 독촉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무튼 궁극적으로 그녀가 황후로 있던 시기 말기는 원 제국 자체가 더 이상 피지배 민족들을 억압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여러 어려운 요구를 하기 어렵고 본국 관리도 힘들어졌기 때문에 저절로 여러 요구가 사라진 것이다. 이를 왜곡해서 해석하여 위와 같은 사실를 왜곡하는 주장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고려양 또한 수많은 환관, 공녀들이 끌려가서 저절로 퍼진 것이고 기황후는 그 공녀의 극히 일부였을 뿐이다.

  5. Favicon of http://pt10202003.tistory.com pt10202003 2016.09.23 23:01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제발 매국노 애국자 만드는 역사왜곡 하지 마세요!
    선생님 기황후 글 중에
    "기황후는 고려판 한류의 원조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는 어떻든 훗날 공녀제도를 폐지했고 고려를 원나라의 지방성(省)으로 삼으려는 정책을 반대하기도 했다."
    "기황후는 몽골에 고려판 한류를 심은 공신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기황후가 퍼뜨린「고려판 한류」인 셈이다."
    모두 새빨간 거짓입니다!
    이 글을 보세요. 같은 경향신문 기사도 있네요.
    기황후가 공녀 폐지를 했느니 입성론을 막았느니 하는 소리들이 존재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먼저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04/2014030404668.html를 보면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기황후는 고려 출신이면서도 고려의 독립성을 부정한 친원 세력의 배후이자 중심인물"이라고 말했다. 순제 때 원으로 보내는 공녀가 중단된 사실을 들어 기황후가 '공녀 중단'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가 공녀 중단에 기여했다는 기록은 없다"면서 "당시 관점에서나 지금 관점에서나 기황후가 고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부분은 없다"고 단언했다. 뿐만 아니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292016531&code=960801를 보면,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정책실장으로 재직중인 이강한 교수는 “기황후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이숙인 교수는 “고려 때 기황후를 모델로 해 공녀가 더 늘었다”며 “기황후가 당시 권력 기반을 위해 더 많은 고려 사람들을 원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과 원나라 조정 관리들 사이에서는 고려 공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http://www.encykorea.com/enc/ency_012375.html에는 "1343년(충혜왕 복위 4) 역시 원나라에서 이운(李芸)·조익청(曹益淸)·기철(奇轍) 등이 제4차 입성책동을 일으켰다."라고 나온다. 동생이 입성론을 일으키는데도 이를 막으려 했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이곡이 순제에 상소를 넣어 공녀 차출을 중지시켰으나 기황후는 오히려 박불화를 시켜서 공녀를 계속 보내라고 독촉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아무튼 궁극적으로 그녀가 황후로 있던 시기 말기는 원 제국 자체가 더 이상 피지배 민족들을 억압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여러 어려운 요구를 하기 어렵고 본국 관리도 힘들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러 요구가 사라진 것이다. 이를 왜곡해서 해석하여 위와 같은 역사왜곡이 벌어진 것이다. 또한 고려양 또한 수많은 환관, 공녀들이 끌려가서 저절로 퍼진 것이고 기황후는 그 공녀의 일부였을 뿐이다. 이 여자가 한류의 원조네 뭐네 할 수 없다.

  6. 황태하 2016.09.20 02:07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라 황금보검" 글 2편,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많은 문헌과 자료로 아주 쉽게, 흥미진진하게 쓰신 글 감사합니다. 특히 흉노족 관련 대목은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만, 말씀하신 주장을 학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요? 많이 궁금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7. 이예슬 2016.09.20 01:03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제가 며칠 전 북한산성에 금괴가 숨겨져 있다는 기사를 이곳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기사에서는 고종이 헤이그 밀사로 임명된 이지용에게 매장된 지도를 주었다고 하는데 찾아보니까 이지용은 고종의 사촌이고, 이완용과 함께 을사조약을 체결한 이며, 현재 친일파로 알려져 있는 인물인데 기사에 나와있는 이지용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습니다. 동명이인이었는지 아니면 지금 현재 친일파로 알려진 이지용인지 궁금해서 이렇게 방명록을 남깁니다.

  8. 지나가다 2016.09.19 23:52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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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환 기자님의 쿠쉬나메 관련 기사를 읽고 거기에 댓글을 몇자 휘갈겨 남겼는데.. 역사학자들이 쿠쉬나메를
    우습게(?)보는것에 대해 반박할 자료가 될겁니다.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9. 김상용피겨코치님 2016.07.13 16:34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상용님컴퓨터본다김상용님휴대폰본다

  10. 김상용피겨코치님 2016.07.13 16:34 신고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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