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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공자는 가수다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 3>에 200만명이 몰려들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리고 이 오디션에는 최고의 가수이자 작곡가가 심사위원으로 나선다. 하지만 아무리 타고난 ‘심사위원’이자 ‘멘토’일지언정, 공자님을 따를 수 있을까. 공자가 사양자(師襄子)로부터 거문고를 배웠을 때였다. ‘연주법’과 ‘곡조’를 차례로 터득했다. 그런 다음 ‘곡중(曲中)의 주인공’을 알아차렸다.
 
“피부는 검고, 눈은 빛나고 사방 제후국을 바라보는 원대한 분…. 바로 문왕이 아니겠습니까?”

“역시 성인(聖人)이십니다. 이 곡은 주나라(기원전 1046~771) 창업주 문왕의 덕을 칭송한 문왕조(文王操)입니다.”(사양자)

공자는 거문고와 경(磬·타악기), 노래에도 통달했다. 요즘으로 치면 기타와 드럼은 물론 보컬까지 소화하는 만능 뮤지션이었던 것이다. 제나라 음악을 배울 때는 3개월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사기> ‘공자세가’) 

공자는 춘추시대 말기를 살았다. 성인을 알아주지 않는 전란의 시대였다. 공자는 죽기 직전 제자 자공의 부축을 받으며 한많은 삶을 노래로 정리했다.

“태산이 무너지는구나(泰山壞乎). 기둥이 부러지는구나(梁柱최乎). 철인이 죽어가는구나(哲人萎乎).”(<사기> ‘공자세가’)

1992년 한반도 남쪽 광주 신창동 저습지에서 흥미로운 유물이 발굴됐다. 기원 전후 마한인들이 연주했을 금(琴·현악기·사진)이었다. 이 대목에서 신라 자비왕(재위 458~478) 시절을 풍미한 백결(百結) 선생이 떠오른다. 그때도 ‘예술하시는 분’은 춥고 배고팠나 보다. ‘금(琴)의 명인’은 누더기만 입고 다녔다. 어느 날 부인이 이웃에서 방아찧는 소리를 듣고는 ‘곡식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선생은 장탄식했다.

“부귀는 하늘에 달렸으니 … 왜 상심하는가? 그대를 위해 방아 소리를 내어 위로하려오(吾爲汝作杵聲以慰之).”(<삼국사기> ‘열전’)

아무리 예술가 남편이라지만 무능의 극치다. 굶는 부인에게 할 소린가. 요즘 같으면 예능이나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존재감을 발휘했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도가(道家)의 무욕(無慾)에 빠져 산 선생이기에 끝까지 은둔의 길을 택했을 터. 그나저나 그런 분이 혼인은 왜 했을까. 한 가지 더. 공자가 정리한 <시경(詩經)>은 “다스려진 세상의 가락은 편안하고 즐거우며 그 정치는 화평하다. … 멸망하는 나라의 가락은 슬프며 그 백성은 고달프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노래는 과연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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