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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아이 울음소리' 에밀레종의 신비는 비대칭의 미학에서 비롯됐다

“비대칭성의 미학이 에밀레종의 신비를 낳았다.”

성덕대왕 신종(국보 제29호)의 또다른 이름인 ‘에밀레종’은 아주 끔찍한 작명의 전설을 갖고 있다. 771년(혜공왕 7년) 도무지 종이 완성되지 않자 어린 아이를 쇳물이 펄펄 끓는 도가니에 던졌더니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종에서 어린아이의 소리처럼 ‘에밀레’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자신을 쇳물에 던지게 만든 어미를 원망하며 ‘에미 죄’라고 울부짖는 소리라는 것이다. 



성덕대왕 신종만의 고유 맥놀이 현상을 설명하는 그래프. 성덕대왕 신종의 음파는 타종하고 대략 9.1초 후에 “…어~엉…”하고 울고는 사라지는듯 하다가 다시 한번 9.1초 후에 울음을 토해낸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처럼 표현되는 이유다.|김석현 강원대 교수 제공 


물론 <삼국유사>에도 보이지 않고 <대동야승>이나 <세종실록> ‘지리지’, 경주지역 야담을 모은 <동경잡기>(1669년)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구한말 선교사인 호러스 앨런과 호머 헐버트 등 외국 선교사의 채록에서 처음 보이고 <개벽>의 자매지인 <별건곤> 1929년 9월호에 비로소 등장했다. 별의별 이야기도 떠돌아서 사람 몸에서 배출되는 인 성분이 탈산제로 쓰였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이 역시 비과학적인 얘기다. 아이의 육신에서 추출되는 인은 극히 소량이어서 12만근(18.9t) 종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1998년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신형기 박사팀의 연구에서 인 성분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성덕대왕 신종에서 왜 어린아이의 소리가 나온다는 것인가.

김석현 강원대 교수(메카트로닉스 전공)는 6일 국립경주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성덕대왕 신종의 전시환경’ 학술 심포지엄에서 발표문(‘성덕대왕의 종소리’)을 통해 “미세한 비대칭성이 원인이 된 맥놀이 현상으로 성덕대왕 신종의 ‘어린아이 울음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맥놀이 현상의 여러 종류. 비대칭성의 정도에 따라 맥놀이가 달라진다. |김석현 교수 제공 


맥놀이는 비슷한 두 개의 주파수가 간섭할 때 진동이 주기적으로 커졌다 작아지는 것을 반복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종의 경우 두께의 불균일, 모양의 비대칭성 등으로 종의 각 부분에서 

분에서 다른 진동수의 소리가 나기 때문에 맥놀이 현상이 일어난다. 주형을 제작 주조하고 각종 문양을 새기는 과정에서 모든 조건이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덕대왕 신종은 그 중에서도 더 특별한 존재다. 대칭형 구조 속의 미소한 비대칭성이 절묘한 맥놀이 현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김석현 교수는 “미소한 비대칭성이 절묘한 주파수쌍을 만들어 그 간섭으로 성덕대왕 신종만의 맥놀이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성덕대왕 신종을 제작한 통일신라시대 장인들이 의도한 바는 아닐 것이다.

김교수에 따르면 성덕대왕 신종의 기본음 맥놀이는 168.52㎐와 168.63㎐다. 대표음인 168㎐는 1초에 168번의 떨림이 일어나는 소리이다, 신종의 기본음 맥놀이는 168.52㎐와 168.63㎐의 두가닥 음파가 한 쌍을 이룬 것으로 나타난다. 두 가닥 음파의 차이는 0.11㎐, 즉 1초에 0.11번 떨림이다. 맥놀이 주기는 주파수의 역수로 정의되기 때문에 ‘0.11분의 1’로 계산할 수 있다. 따라서 성덕대왕 신종의 맥놀이 주기는 ‘1/0.11=9.1초’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성덕대왕 신종의 맥놀이. 타종하면 종은  9.1초를 주기로 소리를 냈다가 사라지는 일을 반복한다.|김석현 교수 제공

성덕대왕 신종의 168㎐ 음파는 타종하고 대략 9.1초 후에 “…어~엉…”하고 울고는 사라지는듯 하다가 다시 한번 9.1초 후에 약하게 울음을 토해낸다는 뜻이다. 김교수는 “바로 이 때문에 성덕대왕 신종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곡하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 다른 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물론 다른 종들도 각자의 맥놀이 현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성덕대왕 신종처럼 맥놀이 현상의 그래프가 잘록하게 표현되는 예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게 김교수의 설명이다. 

즉 타종 때 종소리가 커졌다가 2.9초의 끊어질듯한 여음(64㎐)이 반복된 다음 소리가 거의 사라진 뒤 다시 살아나는 예(9.1초 주기)는 성덕대왕 신종만의 장점이라는 것이다. 살아 숨쉬다가 숨이 끊어진 뒤 다시 되살아나 곡을 하는 어린아이 울음소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덕대왕 신종의 ‘의도하지 않은’ 미세한 비대칭성이 절묘한 간격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또 이번 발표에서 성덕대왕 신종의 당좌(타종 때 망치가 맞는 부분)의 높이가 가장 경쾌한 소리가 나오는 이른바 타격중심에 정확하게 위치해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계산했다. 무슨 얘기냐. 야구배트나 테니스 라켓으로 공을 때릴 때 이른바 스위트 스팟(sweet spot)에 맞으면 매우 경쾌한 타격이 되고 손목에 최소한의 힘이 작용한다. 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역시 스위트 스팟과 일치해 있는 당좌를 타격할 때 종걸이의 충격이 최소화하고 종소리의 여음 역시 길어진다. 


당좌의 높이(종을 때릴 때 망치가 닿는 부분) 또한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야구나 테니스 선수가 공을 때릴 때 가장 경쾌한 타격을 하고, 손목 힘에도 무리가 가지 않는 위치를 스위트 스팟이라 한다. 종도 마찬가지로 스위트 스팟과 일치한 당좌를 타격할 때 종걸이의 충격이 최소화 되고 종소리의 여음이 길어진다. 이것을 타격중심이라 하는데, 성덕대왕 신종이 바로 그런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김석현 교수 제공    


김 교수는 이것을 타격중심(종을 칠 때 종걸이 부분의 반작용력이 0이 되는 위치)이라 했다. 타격중심에서 벗어나 종을 치게 되면 반작용력이 커지고 종걸이가 울려 잡소리가 많이 나게 된다. 

김 교수는 이번에 성덕대왕 신종의 당좌가 최적의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계산으로 밝혀냈다. 

원래 전체높이(3030㎝)인 성덕대왕 신종의 당좌중심은 종 하단으로부터 846㎝ 높이에 있다. 그런데 김 교수가 실측한 실제의 당좌중심은 856㎝의 높이에 있고, 무게중심은 1346.1㎝ 높이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0㎝의 차이가 나는데, 이를 종신의 높이(3030㎝)에 대한 값과의 상대적인 오차는 단 (856-846)/3030×100=0.3%, 즉 단 0.3%였다. 김 교수는 “0.3%라면 오차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이것이 성덕대왕 종의 ‘천상의 소리’를 빚어냈다”고 설명했다.

또 성덕대왕 신종의 주파수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1000㎐ 범위 내에서 50여개의 고유주파수가 확인된다. 

그런데 이 50여개의 주파수가 어느 하나 거슬리는 것 없이 조화를 이루며 은은한 소리를 낸다. 김 교수는 이것을 “여러명이 소리를 내는 합창단이 뛰어난 화음을 선보이며 노래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지금도 종을 만들 때는 외관과 종의 두께 등 1200여 년 전의 성덕대왕 신종을 기본모델로 제작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2001~2003년 성덕대왕 신종의 음향조사 당시 참여했던 김 교수는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이번 발표에서 총정리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