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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혼용무도, 혼군인가, 용군인가, 폭군인가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전세계적으로 발표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다사다난 했던 한 해를 정리해서 한글자나 한단어, 한문장으로 축약해서 발표하는 ‘올해의 단어들’입니다. 우리의 경우엔 교수신문이 한 글자가 아니라 사자성어로 한 해를 정리하는데 올해는 ‘혼용무도(昏庸無道)’가 꼽혔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어리석고 무능한 지도자가 무도한 정치를 했다는 뜻입니다. 너무 혹독한 평가가 아닐까요? 아니면 그런 평가를 당연히 받아야 했을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 캐스트에서 ‘혼군과 용군, 그리고 폭군, 아니면 성군과 현군, 명군의 이야기’들을 들어보시고 평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61회 주제는 ‘혼용무도, 혼군과 용군 사이…’입니다.

 

문란한 지도자의 종류도 한가지가 아니다. 폭군, 혼군(昏君 혹은 暗君), 용군(庸君)으로 나눈다.
율곡 이이는 ‘임금의 도리(君道)를 논’하면서 이렇게 구별했다. 즉 폭군이란 “욕심이 지나치고 바깥의 유혹에 빠져 백성의 힘을 다 빼앗아 충언을 물리치면서 자기만 성스러운체 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혼군(혹은 암군)은? “정치를 잘하려는 뜻은 있지만 총명하지 못해 현명한 자 대신 간사 무능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을 기용해서 패망하는 군주”라는 것이다. 용군은 “나약하고 과단성이 없어 구태만 되풀이 하다가 나라를 망치는 지도자”다.(<율곡전서> ‘잡저·동호문답’)

율곡 이이는 <율곡전서>에서 임금의 도리를 예로 들어가며 설명했다. 

■“고기죽 먹으면 되잖아”
이제 대입해 보자. 재능은 탁월했으나 여인(말희·달기)의 유혹에 빠져 충신(종고·기자 등)의 말을 듣지 않고 폭정을 휘두른 하 걸왕과 상 주왕이 폭군의 대명사이다.
혼군은 누구일까. 진(秦) 2세 호해(재위 기원전 210~207)가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아방궁 공사를 만류하는 대신들에게 “내 맘대로 하고 싶어서 황제가 됐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일축했다. 사마천은 이를 두고 ‘인두축명(人頭畜鳴),’ 즉 ‘사람의 머리를 하고 짐승의 소리를 내뱉는다’고 혀를 찼다. 진(晋)혜제(290~307)는 어떤가.
큰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죽자 “왜 고기죽을 먹지 않는거냐(何不食肉미)”고 고개를 갸웃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영제(168~189)는 용군에 속할 것이다. ‘십상시’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영제는 유력한 환관이던 장양과 조충을 ‘나의 아버지 장상시, 나의 어머니 조상시’라 추켜세웠다.
조선의 연산군은 어떨까. 하필이면 호해를 롤모델로 삼아 ‘임금 마음대로 살겠다’고 했고, 간신 유자광과 임사홍을 믿었으니 굳이 분류하자면 혼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백성의 힘을 다 빼앗았다는 점에서는 폭군의 오명을 써도 되겠다. 이이의 분류법에 따르면 3자 간 경계는 모호하지만 미묘한 차이도 감지할 수 있다. 혼군과 용군의 경우 지도자의 무능에 강조점을 둔다면, 폭군은 독선과 불통에 따른 폭정의 뉘앙스가 물씬 풍긴다.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점에서는 셋다 도긴개긴이지만….
 
■격양가의 시대는 없지만…
그러니 맹자는 이런 무능하고 제 멋대로 임금의 정치는 곧 혁명을 부른다고 설파했다.
“못을 위하여 고기를 몰아 주는 것은 수달이다. 나무 숲을 위하여 참새를 몰아 주는 것은 새매다. 탕무를 위하여 백성을 몰아 준 자는 걸주이다.(爲淵驅魚者獺也 爲叢驅爵者전也 爲湯武驅民者 桀與紂也)”(<맹자> ‘이루 상’)
무슨 말이냐면 폭군들인 하 걸왕과 상 주왕의 실정은 곧 민심의 이반을 낳았고, 그 흩어진 민심은 새 주인인 상 탕왕과 주 무왕에게 옮겨갔다는 뜻이다. 상나라 탕왕이 혁명을 일으켜 하나라 걸왕을,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각각 정벌한 것을 지칭한다.
정치의 지향점은 물론 요순 시대일 것이다. 요순시대가 어떤 때인가.
“요임금 때 50살 된 이가 길에서 땅을 두드리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를 본 어떤 이가 ‘위대하도다. 요 임금의 덕이요.’라고 운을 떼자 노래를 부르던 이가 말했다. ‘나는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쉬면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서 밥 먹을 뿐이다. 임금님의 대체 나에게 무슨 상관이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논형> ‘예증’)
이것이 ‘격양가’의 유래이다. 즉 임금이 누구인지 몰라도 잘먹고, 잘사는 이상사회가 바로 요순시대이며, 그런 정치를 한 이가 바로 성군(聖君)인 것이다. 그러나 요순의 정치를 따라가기는 언감생심이 아닌가. 역대 군주들은 요순과 같은 성군은 아니더라도 성군을 지향하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예컨대 이이는 문란한 정치를 분류법을 언급하면서, 한편으로는 ‘잘하는 정치’에 대해서도 논했다.
“잘하는 정치에도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임금의 재지(才智)가 출중해서 호걸을 잘 부리면 잘하는 정치가 되고, 재지는 좀 부족하더라도 어진 이에게 맡긴다 해도 잘하는 정치가 된다.”(<율곡전서> ‘동호문답’)
이이는 전자를 격양가가 울려퍼진 태평성대의 성군시대라 했다. 그렇다면 후자는? 이이는 상나라 태갑과 주나라 성왕을 후자의 대표주자로 꼽았다. 즉 두 사람은 군주의 자질은 모자랐지만 그야말로 현명한 신하를 발탁함으로써 성군에 버금가는 명군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다.
“태갑과 성왕은 부족했다. 만약 성스러운 신하(聖臣)의 보좌가 없었다면 나라가 전복됐을 것이다. 그런데 태갑은 이윤(伊尹)에게 정사를 맡기고, 성왕은 주공(周公)에게 정사를 맡겼다. 이로서 덕(德)을 기르고 학업을 닦아 대업(大業)을 이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어진 신하에게 정사를 맡겨 왕도를 행한 자이다.”
이이는 또 후자의 예로 춘추 5패 중 한사람인 진 문공과 제 환공, 한 고조, 그리고 당 태종, 송 태조 등을 예로 들었다. 그야말로 귀신의 경지인 성군은 못되더라도 ‘사람만 잘 쓰면’ 명군의 대열까지는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랬으니 순자는 “현명한 군주는 휼륭한 인재를 구하는 일을 서두르고, 우매한 군주(암군)는 세를 불리는 일을 서두른다(明主急得其人 而闇主急得其勢)”(<순자> ‘군도’)고 했다. 이 순간 되새겨봐야 할 구절이 아닌가.

 

■“황제는 야위지만 백성은 살찐다”
좋은 신하의 쓴소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려주는 당나라 현종의 일화도 있다.

즉 당나라 현종은 처음엔 명군이었다가, 훗날 혼군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호화잔치가 열리면 현종은 늘 안절부절 못해 ‘이 일은 한휴(韓休·673~740)가 아느냐’고 물었다.

한휴의 사나운 간언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현종이 ‘이 일을 한휴가 아느냐’고 묻는 그 순간, 이미 한휴의 매서운 상소문이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현종의 좌우 신하들이 한휴를 겨냥해서 현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휴가 정승이 된 이후에 폐하께서 전보다 사뭇 여위셨습니다.”
그러나 현종은 한탄하면서 이렇게 대꾸했단다.
“나는 비록 여위었지만 천하 백성은 살쪘구나.’
이 한휴의 일화는 연산군 시절인 1495년(연산군 1년) 손순효가 다름아닌 연산군에게 감히 전해올린 상소문에 나와있다. 당시 판중추부사 손순효는 바른 말을 했던 대간들이 잡혀가는 불상사가 발생하자 ‘다른 사람들은 입을 모두 닫고 있는 상황에서 분연히 일어난 것’이다.

<연산군일기>는 “다른 재상들이 입을 닫고 있는 가운데 손순효의 상소가 올라오자 모두들 시원하게 여겼다”고 기록했다.

손순효는 언로(言路)를 막으면 안된다고 감히 아뢰면서 “전하께서는 요순 같은 성군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 이하의 임금이 되겠습니까”라고 다그쳤다. 그러고보면 연산군에게는 그나마 이런 ‘목숨을 내놓고 바른 말을 했던’ 신하들이 있기는 했다. 그 말을 임금이 잘 들었다면 혼군이니 폭군이니 하는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하기야 <주역>의 64괘 중에는 이런 괘가 있다. 명이(明夷)라는 괘인데, 이것은 암군(暗君)이 위에 있으면 밝은 신하가 해침을 당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신하라도 임금을 잘못 만나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불현듯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한비자> ‘관행(觀行)’이다. 명군과 암군의 차이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남는 것으로 부족분을 채우고, 짧은 것은 긴 것으로 이어나가는 사람을 현명한 임금이라 한다.(以有餘補不足 以長續短之謂明君)”
이것이 어지러운 시대, 지도자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교수신문이 올 한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꼽았다. ‘혼군와 용군’을 뜻하는 ‘혼용’과 <논어>의 ‘천하무도’ 구절의 ‘무도(無道)’를 뽑아 만든 성어라 한다. 지금 이 순간 교수들이 뽑은 ‘혼군 용군’의 용어를 이이의 분류법에 대입해보라.

우리의 지도자는 폭군인가, 혼군인가, 아니면 용군인가. 아니면 성군인가, 명군이거나 현군인가. 한번 가늠해보기 바란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