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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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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분의 여왕, 진덕여왕 무덤 찾았나 태종무열왕, 흥덕왕, 원성왕, 선덕여왕…. 신라 56대 국왕 중 거론된 임금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무덤의 주인공이 분명하거나 거의 확실한 이들이다. 제29대 태종무열왕릉은 경주 서쪽의 서악동 구릉에 있다. 왕릉의 동북쪽에 세워진 비석(국보 제25호) 중앙에 전서체로 ‘태종무열왕지비(太宗武烈大王之碑)’라는 8자가 양각되어 있다. “내가 이 무덤의 주인공”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도당산 고분의 근경. 경주 남산에는 8기의 ‘전칭’ 왕릉이 존재하고 있다.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은 남산 끝자락 도당산에 위치한 고분을 진덕여왕의 무덤으로 판단했다.|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제공 경주 안강읍 육통리 산 42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제42대 흥덕왕릉(사적 제42호)에서도 전서체로 ‘흥덕(興德)’이라고 쓰인 비편들이 확인됐..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2018 최우수 특별전 '오백나한'의 서울나들이 지난해 지방의 국립박물관에서 호평을 받은 전시회가 있다. 바로 국립춘천박물관의 특별전인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이었다. 원래는 8월28일부터 3개월간 열릴 예정이었지만 관객들의 호평 속에 올해 3월까지 연장전시됐다.그런데 이 특별전은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뽑는 ‘2018년의 전시’로 선정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전국의 국립박물관이 지난 1년간 주최한 특별전을 대상으로 관내외 전문가(내부 20명, 외부 16명)와 관람객 만족도 등을 종합평가한 결과 1등으로 꼽힌 것이다. 최선주 국립중앙박물관 연구기획부장은 “국립춘천박물관의 ‘오백나한전’은 관내외 전문가들의 압도적인 점수를 얻었다”고 전했다.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오백나한 전시 전경. 작가 김승영씨가 설치했다.|국립중앙박물관..
1830톤, 1627개, 81%…숫자로 본 미륵사지석탑 복원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있던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의 해체·보수 작업이 마무리되어 30일 오후 2시 준공식이 열린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날 전북도 및 익산시 등과 공동으로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 마무리를 기념하고 그 성과와 의미를 알리는 준공식을 연다고 밝혔다.그동안 진행되었던 미륵사지 석탑(서탑)의 해체·보수 사업을 숫자로 풀어본다.수리 전(왼쪽)과 후의 미륵사지 석탑 사진. 1999년 해체·복원결정 후 만 20년만에 복원됐다.|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639, 1380지난 2009년 1월14일 탑의 심주석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사리공을 확인했다. 사리공에는 금동제사리호와 함께 탑을 세우게 된 이력을 새긴 금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긴 글씨의 내용은 깜짝 놀랄만 했다...
"사천왕사 출토 명문편 5개는 신문왕릉비가 틀림없다" “신문왕릉비가 틀림없다.” 지난 1976년 경북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 남단의 해발 53m 낮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사천왕사터의 당간지주 동쪽에서 ‘차임진’(次壬辰) 명문 비석편이 나왔다. 또 2012년 12월 역시 사천왕사터 서귀부 부근에서 ‘무궁기덕십야’(無窮其德十也) 비석 2편이 나왔다. 이밖에 사천왕사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비석편 중 ‘명왈’(銘曰) 명 1편(동국대 경주캠퍼스 박물관 소장)과 ‘장’()명 1편(국립경주박물관) 등이 있다. 그런데 사천왕사지 ‘次壬辰’명편. 신문왕이 서거한 임진년(692년)을 가리키는 명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 논문에서 이들 5편의 비석이 신라 신문왕(재위 681~692)의 능비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예사 연..
'반파'는 광개토대왕비 신묘년 기사의 숨은 주인공이다 “광개토대왕비 신묘년 기사의 숨은 주인공은 ‘반파’이다.”최연식 동국대 교수는 최근 한국목간학회가 주최하는 정기발표회에서 ‘영락 6년 고구려의 백제침공 배경과 역사적 의미’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과 일본 학계가 해석을 두고 대립한 고구려 광개토왕비 기록 ‘이왜이신묘년래도□파백잔□□신라이위신민’(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의 의미에 대한 독특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이 문구는 지금까지도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 □□ 신라를 깨뜨리고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됐다. 일본 학계는 이 대목을 두고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했다.광개토대왕 비문에서 치열한 논쟁을 불렀던 신묘년(391년) 기록. ‘이왜이신묘년래도□파백잔□□신라이위신민’(而倭以..
고종을 매섭게 꾸짖은 70대 의병대장, "대체 전하는 무슨 마음을 먹고 …' “폐하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무슨 사람이기에 이따위 짓을 합니까.(陛下何爲而爲此)”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이 공포되자 황제를 매섭게 꾸짖는 상소문을 올린 이가 있었다. ‘절대 한일합방을 하면 안된다’(請勿合邦)는 상소였다. 상소문의 주인공은 구한말의 의병장인 척암 김도화 선생(1825~1912년)이다. 700자로 구성된 이 상소문은 고종과 고종의 뒤를 이른 순종에게 망국의 책임을 돌리며 욕설에 가까운 비판의 칼날을 휘두른다.“500년 역사의 왕위와 3000리 강토는 선대의 왕으로부터 이어받았습니다. 국가의 통치대권은 폐하의 사유물이 아니며 한 치의 땅도, 한 사람의 백성도 폐하의 사유물이 아닙니다.”척암은 “그런데 임금인 당신은 나라를 주고받는 일을 어찌 농사 짓는 자가 토지에서 난 곡식을 ..
어이없이 보물에서 누락된 성주사 동탑, 85년만에 지위 찾았다 충남 보령 성주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성주사(사적 제307호)는 1400년이 넘은 유서깊은 절이다.백제 법왕(재위 599~600)때 창건되어 오합사로 일컬어지다가 847년(문성왕 9년) 신라 낭혜화상(무염·801~888)이 중창했다. 조선후기 폐사되어 건축물 대부분이 사라진 성주사에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 탑이 많다는 것이다. 경내 북서쪽에 낭혜화상탑비가 버티고 있고, 남쪽부터 오층석탑과 삼층석탑 3기 등이 늘어서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보물에서 누락되었던 충남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이번에 보물 제2021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제공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와 오층석탑(보물 제19호)·중앙 삼층석탑(보물 제20호)·서 삼층석탑(보물 제47..
‘양심의 가책’... 미해병장교가 전리품으로 챙겨간 문화재 65년만에 반환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겨울) 본부중대 병사들이 몸을 녹이려고 절 안팎 여기저기서 활활 불을 태우고 있었다…돌과 도끼, 삽으로 마구 빠개진 불경 목판더미가 타고 있지 않은가…나는 부연대장에게 달려가 ‘겨레의 문화재가 타고 있으니 즉시 불을 끄고 경판을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했다.” 고 리영희 교수가 1996년 법보신문에 기고한 컬럼이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보병 제11사단 9연대 청년장교로 참전했던 리영희 교수가 설악산 신흥사에 주둔한 부대의 병사들이 문화재인 불경판들을 불에 태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이 끝난 1954년 10월 강원 속초에 근무하던 미 해병대 소속 리차드 락웰 중위가 부대원들과 수색정찰임무를 수행하다가 신흥사에 들렀다. 신흥사는 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