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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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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고등계 형사를 고문죄로 옥중고소한 '안동 모스크바' 권오설 선생의 분투기 “너희는 개 돼지보다 못하다. 산도 안되고 형무소도 안된다면 시신을 등에 지고 종로거리를 다닐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89년전인 1930년 4월 16일(음력 3월 1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중이던 독립운동가 권오설 선생(1897~1930)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동생 권오기가 달려갔다. 그러나 형 권오설의 숨이 끊어질 즈음이었다. “형님! 형님!”하고 애타게 부르자 형 권오설은 겨우 눈을 떠서 동생의 목을 감싸고 볼을 비비면서 “오늘은 나랑 같이 자자”고 했다. 동생 오기는 눈물을 삼키며 형무소 문을 나섰다. 다음날인 17일, 동생이 다시 형무소를 찾았을 때 형 권오설은 이미 운명한 뒤였다. 동생은 형무소측에 “살아서 내보내지 않는게 법이라면, 죽어서는 내보내야 하는게 아니냐”고 항의하면서 “시신..
1000년 고도 경주 월성의 연못터에서는 무엇이 쏟아져나왔나 “기원후 101년(파사왕 22년) 금성 동남쪽에 성을 쌓아 월성이라 했다. 둘레가 1023보였다.” “487년(소지마립간 9년) 월성(月城)을 수리했다.” 에 등장하는 월성의 축성과 수리 기사입니다. 지금은 조선시대에 쌓은 석빙고만 남아있지만 경주 월성은 101년 축성이후 신라멸망(935년)까지 843년 동안 천년왕국 신라의 왕성이었습니다. 왜 달 월(月)자를 써서 월성이라 했을까요. 월성은 경주 시내 남쪽 남천(문천) 가에 위치한 토성입니다. 울산 방면에서 흘러온 남천이 북류하다가 월성의 구릉에 부딪쳐 서쪽으로 꺾여 흐르는데 그것을 감씨듯이 초승달 모양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월성이라 했던게죠. 바깥 둘레는 2340m 정도입니다. ■1000년 신라왕국의 왕성그런데 신라가 멸망한 이후 500년 가까이 ..
'원균은요…', 선비 오희문의 헬조선 '임진왜란'고발기 “우수사는 이달초(7월8일) 전라 좌·우 수군과 함께 나가서 적선 80척을 나포해서 700여명의 수급을 베었다. 초 10일에도 또 적선을 만나 80여척을 사로잡았다…”1592년(선조 25년) 7월26일 오희문(1539~1613)의 일기인 에 기록된 한산대첩 승전보이다. 당연히 이순신의 승전기록일 것 같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일기에서 전투를 주도했다는 우수사는 바로 경상 우수사인 원균을 지칭한다. 원균의 주도 아래 전장에 나서 대승을 도운 전라 좌·우 수군의 지휘관은 바로 이순신(전라 좌수사)과 이억기(전라 우수사)이다. 에 따르면 주인공은 원균이고, 조연이 이순신과 이억기 같은 느낌이 난다.오희문이 1591년(선조 24년) 11월27일부터 1601년(선조 34년) 2월27일까지 9년 3개월간이나 써내려..
어린이 무덤서 찾아낸 '대가야 버전' 가락국 신화... 사실일까 억측일까 지난주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사적 제79호)에서 발굴된 어린아이 무덤에서 아주 희한한 유물이 나왔는데요. 이를 두고 학게에서 거센 논쟁이 벌어질 것 같네요. 어떤 유물이냐면요. 지난 3월8일 고분군 내 탐방로를 정비하거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기에 앞서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여러 기의 무덤이 확인됐는데요. 그중 5세기 무렵의 석곽묘에서 다른 유물과 함께 어린아이의 두개골편과 치아가 나왔고, 무엇보다 흙으로 만든 방울을 하나 수습했는데요. 직경이 약 5㎝ 정도되는 아주 작은 방울이어서 심드렁 하고 넘길 수 있는 그저 그런 유물이겠지 했다네요. 대가야 왕릉급 고분이 즐비한 지산동에서 뭐 이 정도의 유물이라면 아무 것도 아닐테니까….고령지산동 고분군 석곽묘에서 발견된 토제방울에 새겨진 그림들. ‘가락국 신화’에 묘..
향산광랑과 犬の子(이누노코)…춘원 이광수와 ○석두의 창씨개명 “내 이름은 현전우일(玄田牛一·구로다 규이치)이다.” 지난 2002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야인시대’라는 드라마가 있다. 협객이라는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뤘는데, 17년이 지난 지금도 케이블 TV에서 단골로 방영된다.최근 새삼스레 다시 그 드라마를 보게 된 필자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일제강점기인 1930~40년대 불세출의 만담가인 신불출(1905~?·김종국 분)의 ‘현전우일’ 대사에 ‘꽂혔다’. 신불출이 일제의 창씨개명 정책에 따라 창씨(현전)와 개명(우일)을 동시에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현전우일’이 일본어인 ‘畜生(축생)’의 파자(破字)라는 대사를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畜’은 ‘玄+田’이요, ‘生’은 ‘牛+一’이 아닌가. ‘畜生’을 파자하면 ‘현전우일’이 되는 것이다. ‘축생’은 일..
'황희 맹사성 투톱'을 죽을 때까지 부려먹은 세종의 용병술 “맹사성의 사람됨이 종용하고 간편하다. 선비를 예절로 예우하는 것은 천성에서 우러나왔다. 벼슬하는 선비로서 비록 계급이 얕은 자라도 뵙기를 청하면 반드시 관대를 갖추고 대문 밖에 나와 맞아들였다. 이어 손님을 상좌에 앉히고, 물러갈 때에도 역시 몸을 구부리고 손을 모으고서 가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손님이 말에 올라앉은 후에라야 돌아서 문으로 들어갔다.”( 1438년 10월4일) ■‘배려심 갑 예절 남’ 재상님 청백리의 대명사이자 재상의 롤모델로 통하는 고불 맹사성(1360~1438)이 죽은 뒤 의 사관이 남긴 졸기(부음기사)이다. 교지연구가 김문웅씨가 공개한 ‘맹사성 왕지’. 1427년(세종 9년) 맹사성을 우의정에 임명한다는 임명장이다. 맹사성 이름 옆에 찍힌 확인점이 뚜렷하다. 맹사성은 이후 8..
'광대 얼굴의 보물 부처님, 어찌 복원 하오리까 ‘광대 불상’. 전북 익산 삼기면 연동리에 있는 석불사 법당엔 아주 희한하게 생긴 불상이 턱하니 자리잡고 있다. 신성한 법당 안에 모셨으니 꼬집어 말하기는 좀 ‘거시기’ 하지만 솔직하게 표현하면 전혀 불상 답지않은 얼굴생김새를 갖고 있다. 까놓고 말하면 우스꽝스러운 광대 분장을 한 불상 같은 첫느낌이다. 인자하거나 아니면 엄숙한 부처나 보살의 얼굴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이전 이 절의 주지스님 얼굴을 새긴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 좌상.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백제 시대 최대의 3차원 환조석불로 유명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목이 달아났고 누군가가 새로운 불두를 얹어놓았다. 하지만 인자하거나 엄숙한 부처상도 아니고 '백제의 미소'를 구현하지도 않은 ‘광대 형상’의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
'연봉 1000원으로는 턱도 없고 중국 간섭도 심하지만…' 이상재 선생의 다짐 “~빨리 부는 바람 같으니 날개 가진 새라도 못따르겠네.” 육당 최남선의 ‘경부철도가’(1908년) 가사처럼 철도는 개화기 근대 문명의 상징이었다. 증기를 뿜으며 씩씩거리고 달리는 육중한 몸체의 열차가 얼마나 빨리 달렸으면 ‘바람처럼 달려 날개 가진 새도 따를 수없다’고 했을까. 철도 역사의 효시는 1899년 9월 일본측이 완공하여 가영업을 개시한 인천~영등포간의 경인선이었다. ■‘바람보다 빠른 철도’의 역사 사실 구한말 조선 내에서의 철도부설권은 열강의 먹잇감이었다. 서구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일본은 대륙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철도부설권을 따려고 이전투구를 벌였다. 지금까지는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1896년 조선정부로부터 부설허가권을 취득했지만 자금난에 빠져 일본측에 170만원에 허가권을 팔아넘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