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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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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관에 놓인 생뚱맞은 서양제 대한민국 보물 언필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보·보물 가운데는 ‘외제’나 외제로 ‘의심되는’ 유물이 더러 있다. 지정 당시에는 조선초기 작품으로 알려졌다가 나중에 중국 원나라제로 판명된 ‘백자 유리홍 매화 국화무늬 병’(국보 제168호)가 그렇다. 1916년 평양 석암리 9호분에서 발굴된 ‘금제 띠고리’(국보 제89호)도 낙랑제로 알려졌으니 중국제라 할 수 있다. 전남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도 기록은 없지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중국에서 가져온 당나라제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천 강화 전등사 철종(보물 제393호)은 일제강점기 금속류의 강제수탈 과정에서 중국에서 가져온 북송시대(1097년)의 작품이라는 명문이 있으니 중국종이라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기증유물전시관에 전시중인 청동투구...
불편한 진실, 조선판 '미투' 가해자의 사건 그후 ‘성희롱범에게 곤장 80대를 선고한다.’ 2012년 7월 필자는 ‘조선의 성범죄, 어떤 처벌을 받았나’라는 기사에서 을 인용했다. 1438년(세종 20년) 8월1일 에 기록된 성범죄 사건의 요지는 ‘성균관 유생 둘이 옷을 벗고 목욕하다가 지나던 여인을 덮치려 했지만 여인이 도망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요지였다. 사헌부 수사 결과 문제의 유생 둘 중 실제 여인을 덮친 유생에게 장 80대의 형을 내렸다. 당시 조선은 모든 범죄의 판결에 1367년 제정된 명나라 형법()을 따랐다. “무릇 화간(和姦)은 장 80대, 남편이 있으면 장 90대이다. 조간(勺姦·여자를 유괴한 뒤 간음)은 장 100대이고, 강간한 자는 교수형에 처한다. 강간미수죄는 장 100대에 유배(流) 3000리에 처한다.”( ‘형률·..
명사수 정조가 정약용에게 '지옥 훈련 캠프 입소'를 명한 까닭 50발중 49발 명중이 모두 10차례. 한번은 100발 쏘아 98발 명중…. 이것은 이순신 장군이나 태조 이성계의 활솜씨가 아니다. 문체반정을 주창한 문예군주라는 정조 임금의 활쏘기 솜씨이다. 정조의 활쏘기 점수가 다름아닌 에 아주 자세히 기록됐으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을 보면 정조는 1792년(정조 16년) 10~12월 사이 춘당대에 출근하다시피 해서 활쏘기 행사를 벌인다. 왜 유달리 이무렵에 집중된 것일까. 정조는 “과인이 활쏘기를 원체 좋아했고 그것이 가문의 법도여서 젊은 시절에는 즐겼지만 최근 10~20년 사이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1792년 10월12일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밝혔다. 을 보면 10월에는 32발(17일)~47발(26일)이던 것이 30일 49발이 된 이후 가히 신궁의..
"'철의 왕국'이 가야가 아니다. 신라였다" 이번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223회의 주제는 ‘철의 왕국은 어디었나’입니다. 이미 새해 초에 지면 기사로는 소개했는데요. 이번에 팟캐스트 용으로 재정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가야=철의 왕국’의 지위가 확고했는데요. 그 근거는 3세기 역사서인 ‘동이전·한조’의 ‘나라(國)에서 철(鐵)이 생산된다(出)’는 기사였습니다. “그렇게 생산된 철을 한(韓·마한)과 ‘예(濊)’, 왜(倭)가 수입해갔고, 또 2군(낙랑·대방군)에도 공급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특히 “시장에서 중국의 돈을 사용하듯 모두 철을 거래수단으로 삼는다”는 내용은 ‘철의 왕국’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기록으로 여겨졌죠 3세기 중국 역사가 진수가 편찬한 '위지 동이전 한조'. '철이 생산되는 나라'를 헷갈리게 서술했다.,..
이승만은 망가진 ‘미인 석탑’을 보고 노발대발했다 “대체 저게 어찌 된 것이요.” 1957년 9월 한국을 방문한 월남(베트남)의 고 딘 디엠 대통령과 경복궁 내 경회루 산책에 나선 이승만대통령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산산조각 난채 방치된 흉물스러운 탑 한 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외국정상과 함께 보았으니 얼마나 큰 망신인가. 이승만 대통령의 노기가 하늘을 찌르자 부랴부랴 방치된 탑의 복원에 나섰다. 한국전쟁 때의 폭격 유탄에 맞아 무려 1만2000조각으로 산산조각난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 이후 여러차례 복원 수리 과정을 겪었다.|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문제의 탑은 바로 원주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이었다. 원주 부론면을 떠나 서울-일본 오사카를 거쳐 원래의 자리인 원주로 가지못한채 서울 경복궁 한편에 서있다가 한국전쟁 때인 19..
'국왕 비서실장' 황희의 인사농단…“못참겠다” 익명서 올린 재상들 “이조를 담당하는 지신사(도승지) 황희는…자기와 친한 인물을 임금(태종)께 여러번 칭찬해서 벼슬에 임명하니 재상들이 매우 싫어했다. 좌·우의정이 천거한 인물들을 배척하고 자기 사람을 임명한 것이다.”1408년(태종 8년) 2월4일 기사이다. 요약하자면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격인 지신사(이하 도승지) 황희(1363~1452)가 인사전횡을 휘둘러 재상들마저 ‘패싱’했다는 것이다. 기사내용을 뜯어보면 매우 흥미롭다.. 1534년(중종 29년) 농암 이현보가 도승지 남세진 등 승정원 동료들과의 모임을 기념해 그린 그림이다. 지금의 대통령비서실과 같은 승정원은 단순히 왕의 명령만 출납하는 역할에 만족하지 않았다. 실학자 안정복이 말했듯이 ‘승정원은 왕의 출납을 맡아 옳은 것은 아뢰고, 부당한 것은 거부했으니’ 그..
조선시대 감찰반과 청와대 감찰반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공직기강이 도마 위에 오르자 청와대는 지난달 대책을 내놨습니다.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 이름을 공직감찰반으로 바꾸고 감찰반의 인적구성을 다양화하는 등의 개선책을 마련했습니다. 청와대가 민정수석실에 특별감찰반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광화문 날개에 설치된 동십가각. 조선시대 감찰이 이곳에서 궁궐을 출입하는 관리들을 감시했다.기자가 ‘대통령 비서실 직제령’ 제7조(감찰반)를 찾아보니 “1)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 공직자, 2)대통령이 임명하는 공공기관·단체 등의 장 및 임원, 3)대통령의 친족 및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에 대한 감찰업무를 수행한다”고 했습니다. 임명 한 뒤에도 감찰할 필요가 있지만 새로운 인재를 임명하기 전에도 흠결 있는 인물인지 아..
가야인들은 왜 봄철 밤하늘에 뜬 남두육성을 새겨넣었을까 5~6세기 아라가야인들은 왜 남두육성을 무덤방 덮개돌에 새겨 넣었을까. 지난해 12월 18일 아라가야 왕릉급 고분인 함안 말이산 13호분(사적 제515호)에서는 전갈자리와 궁수(사수)자리 등의 별자리 125개가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됐다. 더욱 특이한 것은 별자리가 새겨진 구덩식 돌덧널 무덤방의 벽면이 붉게 채색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신라 부부조각상에 새겨진 북두칠성과 남두육성. 고대인들은 북두칠성을 죽음을, 남두육성을 삶을 주관하는 별자리로 여겼다.|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전갈자리와 궁수자리의 내력 덮개돌에서 확인된 별자리 중 전갈자리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리온과 관계가 깊다. 사냥꾼인 오리온은 “나보다 더 강한 자가 없다”고 떠버리고 다녔는데 이 말을 듣고 화가 난 제우스의 부인 헤라가 오리온을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