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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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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도 밟으면…홧김에 태종 임금을 때린 궁녀의 운명은? 태종 이방원(재위 1400~1418)이 어떤 사람인지 다들 아시죠.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죽이고 조선을 개국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죠. 그 뿐인가요. 개국 후에도 1, 2차 왕자의 난을 통해 이복동생 둘(방석·방번)과 정도전·남은 같은 개국공신을 무참히 죽였으며(1398년 1차), 동복 형(방간)까지 쫓아낸(1400년 2차) 무시무시한 임금이죠. 게다가 외척의 발호가 염려된다면서 처남 4형제(민무구·민무질·민무회·민무휼)를 모조리 죽이고, 아들(세종)의 장인인 심온의 가문을 멸문의 지경까지 빠뜨린,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군주죠.1902년(순조 2년) 순조와 순원왕후의 혼인식을 기록한 의궤인 ‘순조순원왕후 가례도감’에 등장하는 내시, 별감, 궁녀를 재구성했다. 내시, 별감, 궁녀는 왕과 ..
백제 예술의 투톱, '8가지 무늬 전돌' 중 최초·최고의 산수인물화 있다 아니 금관이나 반가사유상이 아니었던가. 얼마 전 1960~2019년 사이 해외전시를 다녀온 한국문화재 순위를 집계한 자료를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에게서 받았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금관(국보 87호 금관총 출토·5회·1895일)은 8위, 금동반가사유상(국보 83호·7회 2255일)은 3위에 머무른 대신 ‘부여 외리 문양전’(보물 343호·22회·6408일)이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위인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 91호·8회·2650일)와 비교하면 회수로는 3배 가까이, 일수로는 2.4배나 많다. 59년 동안 22회였으니 사람으로 치면 그야말로 뻔질나게 ‘기내식’을 먹은 셈이다. 1937년 충남 부여 규암면 외리에서 발견된 ‘문양전(무늬 전돌)’ 중 산수인물화의 시원으로 꼽..
잃어버린 한성백제 493년 역사를 찾은 고고학자 여러분은 서울의 역사를 두고 정도 600년이라는 말을 들으셨죠. 조선 개국과 함께 서울을 도읍지로 삼은지 600여 년이 지났다는 얘기죠. 그러나 실은 ‘정도(定都) 2000년’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기환의 팟캐스트 ‘흔적의 역사 322회’에서는 왜 서울을 두고 ‘정도 600년’이 아니라 ‘정도 2000년’이라 해도 되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풍납토성 때문에 방향을 틀어 설계된 올림픽대교.|YTN '人터view'캡처 문=지금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정도 600년 정도 600년 소리를 들어왔지 않습니까? 답=그렇죠. 조선이 개국한 게 1392년이고, 한양을 도읍지로 삼은게 1394~5년이니까 ‘정도 620여년’이 되겠네요. 그러나 풍납토성을 한성백제의 도읍지라고 한다면 이젠 ‘정도 2000년’..
단 2~3점 뿐이라는 안평대군 친필, 오구라 유물에 숨어있었네 ‘어, 안평대군의 글씨가 있네. 진적이 거의 없다고 하더니만….’ 얼마 전 필자가 이른바 ‘일제강점기 오구라(小倉)와 오쿠라(大倉)의 한국 문화재 반출’ 기사를 준비하면서 이른바 ‘오구라 유물’의 도록을 훑어보았다. 도록은 2007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국외소재 문화재 조사사업의 하나로 일본 도쿄(東京) 국립박물관을 찾아가 4차례에 걸쳐 조사했던 1100여 점의 사진과 함께 유물 설명을 곁들였다(국립문화재연구소의 ‘해외소재문화재조사서 제12책’, 2005). 필자는 주로 일본의 중요 문화재 및 중요 미술품으로 지정된 39건을 위주로 기삿거리를 찾았다. 그러다가 회화·전적·서예 부문까지 훑어보던 필자의 시선이 머문 곳이 있었다.일제강점기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가 반출해간 ‘오구라 유..
신라의 바둑 공주, '아담사이즈' 금동관 쓰고 1500년만에 재림했다 ‘바둑 고수’였던 신라 공주가 ‘아담 사이즈 금동관’ 등으로 치장한채 환생한 것일까. 미성년자로 짐작되는 신라여성이 무게 약 1000t(트럭 약 200대분)에 달하는 돌무지에 묻혀있다가 1500년 만에 홀연히 등장했다.2014년부터 경주 쪽샘지구를 조사해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44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무덤주인공이 착장한 금동관(1점), 금드리개(1쌍), 금귀걸이(1쌍), 가슴걸이(1식), 금·은 팔찌(12점), 금·은반지(10점), 은허리띠 장식(1점) 등 장신구 조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주인공 주변에서는 비단벌레 딱지날개로 제작된 금동 장식 수십 점과 돌절구·공이, 바둑돌(200여 점)과 운모(50여 점) 등이 쏟아져 나왔다.경주 쪽샘 44호분 주인공의 출토현황. 순금제 드리개를 늘어뜨린 금동관과 ..
한국문화재 털어간 '큰 창고(오쿠라) 작은 창고(오구라)'는 누구? “장관님, 오쿠라(大倉)가 아니라 오구라(小倉)입니다.” 2015년 2월 웃지 못할 기사가 하나 떴다. 한 시민단체 소속 학생들이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 2014년 11월 열린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에서 일본 문무과학성 대신에게 “오쿠라 컬렉션 등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가져간 한국문화재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는 것이다. 오구라 유물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전 경남 출토 금관’. 신라의 전형적인 ‘출(出)자’형이 아니라 가야의 특성인 ‘초화(草花)’ 형 금관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도록에서 오쿠라와 오구라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자성으로 오쿠라는 ‘대창(大倉)’이고, 오구라는 ‘소창(小倉)’이다. 예전엔 큰 대(大)자를 ‘오..
15m '세한도'엔 중국 한국 문사 20명 댓글 달려있었네…여백 5m는 무엇? “절개가 견고하다가 급한 순간에 변하는 이도 있다…군자가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배우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했다…세상을 떠나 있으니 걱정이 없다는 심정으로 추사옹의 마음을 엿보다.”(장악진)1845년(헌종 11년) 청나라 명사 장악진(생몰년 미상)이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본 뒤 남긴 감상평이다. 장악진 뿐이 아니다. 청나라 문사 16명과 조선의 오세창(1864~1953)·이시영(1869~1953)·정인보(1893~1950) 선생 등 4명까지 모두 20명이 ‘세한도’에 줄줄이 시쳇말로 ‘긴 댓글’을 달았다. 물론 20개의 댓글이 모두 ‘선플’로 도배했으니 ‘세한도’의 명성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만 하다. 애초에 세로 23.9㎝, 가로 70.4㎝ 정도였던 ‘세..
"해시계를 종로거리에 걸라"…세종대왕이 천기를 누설한 이유 “때를 아는 것보다 중한 것이 없는데…밤에는 자격루가 있지만 낮에는 알기 어려워…신(神)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해에 비쳐 각(刻)과 분(分)이 환하고 뚜렷하게 보이고, 길 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1434년(세종 16년) 10월2일 기록이다. 세종이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또하나의 발명품을 선보였다는 내용이다. 즉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를 시내 혜정교(종로 1가 광화문우체국 부근)와 종묘 앞에 설치했다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보는(仰·앙) 가마솥(釜·부)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日晷·일귀)로 때를 아는 시계’라는 뜻이다. 이것은 1859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 북쪽 끝에 설치한 빅벤보다 415년이나 빠른 공중시계탑이라 할 수 있다.국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