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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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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 견마지치…인공지능은 승정원일기를 어떻게 번역했나 2005년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Advocaat)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었을 때의 일이다. 네덜란드어로 된 아드보카트 관련기사를 검색해서 번역기를 돌렸더니 ‘Lawyer(변호사)’라는 주어가 계속 보였다. 곧 그 이유를 알아냈다. ‘아드보카트’ 단어에 네덜란드어로 변호사라는 뜻이 있고, 영어에도 ‘Advocate(변호사)’가 있으니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견마지치’를 ‘미천한 신의 나이’로 정확하게 번역한 인공지능 번역기. 승정원의 별칭인 후설(喉舌)도 목구멍(喉)과 혀(舌)로 번역하지 않고 ‘승정원’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66살을 60살로 기록한다던가 ‘거의 쉬는 날도 없이’를 ‘거의 한 달도 지나지 않아’로 표현한다든가 한 것은 전문가의 다듬질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고전번역원 ..
데라우치꽃과 청와대 미남석불 사내초(寺內草), 화방초(花房草), 금강국수나무, 미선나무, 새양버들…. 1922년 식민지 조선에서 자라는 식물을 샅샅이 조사해서 펴낸 일본어 식물서적 부록에 등장하는 식물 5종의 이름이다. 그런데 뒤의 세 가지 식물은 뭔가 한반도 고유종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앞의 두 식물 즉 사내초와 화방초는 어쩐지 좀 수상하다. ■조선의 꽃으로 거듭난 조선총독 데라우치 ‘화방초’는 지금은 ‘금강초롱’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한국 고유종이다. 전 세계에 2종이 있는데 모두 한국에 자생한다. 8~9월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데, 청사초롱 모양으로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피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렇다면 ‘화방초’ 이름은 또 무엇인가. 이 꽃의 학명인 ‘Hanabusaya asiatica (Nakai) Nakai’에서 ..
"개 혀?" 다산 정약용의 개고기 사랑법 “개 혀?” 충청도 사투리가 웃음을 자아낸다. “보신탕(개고기) 먹을 줄 아느냐”는 질문이다. ‘개 혀?’의 복수형도 있단다. ‘개들 혀?’란다. 충북 사람들이 딴죽을 건다. ‘개 혀?’는 엄밀히 말해 충청남도 사투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충북에서는 뭐라고 하느냐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나온다. “개 햐?” 사실 개고기는 동양만의 식습관은 아니었다. 1926년 1월 8일 동아일보를 보면 흥미롭다. “조선에서는 위생상 해롭다고 떠드는데 독일 작센 지방에서는 매년 평균 5만두의 개가 식용으로 팔리고, 개고기 전매업자까지 있다”는 해외토픽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차츰 ‘개고기는 동양의 야만스런 식습관’이라는 이미지로만 굳어져 갔다. 중국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독일의 빌헬름 2세에게서 사냥개를 선물받은 뒤 보냈..
'감악산비'는 제5의 진흥왕순수비다? 진흥왕순수비. 한국사를 배울 때 놓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삼국 가운데 약소국이던 신라가 진흥왕 때 낙동강 서쪽의 가야세력을 정복하고 북쪽으로는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유역을 차지한 뒤 함경도 이원지방까지 진출한 다음 새롭게 개척한 영토를 순행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으로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순수비는 창녕비ㆍ북한산비ㆍ마운령비ㆍ황초령비 등 4곳입니다. 한결같이 개척한 새로운 영토 중에서도 요충지에 속하는 지점에 건립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4곳 뿐일까요. 역사학자들은 진흥왕순수비가 더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상한 곳을 마침내 찾았습니다. 1980년대 초 학계에 보고된 감악산비입니다. 임진강유역의 요충지, 임진강-파주-서울을 잇는 감악산..
한반도 최대의 국제전쟁터는 어디? 삼국시대 사람들은 이 중성산을 칠중성(七重城)이라 했다. 그 후 1300년 가까이 흐른 1951년 4월, 한국전에 참전한 영국군은 캐슬고지(일명 148고지)라 했다. 경기 파주 적성 구읍리에 자리 잡고 있는 해발 148미터의 야트막한 고지. 벌목으로 시야를 확보한 고지엔 군부대의 참호 및 군사시설이 설치돼 있다. 당연히 옛 성벽은 군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옛 성벽의 돌들은 참호를 만들 때 재활용된 것이 분명하다. 무너진 성벽의 높이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대략 15미터 쯤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성은 여러 번 중수한 것 같다. 성의 뒤편으로 올라가는 길, 즉 적성향교에서 오르는 길을 따라가 보면 성 입구에 성벽의 단면이 나타나 있는데, 암반을 깎은 뒤 석축한 곳이 보인다. 이곳이..
사라진 일진회, 그리고 국정교과서 “4000년 역사 이래 단 하루도 완전한 독립이 없었다고? 무슨 소리냐. 단군·광개토대왕 이래 독립정신은 하루도 없어지지 않았다. 우리 힘으로는 자주독립을 못한다고? 미국의 힘을 빌어 독립하면 미국의 노예가 된다…. 송병준·이완용도 한때 영웅이라고? 2000만 인민의 생명을 끊고 어찌 무사하겠는가.”( 1908년 4월 12일) 단재 신채호 선생은 일진회(一進會)에 가입한 벗(友人)의 논리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절교통보서를 쓴다. 단재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일본과 친해야 일본을 배척할 수 있다’ ‘일본을 맹주로 진보해야 서로 보전할 수 있다’는 등의 해괴한 논리를 편 일진회의 가면을 벗기고자 했던 것이다. 1904년 송병준·이용구가 결성한 일진회는 고비 때마다 일제의 침략정책 수행에 앞잡이 노릇을 자처했..
트럼프의 악수폭격 [여적] 트럼프의 악수 악수는 전형적인 서양의 예법이다. 악수에 해당되는 동양의 예법은 읍(揖)이다.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에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리는 인사법이다. 공식적인 자리나 길거리, 혹은 말 위에서 엎드려 절(拜)을 할 수 없으니 이렇게 간단한 예를 갖춘 것이다. 서양의 악수는 기원전 5세기까지 올라가니 매우 뿌리깊은 인사법이다. 기원전 350년 무렵의 석비를 보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남편(트라세아스)이 부인(에우안드리아)과 애틋한 작별을 고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독 미 정상회담에서 메르켈의 악수요청에 딴청을 피우고 쩍벌남의 모습으로 앞을 쳐다본 트럼프. 악수의 기원을 ‘평화’에서 찾기도 한다. “나에게는 무기가 없으니 싸우지 말자”는 의미에서 손을 내..
안종범 김영한 수첩도 사초다 “어젯밤 천둥·벼락을 동반한 폭우가 내렸는데도 그냥 넘어가십니까.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군주가 반성해야 하는데….”(이종성) “아냐. 난 듣지 못했어. 아마 내가 잠든 사이에 (천둥번개가) 친 모양이지. 근데 유신(이종성)은 소리를 들었는가.”(영조) 지금으로 치면 6급 공무원(이종성)의 질타에 최고 지도자(영조)가 쩔쩔매며 변명한다. 고 김영한 청와대 정무수석의 업무수첩. 1728년 10월 3일자 의 한 대목이다. 어느날 살인사건을 심리하는 엄중한 자리에서 신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그러자 영의정 이광좌가 ‘버럭’한다. “아니 대소변이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당하관들까지 줄줄이 나가버리다니 이런 법도가 어디 있습니까.” 영조는 “그래 너무 동시에 많이 나가버려서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어”라고 맞장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