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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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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년 봄 장보고 세력의 슬픈 강제이주 1996년, 발굴단은 장도의 성 내부 무너진 석축 안쪽에서 둥그런 구덩이 유구를 발견했다. 당시 발굴단 학예사 김성배의 회고. “석축이 무너져 내린 부분이 있었어요. 무슨 건물지가 있는 줄 알고 조사했는데 건물임을 입증하는 초석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무너진 석축내부를 정리하다보니 둥그런 윤곽이 보였어요. 잘 들어내니까 철로 만든 유물의 끝이 보였어요.” 김성배의 말이 이어진다. 청해진 주민들은 장보고를 잃은 뒤 서둘러 제사용기 및 생활용품을 묻고 강제이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유구에서 세발 달린 정(鼎·철솥)과 함께 사각형 철제 소반, 편병, 청동병, 저장용 토기 등 범상치 않은 유물들이 나왔어요. 얼마나 놀랐는지….” 세발솥은 알려진 대로 고대 제사용으로 쓰인 대표유물. ‘..
애완동물은 왜 망국의 조짐인가 ‘춘추 5패’ 중 한 사람인 초 장왕(재위 기원전 614~591)에게 아끼는 말(馬)이 있었다. 장왕은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수 놓은 옷을 입히고, 화려한 집에서 기르면서, 침대에 눕게 하고, 대추와 마른 고기를 먹였다. 그런데 그렇게 끔찍하게 사랑했던 말이 죽고 말았다. 얼마나 먹였던지 살이 쪄서 죽은 것이다. 슬픔에 빠진 장왕이 신하들에게 명한다. “대신들은 모두 상복을 입어라. 말의 시신은 대부(大夫·재상 바로 밑의 고관대작)의 예절로, 즉 속널과 바깥 널을 구비한 관곽에 안장하고 장례를 지내라.” 대신들은 “말이 죽었을 뿐인데, 무슨 대부의 예로 장사를 지내냐”며 극력 반발했다. 왕은 “누구든 반대하는 신하는 죽여버린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때 우맹이라는 사람이 나섰다. 본래 초나라 음악가였던..
청와대 진돗개는 왜 '의문의 1패'를 당했나 대통령이 키우는 반려견에게 ‘퍼스트도그(Firstdog)’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퍼스트도그’는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고독한 최고권력자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진정한 친구를 원한다면 개를 키우라”고 했을 정도였다. ‘퍼스트도그’는 대통령이 대중적 이미지가 필요할 때는 최측근 ‘정치견(犬)의 신분’으로 활약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반려견인 보(7살)과 써니(4살)는 대통령 취임일에 미셸 여사 옆에서 하객들을 맞이했고, 부활절에는 계란굴리기 행사에도 나섰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의 반려견 팔라는 1주일에 수천통의 펜레터를 받는 ‘인기견’이었다. 루즈벨트는 펜레터를 일일이 읽고, 답장을 보내주느라 집무시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리처..
인조반정 쿠데타군의 비밀훈련장 최근 민통선 이북지역인 파주 덕진산성에서 고구려 시대 유물이 출토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 그러나 이곳은 조선시대 인조반정군이 반란을 꾀하며 훈련했던 역사적인 장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 덕진산성은 어디인가. 임진강 하류, 곡류지점에 초평도라는 섬이 있다. 초평도는 176만5000평방미터 크기의 무인도. 섬전체가 갈대밭과 수목으로 되어 있으며, 만수위 때나 비가 많이 내릴 때면 상당부분이 물에 잠기기 일쑤인 곳이다. 이 초평도 서북쪽, 즉 임진강 북안에 백제시대 때 처음 쌓은 곳으로 보이는 쇠락한 산성이 하나 있다. 그곳이 덕진산성이다. 덕진산성을 찾으려면 통일대교(문산읍 마정리) 혹은 전진교(파평면 율곡리)를 통해 민간인 통제선을 지나야 한다. 군부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길목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
‘넘버 3’ 황제와 ‘구천구백세’ 실세 1624년(인조 1년) 반정 이후 새 임금(인조)의 즉위를 중국 조정에 고하고 귀국한 홍익한(1586~1637)은 매우 의미심장한 명나라 소식을 전한다. “글쎄, 중국 명나라에서 지금 천하의 권세를 가진 첫번째는 태감 위충현이고, 둘째는 객씨이고, 셋째가 황제(희종)이라 합니다.”() 지금 명나라의 권력서열을 따지면 ‘넘버 1’은 환관 위충현, ‘넘버 2’는 황제의 유모(객씨)이며, 만백성의 어버이여야 할 황제는 ‘넘버 3’라는 이야기가 퍼졌다는 것이다. 황제는 1620년 부왕인 광종이 즉위 29일만에 급서하자 16살의 나이에 아무런 준비없이 황위에 올랐다. 목공일에 빠져 모든 정사를 환관 위충현과 유모 객씨에게 넘겼다. 청나라 시대 환관. 황제의 측근에서 종종 실권을 휘둘렀다. 그 같은 위충현과 객씨의..
'아녀자 정치'를 욕보이지 마라 중국 역사를 쥐락펴락한 여인 둘을 꼽자면 바로 여태후(한나라)와 무측천(당나라·대주)이다. 여태후는 한고조 유방의 정부인이다. 한나라 창업의 공신인 한신과 경포, 팽월을 제거하고 통치의 초석을 마련한 여걸이다. 여태후의 계책에 말린 한신은 죽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내 아녀자(여후)에게 속았구나. 이것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랴.(乃爲兒女子所詐 豈非天哉)” 당나라 고종과 무측천의 무덤인 건릉 ■사람돼지와 토사구팽 그러면서 한신은 그 유명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고사를 남겼다. 물론 한고조는 한신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었다. 하지만 창업 이후, 한신처럼 빼어난 인물은 걸림돌일 뿐이었다. 여태후는 한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한신을 도모한 것이다. 창업공신인 경포와 팽월도 여태후의 계책에 목을 내놓고 말았다. 남..
'오방낭'을 위한 변명 우리 전통옷의 특징이 하나 있다. 호주머니가 달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마고자에 달린 호주머니는 뭐냐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마고자는 임오군란의 배후로 지목돼 청나라에 유폐된 흥선대원군이 1885년 귀국하면서 입은 청나라 옷(마괘)에서 유래됐다. 이전엔 남녀노소가 별도의 주머니를 달고 다녔다. 주머니의 유래는 뿌리깊다. “신라 혜공왕(재위 765~780)은 어릴 때 비단주머니(錦囊)를 차고 여자아이처럼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황금허리띠에도 이런저런 장식품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고려 때도 허리띠에 갖가지 장식에 향이 든 비단주머니(錦香囊)을 찼는데, 많을수록 귀하게 여겼다.() 자연스레 옷과 장식품은 당대의 멋과 전통을 담은 패션이 된 것이다. 특히 색깔에 심오한 뜻을 새겼..
18세기 가왕(歌王) 밴드의 '나는 가수다' 경연 “당세의 가호(歌豪) 이세춘은 10년간 한양 사람들을 열광시켰지.(當世歌豪李世春 十年傾倒漢陽人) 기방을 드나드는 왈자들도 애창하며 넋이 나갔지.(靑樓俠少能傳唱 白首江湖解動神) 18세기 사람인 신광수(1712~1775)가 남긴 의 ‘증가자이응태(贈歌者李應泰)’라는 시의 구절이다. 무슨 내용인가. 신광수는 호걸가수 이세춘의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거듭했으며, 10년간이나 유흥업소에서 애창됐음을 전하고 있다. 신광수가 이 시를 지은 것이 1761~63년 사이였다. 따라서 이세춘은 1750~60년 사이 조선의 가왕(歌王)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월야선유도’. 달밤에 대동강변에서 벌어지는 선상연회의 장면이다. 이세춘 그룹의 게릴라콘서트도 이같은 분위기에서 펼쳐졌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