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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와 채도, 이렇듯 아름다운 토기…선사인들은 왜 만들었을까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으로 유명하다. 이 박물관에 가면 임진왜란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이 박물관만의 명품 공간이 또 하나 있다. 2018년 역사문화홀을 신설하면서 만든 대형토기진열장이다. 가로 10m, 세로 5m에 이르는 진열장에는 빗살무늬 토기부터 조선시대 백자까지 1만년의 역사를 압축해주는 400여점의 도기와 토기가 진열돼 있다.

청동기시대에 유행한 붉은간토기와 가지무늬토기. 아름다운 붉은 색과, 독특한 가지무늬와 함께 반들반들 윤이 나는 토기이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그런데 그 토기진열장에서도 단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토기들이 있다. 청동기시대 유행한 붉은간토기(홍도)와 가지무늬 토기(채도)이다. 붉게 빛나는 표면(홍도)과 독특한 가지모양의 무늬(채도)는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궁금증이 생긴다, 선사인들은 이런 세련된 토기를 어떻게, 왜 만들었고 어디에 사용했을까. 국립진주박물관이 지난 2일부터 8월23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여는 특별전 ‘빛×색=홍도×채도’는 빛과 색을 담아 아름다움을 간직해온 두 그릇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다.

김명훈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전시 제목인 빛은 두 토기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광택을, 색은 붉은 표면과 검은색의 가지무늬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홍도와 채도는 남강 유역의 중심도시인 진주를 대표하는 유물이기도 하다. 국립진주박물관에는 토기진열장에서 볼 수 있듯 전국에서 가장 많은 400여점의 홍도 및 채도를 소장하고 있다.

진주 대평유적에서 출토된 홍도(붉은 간토기)들. 전국적으로 2400여점의 홍도와 채도가 확인됐는데, 그중 남강유역에서 가장 많은 완형이 나왔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이번 특별전에는 진주 남강유역 출토품은 물론 국립중앙박물관 등 전국 19개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홍도와 채도 327점을 국내 최초로 한 자리에 모았다. 홍도와 채도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물레가 없었던 시대, 선사인들은 손으로 토기를 빚고 특별한 시설 없이 맨바닥에 불을 피워 구웠다. 정성들여 문질러 윤을 내고 광물 안료의 가루를 물에 개어 발라 낸 색깔은 수천 년 지난 지금까지도 뒤떨어지지 않는 세련된 미감을 선보인다. 청동기시대 토기 중 두 토기의 수량은 매우 적다. 하지만 남강유역 등의 장례문화에서 청동기보다 중요하고 필수적인 ‘껴묻거리(부장품)’로 유행했다. 또한 마을 제의와 각종 의례에 사용되면서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홍도. 물레가 없었던 선사시대에 손으로 토기를 빚고 맨바닥에 불을 피워 구워냈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특별전을 통해 관람객들은 흙색의 거친 그릇에 붉은 빛과 가지 무늬가 입혀져 홍도와 채도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알게된다. 전시실 입구에서 두 토기가 각각의 색과 무늬로 완성되는 모습을 담은 디지털 포스터를 프로젝션 맵핑 영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프롤로그는 아름다운 붉은색과 광택, 독특한 무늬를 가진 선사토기를 소개하고, 윤이 나는 이유, 붉은색과 가지 무늬가 의미하는 바를 설명한다. 경북 울진 죽변리와 경남 통영 연대도에서 출토된 채색토기를 비롯해 홍도·채도와 같은 곳에서 출토된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등이 비교 전시된다.

진주 대평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들을 전시한 모습.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또 전국에서 모인 가지무늬토기, 독특한 모습의 그릇과 하동 띠밭골에서 출토된 국내 최대 크기(높이 45㎝, 최대너비 50㎝)의 붉은간토기 항아리 등도 출품됐다. 문화교류의 일면도 확인할 수 있다. 남강 유역에서 출토된 토기 77점을 이용한 토기탑과 가지 무늬를 가지고 있는 중국 가오타이산(高臺山) 문화 출토 붉은간토기 등이 전시된다.

이밖에 한반도산 명품 뿐 아니라 세계의 붉은간토기와 채색토기도 소개된다. 또한 청동기시대 이후 삼국시대까지의 광택 있는 토기들도 전시된다. 이 그릇들은 홍도·채도와 같이 그릇 표면의 정리기법과 안료를 바르는 행위 등을 통해 윤을 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최영창 국립진주박물관장은 “아름다운 색과 무늬. 편리한 기능을 가진 홍도와 채도의 맥은 3000~3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어지고 있다”면서 “특별전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선사인들의 삶과 문화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