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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1600년전 아기반달가슴곰은 왜 경주 월성해자에 묻혔을까

“아기곰을 포함한 반달가슴곰의 가죽으로 군대의 깃발장식을 꾸몄다.' 

신라의 1000년 도성인 경주 월성의 해자(외부 침입을 막으려고 성 주변을 파서 못으로 만든 곳)에서 1600년 전 신라인의 ‘삶의 흔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16년부터 19년까지 월성 해자의 내부를 조사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금까지 얻어낸 유기질 유물과 관련된 학제간 연구를 통해 몇가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고 최근 전했다.  

1600년전 반달가슴곰의 뼈로 추정되는 곰뼈가 신라의 1000년 도성인 경주 월성 해자에서 출토됐다. 이 중에는 아기곰의 뼈도 있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월성은 기원후 101년 축성 이후 멸망(935년)까지 843년 동안 천년왕국 신라의 왕성이었다. 성이 초승달 모양이어서 ‘월성(月城·둘레 2340m 정도)’이라 했다. 지난해 봄 월성의 외부 둘레에 판 해자에서 40㎝ 가량의 미니어처 배(舟)와 방패 2점, 맷돼지와 말·개·소·사슴·바다사자·상어뼈와 함께 곰뼈가 출토된바 있다, 이와함께 해자를 둘러싼 구조물과 출토된 신라시대 씨앗 및 열매 63종, 그리고 신라시대 당시의 규조(물에 사는 식물성 플랑크톤) 등도 채집됐다.

출토된 곰뼈 가운데는 개(犬)가 이빨로 문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뒷다리뼈와 앞팔뼈에 남아있다. 이것은 곰을 해체한 후 뼈를 개의 먹이로 주었다는 얘기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런데 이후 발굴유물을 두고 심화연구를 벌였는데, 그 중에는 출토된 곰뼈를 ‘반달가슴곰’으로 추정해서 신라시대부터 이어지는 곰의 계보를 확인한 성과도 포함됐다. 한반도에서 자생해온 곰과동물은 불곰과 반달가슴곰 등 두 종류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성해자 출토 곰의 뒷다리뼈는 청동기~철기시대 유적인 사천늑도에서 출토된 불곰보다 현저히 작다. 김헌석 국립경주문화재연구원 전문위원은 “월성해자 출토 곰뼈는 현생 반달가슴곰보다는 약간 크지만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와 사천 늑도 등 국내외에서 확인되는 불곰 자료를 비교할 때 반달가슴곰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같은 부위의 뼈(뒷다리뼈와 앞팔뼈)가 3점 이상씩 확인된 것으로 보아 곰은 최소 3마리인 것으로 추정됐다. 뼈 중에는 관절면의 성장판이 굳어지지 않은 뒷다리뼈가 확인됨으로써 아기가슴곰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기곰이 포함된 최소 3마리의 곰이 왜 이곳에 묻혔을까.

우선 곰은 해자 주변의 어느 공방지에서 해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악골(아래턱뼈) 부위에서 칼날 자국이 남아있는데, 이것은 곰의 두개골과 하악골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남은 흔적이다. 동물의 두개골과 하악골은 뼈가 아닌 근육으로 연결되어 있다. 김헌석 전문위원은 “이 두 부위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하악지(턱뼈에서 두개골의 광대뼈 안으로 들어가는 부분)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해체흔이 남게 된다”면서 “이런 흔적이 곰뼈의 아래턱뼈에서 보인다”고 부연설명했다.

곰은 해자 주변의 어느 공방지에서 해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악골(아래턱뼈) 부위에서 칼날 자국이 남아있는데, 이것은 곰의 두개골과 하악골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남은 흔적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제공

그렇다면 곰은 왕실제사를 위한 제물로 쓰인 것은 아닐까. 한성백제의 도성인 풍납토성의 제사유구에서도 곰뼈가 확인된바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김헌석 전문위원은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출토된 곰뼈 가운데는 개(犬)가 이빨로 문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뒷다리뼈와 앞팔뼈에 남아있다. 사람의 이빨은 분명 아니다. 김헌석 전문위원은 “이것은 곰을 해체한 후 뼈를 개의 먹이로 주었다는 얘기”라면서 “이것은 또한 곰뼈가 제사에 사용되지 않지 않았음을 시사해주는 방증자료”라고 말했다. 즉 제사를 지내고 술과 음식을 내눠먹는 음복(飮福)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신성한 왕실제사를 지내는 곳에 개가 활개를 치고, 제단에 올린 제물을 개에게 던져주었겠느냐는 것이다. 

제사용, 즉 제물이 아니면 그저 식용으로 곰을 잡았다는 얘기인가. 그런데 출토된 곰뼈의 경우 앞다리와 뒷다리에 해당되는 부위가 많았다. 이 또한 시사점이다. 만약 동물수렵의 목적이 육류사용이라면 고기가 많은 상완골(어깨에서 팔꿈치에 이르는 뼈)이나 관골(골반 부위뼈), 대퇴골(넓적다리뼈) 부위가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위는 많지 않다. 김헌석 전문위원은 “고기가 적은 부위를 일부러 사용했다면 이것은 식육 목적으로 곰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라고 밝혔다.  

해자에서 출토된 해체의 흔적. 아래턱 뼈만 남아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제사용도, 식용도 아니면 어떤 용도인가. 김헌석 전문위원은 <삼국사기> ‘잡지·무관조’에 등장하는 곰 관련 기사를 주목했다.

“제감화(弟監花)는 곰의 뺨가죽, 군사감화(軍師監花)는 곰의 가슴가죽, 대장척당주화(大匠尺幢主花)는 곰의 팔가죽으로 만든다.”

<삼국사기> ‘무관’편은 신라의 각급 부대 지휘관을 상징하는 깃발의 장식을 설명하고 있다. 이중 ‘제감화’와 ‘군사감화’, ‘대장척당주화’는 곰의 가죽을 장식으로 삼은 부대 지휘관의 깃대에 다는 ‘화(花·깃발)’를 가리킨다. 결국 곰의 뺨과, 가슴, 팔가죽으로 지휘관들의 깃장식을 제작하는 공방이 월성 근처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연구소측은 이같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2021년 체코 프하라에서 개최될 세계고고학대회에서 ‘신라왕성을 감싸고 있던 월성숲과 환경복원’을 주제로 독립세션(회의)을 구성하는 개가를 이뤘다. 

월성해자에서 출토된 곰의 골격부위. 살이 많지 않은 뒷다리뼈와 앞팔뼈 등이 많다. 식용으로 곰을 잡지 않았다는 얘기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올 7월 열릴 예정이던 프라하 세계고고학대회가 코로나 19로 내년으로 연기됐다”면서 “아쉬운 감이 있지만 전세계 100개국 이상이 참여하는 ‘고고학 올림픽’에 독립세션으로 참가가 결정된만큼 집약적인 학제간 연구를 통해 학술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김헌석의 ‘월성해자 출토 곰뼈의 이용과 폐기에 대한 시론’, <중앙고고연구> 제31호, 중앙문화재연구원, 2020을 참고했습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