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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제작된 '가짜 총통'이 지금도 버젓이…조선 화기 800여점 분석해보니

1992년 8월 한산도 앞바다에서 인양했다는 ‘총통’(발사무기)이 일사천리로 국보(제274호)로 지정됐다. 이름하여 ‘귀함별황자총통’이었다. ‘만력 병신년(1596년·선조 29년) 6월 제작된 귀함(거북선)의 황자총통은 적선을 놀라게 하고, 한 발을 쏘면 반드시 적선을 수장시킨다(龜艦黃字 驚敵船 一射敵船 必水葬)’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거북선에 장착한 화포가 발견됐다는 것이니 국보 중 국보로 평가받을 만했다. 그러나 이 총통은 어이없게도 4년 만(1996년)에 국보에서 전격 해제된다. 

조선시대 총통은 휘어질지언정 깨지지는 않게 주석함유량을 5~10wt%(중량퍼센트·weight percent) 정도로 맞추었다. 발사 때의 충격으로 총통이 깨지면 인명이 다칠 수 있기에 최악의 경우에는 휘어지도록 만든 것이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승진에 눈이 먼 이충무공 해전유물발굴단장, 즉 현직 대령이 기술자와 짜고 가짜 총통을 제작한 뒤 바다에 밀어넣고는 이를 인양한 것처럼 속인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수사결과 이들은 명문이 새겨놓은 가짜총통을 제작한 뒤 1년간 화공약품을 부어 빛바랜 유물로 보이도록 강제 부식시킨 사실이 밝혀졌다. 그 와중에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성분 분석 결과 아연이 8%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졸속 국보지정을 막아내지 못했다가 4년 만에 가짜로 들통난 것이다. 

청동합금총통류를 분석해보니 16점에서 아연이 함유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구리(Cu)- 주석(Sn)-납(Pb)과 함께 아연(Sn)이 함유된 것이 15점(5%), 구리+ 아연이 1점(0%)이었다. 14~16세기 총통에 아연이 함유되었다는 것은 ‘가짜’의 증거일 수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국립진주박물관이 ‘가짜총통’ 사건이 벌어진지 20여 년이 지난 2018년부터 14~16세기 제작됐다는 청동제 소형총통 292점의 성분을 분석해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분석대상 중 16점(5%)에서 아연이 함유됐음을 확인한 것이다. 아연을 합금하려면 원광석에서 추출해야 한다. 그러나 아연은 휘발성이 매우 강한 금속으로 알려져 있어서 추출해서 제련하기가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다. 허일권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에서 금속 아연의 제련과 합금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상평통보가 제작된(1678년·숙종 4년) 17세기 이후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게다가 아연이 함유된 16점의 소형총통을 면밀히 분석해보니 일부러 부식시킨 흔적도 역력했다. 

국내 소장 일부 총통이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는 다른 증거도 찾아냈다. 총통을 제작할 때의 필수조건은 총구와 총신의 내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해야 한다. 중심에 자리잡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어찌되겠는가.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다뉴세문경(국보 제141호).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깨졌다. 13wt%(중량퍼센트·weight percent)를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잘 깨지고, 그 이하면 잘 휘어지는 특성을 갖는다고 한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중간이 얇아지기라도 하면 화약이 발사되다가 터지고 만다. 그렇기에 벽을 고르게 하고 일정한 총신을 만드는 것이 소형총통 제작의 핵심기술이다. 따라서 당대 조선의 기술자들은 총통 제작 때 총구와 총신을 고정하고 공간을 유지하는 장치, 즉 코어받침쇠(채플릿)를 설치했다. 긴 막대 형태의 총신부 내형을 고정하는 윗부분은 W자형, 아랫부분은 M자형, 약실의 끝부분은 L자형으로 각각 만들었다.

그런데 국립진주박물관 연구팀이 소형총통들을 CT(컴퓨터 단층)로 촬영한 결과 10여점에서 이러한 코어받침쇠가 보이지 않았다. 허일권 학예사는 “이 중에는 아연이 함유되어 이중으로 가짜일 가능성이 체크된 총통도 있다”면서 “이들 가짜로 추정되는 총통에서는 근래에 부식시킨 흔적도 보인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가짜라는 것이다. 허일권 학예사는 “귀함별황자총통이 유명세를 타던 1990년대 초 이와같은 가짜가 제작 유통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 군기시터에서 엉겨붙은채 발견된 소형총통 더미. 휘어져 기능을 상실한 총통을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국립진주박물관은 이렇게 고려말~조선중기, 즉 14~16세기 사이에 제작된 소형 화약무기 800여점을 조사한 결과를 <조선 무기 조사연구 보고서Ⅰ: 소형화약무기>를 최근 발간했다. 최영창 관장은 22일 “보고서에 실린 무기만 총 748점에 이른다”면서 “국내 유일의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대량의 실물 자료를 바탕으로 과학적 조사와 문헌 자료를 연계하여 종합적인 연구 결과를 도출했다”고 자평했다. 보고서에는 800여점 중 선별한 소형 총통 총 275건(292점)과 조총 48건 50점(총신 24점 포함)의 사진 및 제원이 상세히 실려 있다. 

박물관측은 지난 2년간 연구 대상 총통의 제원을 측정하고 내시경 조사와 3차원 스캔, CT 촬영 등으로 성분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앞서 밝힌 일부 자료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등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한 예로 비파괴 분석 결과 국내 청동제 소형총통 300여점의 주성분(구리-주석-납) 중 주석 함유량은 5~10wt%(중량퍼센트·weight percent) 정도로 측정됐다. 이 정도의 주석함유량은 일반적인 청동제 문화유물과 비교하면 낮은 편에 속한다. 고대 유물 중 청동 거울의 경우 주석함유량이 20wt% 이상이다.

소형총통 주조 때의 내형과 외형, 그리고 코어받침쇠의 배치 모식도. W자 M자 L자형 코어받침쇠는 화약길이 일정하도록 받쳐주는 장치이다. 그런데 국내 현전하는 총통 가운데 이런 장치가 없는 것이 10여점 확인됐다. 가짜로 추정될만한 총통들이다.|국립진주박물관 제공 

그런데 총통에서 보듯 주석 함유량이 낮으면 휘어질지언정 쉽게 깨지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바로 이것이 무기로서의 총통을 만드는 원칙이다. 무기(총통)를 쓰는데 도중에 깨지면 어찌 되겠는가. 화약을 발사할 때의 충격으로 깨진다면 주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을 염려가 생긴다. 따라서 최악의 경우 휘어질지언정 깨지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허일권 학예사는 “이것이 현전하는 소형 총통 중 깨진 형태가 아닌 휘어진 상태로 전해지는 총통이 상당수 발견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1992년 해군의 이충무공 해전유물발굴단이 인양했다는 총통, 4년 뒤 가짜로 판명됐다. 아연이 8% 이상 함유돼있다. 금속 아연의 제련과 합금이 본격 시작된 시기는 상평통보가 제작된(1678년) 17세기 이후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또한 이번 연구에서는 명문 조사와 3D 스캔 등을 통해 조선 전기의 소형 총통에 보이는 마디(죽절)의 개수에서 총통의 종류에 따른 규칙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밖에 CT 촬영과 내시경 조사 결과, <국조오례의서례>나 <병기도설>의 기록을 바탕으로 진행된 선행 연구에서 주장된 격목부(격목통)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격목(隔木)’은 폭발로 발생한 연소가스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발사체와 화약 사이의 공간을 막아주는 나무장치다. 즉 총통 약실 내부의 폭발압력을 높이기 위한 보조장치이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 가운데 내부에 격목이 남아있는 총통도 처음 찾아냈다. 

최영창 관장은 “화약무기는 당대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인데 중국, 일본 등의 연구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번에 CT, 3D 스캔 등의 최첨단 장비를 활용한 연구를 통해 많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