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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세워라!(立)세워라!(立)세워라!立

“망측스럽게….”

2000년 4월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주변 웅덩이에서 야릇한 유물이 출토됐다. ‘남근(男根)’목간이었다. 길이가 22.6㎝(두께 2.5㎝)나 됐다. 목간의 밑부분은 약간 뾰족하게 다듬었고, 그것도 모자라 구멍까지 뚫었다. 

한쪽 면에는 ‘천(天)’자와 ‘무봉(无奉)’자가 서로 방향을 거꾸로 해서 새겨져 있었다. 다른 한면에는 ‘道立立立’이라는 글자가 확연했다. 

땅을 향해 새겨진 ‘天’은 무엇인고? 또 남근 목간에 ‘立’을 세 번이나 반복한 뜻은? 이것은 ‘세워라(立·서라)!세워라(立·서라)!세워라(立·서라)!’라는 뜻이 아닌가. 대관절 이 무슨 망측한 소리인가. 

목간이 발견된 곳은 백제 각 지방에서 사비성으로 들어오는 나성의 대문 및 중심도로와 아주 가까웠다. 그야말로 백주대로에서 이상야릇한 목간이 발견된 것이다.

이용현(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은 목간에 새겨진 글씨가 거꾸로 쓴 부분(天)과 제대로 쓴 부분(道立立立)으로 나뉘는 것에 주목했다. “평상시와 발기 때의 두 가지 상황을 전제로 제작됐다”는 것이다.

“또 있어요. 밑부분 구멍에 줄을 매달아 늘어뜨릴 수 있도록 했고…. 뾰족하게 깎아 밑부분을 꽂아 세울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마음대로 남근을 세우거나 아래로 축 늘어뜨릴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윤선태(동국대 교수)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라 ‘도양’을 ‘길의 신’으로 해석했다. 백제가 지금의 서울 세종로 격인 중심도로에서 ‘길의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백제인들은 남근목간을 세운 뒤 기도했을 것이다.

“이제 남근이(을) 섰다(세워라)! 섰다(세워라)! 섰다(세워라)! 사악한 귀신과 도깨비들은 썩 물렀거라.” 

남근은 나라의 안녕, 그리고 악신·질병의 추·예방 등을 위해 숭배되고 신성시됐다. <삼국유사>는 “지증왕의 생식기가 1척5촌(약 45㎝)이나 됐다”고 기록했다. 또 가락국 김수로왕은 “거대한 남근을 낙동강 양쪽에 턱 걸쳐놓을 정도”였단다. 그걸 모르던 길손이 앉아 곰방대를 탁탁 터는 바람에 왕의 ‘그곳’에 커다란 흑점이 생겼다나 어쨌다나. 여하간 ‘길 제사’ 때 ‘세워~세워~세웠던’ 이 남근목간은 조선의 ‘장승’ ‘남근석’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이 전통은 도래인의 발자취가 닿은 일본까지 연결된단다. 백제가 뿌린 ‘남근 신앙’이 일본열도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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