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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감히 어전에서 담배를"…야단 맞은 조선 최초의 애연가, "꼴보기 싫다"

이기환의 ‘하이 스토리(Hi-story)’, 이번 주 이야기는 담배입니다. 

그것도 ‘감히 어전에서 담배를 뻑뻑 피운 간큰 신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계곡 장유(1587~1638)을 아십니까. 이정구(1564~1635)·신흠(1566~1628)·이식(1584~1647) 등과 함께 조선 중기의 4대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분입니다. 

신윤복의 ‘연소답청’. 철없는 양반들이 기녀들을 말에 태운 채 말에게 담배를 붙여 대령하고 있다.|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그런데 우리나라 담배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계신데 바로 이 장유입니다. 왜냐면 <오주연문장전산고> 등 각종 문헌을 보면 담배가 들어온 것이 1618년(광해군 10년) 무렵인데, 조선에서 가장 먼저 피운 사람이 바로 장유랍니다. 장유는 자신의 <계곡만필>에서 조선에서 담배가 전래되고 퍼진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령초(담배)는 20년 전 조선에 들어왔다. 위로는 고관대작들과 아래로는 가마꾼과 초동목수들까지 피우지 않은 자가 백 사람, 아니 천 사람 가운데 겨우 하나 있을까 말까 하다.”

장유의 말에 따르면 담배가 들어온지 20년 만에 1000명 중 999명이 피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과장이겠지만 그만큼 급속도로 퍼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장유의 담배 사랑은 못말리는데요. 예를 들면 장유는 병이 들어 요양하면서도 담배를 피우며 흥에 겨워 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단원 김홍도의 ‘장터길’. 말 위에서 더벅머리 앳된 이와 어른이 맞담배질을 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누가 이 담배를 동방에 전했을꼬…구절초처럼 기이한 향기 물씬 풍기는구나…한 번만 써 보면 신약(神藥)인 줄 당장 알리라.”(<계곡집>) 뭐 이렇게 담배예찬론을 펼칩니다.

그런데 장유의 담배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담배와 관련된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남깁니다. 즉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승정원일기> 1637년 11월2일조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신윤복의 ‘청금상련’. 사대부와 기녀, 의녀가 연꽃감상을 하며 맞담배를 피우고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일찌기 장유가 인조 임금와 신하들이 모여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때 장유의 장인인 김상용(1561~1637)이 그 자리에서 ‘어디서 담배를 꼬나무느냐’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승정원일기>는 공식기록이기 때문에 팩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 팩트만 전달한 ‘어전 핀잔’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민간에 퍼집니다. 사실 그 당시는 담배가 들어온지 초창기였기 때문에 담배예절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때 장유가 임금 앞에서 담뱃대를 빡빡 빨았을 겁니다. 더구나 장유는 세자의 스승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다 보다 못한 장인(김상용)이 사위 장유에게 이렇게 핀잔을 주었다는 겁니다. 

“다른 이도 아닌 세자의 스승인 자네가 어찌 어전에서 남초(담배)를 피우시는가.” 

장인의 꾸지람을 들은 장유가 재빨리 담배를 끄자 김상용이 한마디 더 쏘아붙였답니다.

“구용정(口容正)하게.”

구용정이 뭐냐면 담뱃대를 빨 때 입모양을 비쭉대며 빡빡 소리를 내니 입모양(口容)을 바르게(正) 하라는 꾸지람이었습니다. 하기야 초창기에 담배예절이 있었겠습니까. 언젠가 임금이 궁중에 숙직하던 문관들이 모여 멋대로 흡연하는 꼴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 했답니다.

혜원 신윤복의 ‘연못가의 여인’. 뒤뜰에 활짝 핀 연꽃 너머로 무료해 보이는 여인이 앉아 장죽을 물었다 생황을 불었다 상념에 잠겨 있는 모습을 담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구불미(口不美·입 모양이 아름답지 않다는 뜻) 하구나!”

이 일화는 민간의 구전을 정리한 문일평의 ‘담배고’에 나와있습니다.(<호암전집>·조선일보출판부·1939) 

임금 앞에서 담배연기를 피우는 것도 불손한 일이거니와, 거기에 장죽(긴 담뱃대)를 뻗치고 ‘체신 머리 없이’ 입모양을 빡빡 거리니 ‘구불미하니 구용정하게’라는 말이 나오는게 당연했을 겁니다. 물론 이후에 궁중에서 담배예절이 생겼다는 겁니다. 아마도 장유가 담배예절을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겠죠. 

조선 말기 인물인 이유원(1814~1888)의 <임하필기>는 “장유의 장인인 김상용이 임금에게 건의해서 그 ‘요망한 풀’을 엄금하도록 청했다”고 썼습니다. ‘요망한 풀’, 즉 한자로 요초(妖草)란 바로 담배를 일컫는 말이었는데요. 정식 역사서인 <인조실록>에는 왜 요초인지까지 설명했는데요. 

“오래 피운 자가 유해 무익하다는 것을 알고 끊으려 해도 끝내 끊지 못한다.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 했다(久服者知其有害無利 欲罷而終不能焉 世稱妖草)”(<인조실록>)고 기록했습니다.

담배가 들어온 초창기에 이미 ‘요초’라 할만큼 중독성이 심하고, 그 효능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는 거죠. 

장유의 초상화. 얼굴 오른쪽 옆 화면에 작은 해서로 ‘계곡 장유선생 초상(谿谷 張維先生 肖像)’이라고 써 있다. 장유는 조선 최초의 흡연가이자 애연가로 알려져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최초의 애연가인 장유의 말대로 담배가 도입된지 20여 년 만에 위로는 고관대작과 밑으로는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담배를 빡빡 피워댔으니까요. 

장유를 비롯한 초창기 애연가들은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알았을까요. 장유는 담배가 ‘막힌 기운을 뚫어주고’ ‘배고플 땐 배부르게 하고 배부를 땐 배고프게 하며, 추울 땐 따뜻하게 하고 더울 땐 서늘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장유는 그렇게 담배예찬론을 펼치면서도 ‘담배가 폐를 상하게 만들 수 있는 풀’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즉 한 중국인과의 대화에서 “담배는 성질이 건조하고 열이 있어서 필시 폐(肺)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했으니까요.(<계곡만필> ‘남령초 흡연’) 그럼에도 장유는 ‘막힌 기운을 확 뚫어준다’는 담배의 노예가 되었던 겁니다. 그런데 장유는 약과였습니다. 

조선의 중흥군주라는 정조는 더 지독한 골초였고, 아예 조선을 담배의 나라로 만들고자 했으니까요. 대체 왜 그런 걸까요.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