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흔적의 역사

골초 대왕 정조임금이 꿈꾼 '담배의 나라'

 1560년쯤 유럽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담배는 그야말로 요원의 들불처럼 전세계로 퍼진다.
 결국 60년도 안되어 극동지역으로 몰려온다. 이른바 ‘담뱃길’은 여러 곳으로 추정된다. 
 우선 청나라 초기 사람인 왕포가 쓴 <인암쇄어(蚓菴쇄語)>를 보면 담배는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의종 연간(1628~1644)에 중국으로 전해졌다는 기록이 나온다. 담뱃잎이 여송(필리핀 루손섬)에서 전래됐다는 것이다. 담배의 전래를 연구한 중국의 사상가 우한(오함)은 담뱃길을 대략 3가지로 요약한다.
 즉 일본→조선→랴오둥(요동)이 한 갈래이고, 필리핀(루손)→푸젠(복건)→광둥(광동)이 또 다른 갈래, 그리고 남양(남태평양)군도→광둥(광동)→중국 북방 등이 또 하나의 갈래였다는 것이다. 중국 광저우(廣州)→조선→일본으로 거쳤다는 ‘역 담뱃길’의 주장도 있지만, 근거가 없다는 게 우한의 주장이다. 이 우한의 주장이 중국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윤복의 <연소답청>. 조선에 담배가 들어온 지 불과 5년 만에 담배선풍이 불었다. 4~5살 짜리 어린아이도 담배를 물고 있었다고 한다. 기생들의 놀이에 담배 시주을 자처하는 이른바 양반 사내들의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간송미술관

중국에 담배가 들어왔을 때 중국 조정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인암쇄어>를 보라.
 “숭정 계미년(1643년) 명령을 내려 흡연을 금했다. 민간에서 담배를 재배하는 자는 도형(노역형)에 처했다. 그러나 담배를 재배하는 이익이 엄청나고, 처벌은 너무 가벼워 백성들은 금령을 무릅쓰고 재배했다. 그러자 다시 명을 내려 법을 어기는 자는 모두 참형에 처한다는 명을 내렸다. 그렇지만 군대에서 한질(감기)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지 못하자 마침내 금법(禁法)을 완화했다. 이후 삼척동자조차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풍속이 갑자기 바뀌었다.”
 담배가 도입된 이후의 중국사회에 급변했음을 알 수 있다. 금연령에 따른 노역형도 모자라 참형이라는 극형에 처했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는 것. 결국 금연령이 완화되고, 삼척동자까지도 담배를 피워대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담배는 1616~1617년 조선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조선에는 언제, 어떤 경로로 들어왔을까.
 이 또한 온갖 설이 끓고 있다. 야사를 모아놓은 <야사총서>는 선조 때의 학자 윤격의 언급을 전제하면서 “담배는 명종 말엽과 선조 초년에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기록했다.   
 명종이 승하하고 선조가 즉위한 때는 1567년이었다. 유럽에서 담배가 처음 재배된 것이 1550~60년대 초반이었다. 그러니 윤격의 ‘명종 말엽 선조 초년(1567년 무렵)’ 주장은 좀 빠른 느낌이 있다. 통설은 <대동기년> 등 관련 문헌에 나와있는 ‘1618년(광해군 10년)설’이다.
 예컨대 <대동기년>은 “남초(담배)는 남쪽 오랑캐 나라에서 유래하여 일본에서 성했고 무오 연간(1618년) 우리나라에 들어와 장유가 먼저 맛을 봤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거론된 장유(1587~1638)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사상가이다.
 어쨌든 이런 기록들 때문에 ‘1618년 설’이 유력해진 것이다. <대동기년>는 조선 말기 윤기진이라는 인물이 정리했으므로 당대의 역사서가 아니다.
 여기서 정사인 <인조실록>의 기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당대의 사관들이 꼼꼼히 적은 사초를 토대로 편찬된 기록이니까….
 <인조실록> 1638년 조를 보면 “남초(南草·담배)는 1616~17년 사이에 조선에 들어왔다.”고 분명하게 기술돼있다.
 그러면서 “조선에 들어온지 5년 만에(1621년)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졌고,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고 기록했다.
 그러니까 16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담배가 불과 60년도 채 되지 않아 조선땅에 상륙했고, 또 불과 5년 만에 조선 전역에 삽시간에 퍼졌다는 것이다.  

김홍도의 <담배썰기>. 담배는 조선에서도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져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4~5살만 되면 피었다.
 담배가 유럽을 매혹시켰듯 조선 역시 담배의 연기 속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대동기년>에서 조선에서 담배를 처음 피웠다는 장유는 <대동기년>에서 담배예찬론을 절절이 편다.
 “남들이 그런다. ‘담배를 즐기면 배가 고픈 사람은 배를 부르게 하고 배부른 사람은 배가 꺼지게 만든다. 추운 사람은 따뜻하게 만들고, 더운 사람은 서늘하게 만든다’고….”
 담배를 피우면 배고픈 사람도 배를 부르게 만든다니….
 이규경 역시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담배가 추위를 막고 습기를 물리치며 기를 빠르게 소통시키고 골수에까지 퍼지게 한다는 점에서는 틀리지 않다”고 찬양론을 개진했다.
 담배는 이렇게 조선을 열광시켰다.
 “위로는 공경대신으로부터, 아래로 하인·종·나무꾼에 이르기까지 피우지 않는 자는 없다. 천이나 백에 한 명 밖에 없을 것이다.”(장유의 <계곡만필>)
 또 하멜의 표류기 부록(조선국기)은 다음과 같이 썼다.
 “조선의 아이들은 4, 5세만 되면 담배를 피운다. 남녀노소 가운데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담배의 마력
 <순조실록> 1808년 조를 보라. 순조 임금은 고질병이 된 담배의 폐해를 걱정하고 있다.
 “담배는 위(胃)를 조양(調養)하는 데 이롭다고 하고 혹은 담(痰)을 치료하는 데 긴요한다고 한다. 과연 그런지 모르겠다. 근래 속습(俗習)이 고질이 되어 남녀 노소를 논할 것 없이 즐기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겨우 젖먹이를 면하면 으레 횡죽(橫竹)으로 피우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팔진미(八珍味)는 폐지할 수 있어도 남초는 폐지할 수 없다.’고 한다.”
 산해진미도 담배를 넘어설 수 없으며. 젖먹이만 지나면 앞다퉈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것이다. 
 담배에 매혹된 사람 가운데 손꼽히는 이가 바로 조선 후기 문인인 이옥(1760~1815)이다. 이옥은 끔찍한 애연가로 담배의 경전을 뜻하는 <연경>을 지었을 정도였으니까….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1795년 9월 어느 날 이옥이 전북 완주의 송광사 법당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러자 스님이 법당 안에서 담배 피우면 안된다고 했다. 이 때 이옥의 대꾸가 걸작이었다.
 “부처님 앞에 있는 향로의 연기도 연기고, 담배연기도 연기가 아닙니까. 사물이 변해서 연기가 되고 연기가 바뀌어 무가 되는 것은 똑같지 않습니까.’
 그러자 스님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쨌든 담배가 이렇게 대유행했으니 너도나도 경작에 나서 농사지을 땅이 모자랄 정도가 되었다. 심각했던 모양이다.
 1798년(정조 22년), 무려 27명이 나서 “배의 경작을 법으로 제한해달라”는 상소문에 서명했다.
 “기름진 땅은 모두 담배와 차를 심는 밭이 되었나이다. 곡식을 생산하는 토지가 줄고 백성들의 어려움이 극에 달하고 있사옵니다. 담배의 해로움이 극심한 바….”(<정조실록>)
 전국 방방곡곡에 담배재배 선풍이 불자 신하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그것은 전적으로 각 지방의 감사에게 달려있는 일”이라고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혜원 신윤복의 <연못가의 여인>. 무료한 여인이 생황을 불었다 담뱃대를 물었다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을 흡연의 나라로 만들겠다
 정조는 과연 왜 그렇게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그 역시 역사에 길이 남을 골초였기 때문이다. 골초도 그런 골초가 없었다.
 아예 “조선을 흡연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포할 정도였으니까…. 거짓이 아니다. 정조의 시문집인 <홍재전서> 등에 다 나오는 이야기니까….
 1796년 11월 정조가 했다는 말을 들어보자.
 “담배처럼 유익한 것이 없다. 담배가 아니면 답답한 속을 풀지 못하고 꽉 막힌 심정을 뚫어주지 못한다. 담배를 백성에게 베풀어줌으로써 그 혜택을 함께 하고자 한다.”
 무슨 말인가. 담배예찬론을 설파하는 것도 모자라 온 백성을 흡연가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닌가.
 정조는 예서 그치지않고 책문의 시제로 ‘남령초(담배)’를 내걸었다. 책문은 정치의 대책을 물어 답하게 하는 과거시험의 일종이다. 세상에! 과거시험의 주제가 ‘담배의 유용성을 논하라’는 것이었으니….
 정조의 책문을 뜯어보면 깜짝 놀란다. ‘실사구시’의 예로 담배를 꼽고 있으니 말이다.
 “담배를 이롭게 사용하고 생활에 윤택하기만 하면 된다. 유독 담배만 천하게 여길 까닭이 무엇인가.”
 그러니까 백성에게 이익이 되고 삶의 질을 높일 수만 있다면 ‘장땡’이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조는 한술 더 뜬다.
 “담배 만한 약이 없다. 담배를 피우니 내 답답하게 꽉 막힌 가슴이 절로 사라졌다. 담배가 이 시대에 출현한 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천지의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러면서 “온 백성이 담배를 피우도록 해서 그 효과를 확산시켜 담배를 베풀어 준 천지의 마음에 보답하자”고 역설한다. 참으로 대단한 골초가 아닌가.

 

 ■‘정승 짓 못해먹겠습니다’
 임금이 이랬으니 담배예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예컨대 조선역사를 통틀어 명재상으로 꼽히는 채체공의 일화는 유명하다.
 무슨 이야기인가. 1790년(정조 14년) 좌의정 채제공이 정조 임금에게 “(더러워서) 정승 짓 못해먹겠다”면서 돌연 사의를 표명한다.
 정조가 화들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채제공의 자초지종을 들어보자.
 채제공이 어느 날 권두(수행비서격)와 함께 서대문을 지나가는데 웃옷도 걸치지 않은 새파란 청년 두 명이 담배를 꼬나물고 팔짱을 끼고 있었다.
 보다못한 권두가 “어이! 담뱃대 좀 빼지!”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두 청년이 고희를 넘긴 채제공의 이름을 부르더니 고함쳤다.
 “내가 무엇 때문에 저 자를 보고 담뱃대를 빼겠나.”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체재공은 두 청년을 잡아다 옥에 가뒀다. 그런데 한밤중이 되자 두 청년이 속한 학당의 학생들이 몰려와 옥문을 부술 기세로 철야농성을 벌였다.
 “채제공이 유생들을 욕보였다. 유생들을 차라리 죽일 지언정 욕을 보일 수는 없다. 석방하지 않으면 옥문을 부숴버리겠다.”
 채제공을 욕하는 상소문이 잇달아 올라왔다, 그러자 채제공이 장탄식하며 사직상소를 올린 것이다.
 “이제 대낮 큰 길가에서 홀옷 차림에고 담뱃대를 피워물고 대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어찌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선비라는 이름으로 온갖 패악질을 벌여도 처벌할 수 없는 세상이 되도 가만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정조는 노 재상의 사직상소를 물리느라 진땀을 뺐다. 결국 주동자에게는 ‘종신과거응시금지령’을, 가담자 4명에게는 ‘10년간 과거응시금지령’을 각각 내리는 것으로 일단락지었다.
 채제공의 일화를 보면 어쩌면 그렇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상황인지 무릎을 치게 된다.

 

 ■세상을 망가뜨리는 주범
 채제공의 일화에서 보듯 담배예절도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이옥은 자신이 지은 담배의 경전인 <연경>에서 담배를 피워서는 절대 안되는 ‘몇가지 경우’를 나열했다. 이른바 담배예절의 지침이다.
 “1)어른 앞에서, 2) 아들이나 손자가 아버지나 할아버지 앞에서, 3)제자가 스승 앞에서, 4)천한 자가 귀한 자 앞에서, 5)제사를 지낼 때, 6)대중이 모일 때 혼자, 7)다급할 때, 8)곽란이 들어서 신 것을 삼킬 때, 9)몹시 덥고 가물 때, 10)큰 바람이 불 때, 11)말 위에서, 12)이불 위에서, 13)화약이나 화총가에서, 14)기침병을 앓는 병자 앞에서는 절대 피워서는 안된다.”
 그러니까 예절을 차려야 하는 경우와, 화재가 일어날 위험이 있는 장소와, 연기 피우 것을 꺼리는 곳에서는 피우지 말라는 것이다,
 <연경>은 또 “입술을 풀무질해서 열었다 닫았다를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있다. 이른바 ‘뻐끔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이다.
 박지원의 풍자소설인 <양반전>을 보면 “양반은 볼이 움푹 패도록 담배를 빨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나저나 이젠 담배예절이고 뭐고 담배를 피운다는 자체가 ‘범죄’로 인식되는 세상이 되었다.  
 하기야 이미 200년 전의 인물인 윤기(1741~1826)은 ‘담배가 조선 사회를 병들게 하는 범죄’라고 규정한 바 있다.
 “아들과 아우가 아버지와 형 앞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도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세상의 도리가 망가지게 된 것이 이 보잘 것 없는 풀 하나로 말미암을 줄이야.”
 세상을 망가뜨리는 주범으로 꼽힌 것이다. 그보다는 건강을 위해서는 다시금 끊어야 하지 않을까.
 250년 전의 금연운동가인 이덕리(1728~?)의 말을 귀담아 들어보자.
 “엄청난 돈이 담배연기로 다 허공으로 날라간다. 무엇보다 담배를 피우면 진기가 모두 소모되고 눈이 침침해진다. 옷가지와 서책이 더러워지고 불씨 때문에 불이 난다. 치아가 더러워지고 예법이 없어진다.”

 (끝) 경향신문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