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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수첩

광화문 원형복원 끝내 포기하는가

‘문화유산은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문화재청이 제정 공포한 ‘문화유산 헌장’의 첫번째 구호이다. 문화유산은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기본’을 염두에 두고 광화문 복원문제를 짚어보자.

지난 10월 말, 기자가 광화문 터를 찾았을 때 깜짝 놀랐다. 고려 남경의 흔적(1067년)-창건 당시의 기초석(1395년)-중건 때의 모습(1865년)-일제강점기 훼손 흔적 등 광화문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유구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11월1일자)


특히 추가 조사를 거쳐 창건 당시의 광화문 몸체(27m×9.6m)까지 완벽하게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고종연간, 즉 1865년 중건 당시의 광화문 형태로 복원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면서 중건 당시의 모든 유구를 해체했다. 해체된 유구들은 따로 보관 중이다. 현재는 태조연간, 즉 창건 당시의 광화문터만이 현장에서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또한 풍전등화다. 문화재청은 12일 창건 당시의 광화문터를 공개하면서 현장 보존에 대한 어려움을 계속 강조했다. 엄승용 문화유산국장은 “경복궁 중건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한다는 게 원칙”이라면서 “그러나 창건 당시의 유구가 나온 이상 고민 중”이라고 결론을 유보했다. 문화재청의 의뢰를 받은 한국건설안전기술원은 창건 당시의 원형을 현장 보존하기는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용역 결과를 내놨다. 지하철이 수평으로 9.64m, 수직으로 11.9m 떨어져 있는데, 지하철이 건설되면서 지하수위가 변동되는 등 하부 지반이 변했다는 것이다. 또한 지층 자체가 연약지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건 당시의 유구는 포기해야 하는가. 만약 600년간 ‘조선의 심장’을 지켜온 광화문의 원형 보존을 ‘기술상 어려움’을 들어 포기한다면 후손들에게 큰 창피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유구를 보면 광화문 중건 때 창건 당시(1395년)의 바로 70㎝ 위에 그대로 광화문을 세웠다”고 말했다. 19세기에도 14세기 건축 기초 위에 그대로 광화문을 올렸는데,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다시 그 위에 중창할 수 없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한국건설안전기술원은 “지하철 때문에 제대로 된 원형복원이 어렵다”면서 “지반을 다지기 위해 유구 위에 콘크리트를 덮고, 그 위에 광화문을 세우려면 어쩔 수 없이 창건 당시의 유구 가운데 48㎝는 희생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구 일부를 깎는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건축 전문가인 어느 문화재 위원은 “유구를 깎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차라리 광화문을 주변보다 48㎝ 높게 지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은 “문화재위원회 합동분과를 여는 등 문화재 전문가들이 고뇌에 찬 결정을 내려야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재임 기간 내내 중요한 브리핑 자리에 빠짐없이 나섰던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