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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교태전, 사정전, 그리고 청와대

경복궁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궁전이 교태전이다. 왕비의 침전이다.

이름이 얄궂다보니 임금의 사랑을 얻으려는 왕비가 교태(嬌態)를 부리는 침실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교태(交泰)’는 <주역>에서 하늘과 땅의 사귐, 즉 양과 음의 조화를 상징한다. 임금과 왕비가 사랑을 나누고 후사를 생산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교태전(사진)이라 한 것이다. 창덕궁의 왕비 침전 이름은 대조전(大造殿)이다. 임금과 왕비가 만나 ‘큰 인물을 낳는다’(大造)는 뜻을 지니고 있다. 1395년 태조 이성계는 서울에 새 궁궐을 짓고 대대적인 잔치를 베풀었다. 태조는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정도전에게 “새 궁궐의 이름을 지으라”고 했다.

이때 정도전은 “(임금의) 술대접에 취하고 임금의 덕에 배부르니 후왕의 앞날에 큰 복(景福)을 받게 하리라”는 <시경> 구절을 외웠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정도전은 창업의 기쁨에 취한 태조에게 경계의 말을 던진다.

“임금은 늘 빈한한 선비와 백성들을 돕고 함께 나눠야 그들의 봉양을 받을 것입니다.”

정도전이 임금의 침전 이름을 강녕전(康寧殿)이라 지으면서도 “혼자 있을 때 나태하면 절대 강녕할 수 없다”고 신신당부했다.

임금은 집안 가장 깊숙한 곳에서 편히 쉴 때도 한 순간도 안일에 빠지면 안된다고 충고한 것이다. 임금이 정사를 펼치는 건물을 근정전(勤政殿)과 사정전(思政殿)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면서 ‘임금은 아침 저녁 식사할 겨를도 없이 근면한 태도로 백성을 화락하게 만들어야 하며’(근정전) ‘깊이 생각한 연후에 비로소 정사를 펼쳐야 한다’(사정전)고 설파했다.
이렇듯 옛 사람들은 궁궐이나 전각 이름도 허투루 짓지 않았다. 이름 한자 한자에 ‘임금의 도리’를 담았다.

그런데 후손들은 좋은 정치를 염원한 옛 사람들의 마음씨를 몰라주는 것 같다. 갖가지 고전을 들춰 애써 지은 경복궁 내 전각 이름을 엉터리로 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천지의 마땅함을 보상한다’(<주역>)는 뜻의 보의당(補宜堂) 현판은 보선당(補宣堂)으로 둔갑 한 채 20여년간 방치됐단다.

“의(宜)자와 선(宣)자를 혼동한 듯 하다”는게 김영봉 연세대 강사의 해석이다. 이밖에도 1995년 복원한 몇몇 전각의 현판에서 오류가 확인됐는데도 지금까지 그낭 두었단다. 문화재청이 연세대 국학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용역보고서에 이같은 오류를 적시했는 데도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무지하고 무심한 후손들이다.
생각해보면 조선시대로 치면 경복궁에 비견되는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의 이름을 ‘청와대(靑瓦臺)’로 한 것도 아쉽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까지는 고종 때 인재등용의 요람이었던 경무대(景武臺)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이승만 독재정권이 연상된다’고 해서 바꾸었다. 본관 건물에 15만장의 청기와를 지붕에 얹었기 때문에 청와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어떨까. 이름 하나 하나에 백성을 생각하는 임금의 도리를 새겼던 선조들의 고심을 생각하면 너무 안이한 작명이 아니었을까.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