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흔적의 역사

그렇다면 세종도 '종북파'다

 “하늘이 하늘이 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왕업을 이룰 수 있지만 하늘이 하늘이 된 까닭을 모르는 사람은 왕업을 이룰 수 없습니다.(知天之天者 王事可成 不知天之天者 王事不可成)”
 기원전 204년. 한나라 고조 유방의 유세객이었던 역이기가 주군인 유방을 설득한다. 초나라 항우의 기세가 대단했을 때였다.
 역이기는 항우의 총공격을 받고 고전하던 유방이 진나라 시절부터 엄청난 식량창고가 있던 오창(敖倉·지금의 허난성 룽양현 동북쪽)을 포기하려 하자 긴급 상소문을 올린 것이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인다.
 “옛말에 ‘천하에 왕노릇 하는 사람은 백성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백성은 양식을 하늘처럼 떠받는다(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고 했습니다.” 

선조임금은 스스로 ‘이민위천’을 실천하지 않아 전쟁까지 불렀다고 한탄했다. ‘이민위천’의 언급이 담긴 <선조실록>

역이기가 하고자 하는 말은 ‘엄청난 식량이 비축된 오창을 도모해야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역이기는 <관자(管子)>에 나오는 그 유명한 ‘왕자이민위천 민이식위천(王者以民爲天, 民以食爲天)’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역대의 지도자들은 이 ‘이민위천’이라는 고사를 신주처럼 받들었다. <순자>가 ‘왕제’에서 이렇게 말했다지 않은가.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침몰시키기도 한다.(水則載舟 水則覆舟)”
 즉 민심을 잡지 않는 군주는 곧 민심에 의해 뒤집힌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무서운 민심이기에 역대 군주들은 누가 누가랄 것도 없이 ‘이민위천’의 노래를 불렀다.
 특히나 가뭄이나 홍수 등 천재지변으로 백성들이 굶고 있을 때, 군주들은 어김없이 이 고사를 인용하면서 구휼책에 심혈을 기울였다.
 만고의 성군인 세종도 마찬가지였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먹는 것을 하늘처럼 우러러 보는 사람들(民惟邦本 食爲民天)이다. 만약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굶어죽는 자가 있다면 감사나 수령에게 그 죄를 물을 것이다.”(1419년)
 세종이 말한 ‘민유방본 식위민천’은 바로 ‘이민위천 민이식위천’의 다른 표현이다.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임금에게 간언할 때마다 ‘이민위천~’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예컨대 1471년(성종 2년), 대사간인 김수녕은 성종이 불경을 만드는 등 불교를 보호하려는 정책을 피려 하자 역이기와 똑같은 고사를 되뇌이며 반대한다.
 “임금은 백성들을 으뜸으로 떠받들고…. 하늘의 도리를 아는 자는 왕도를 이를 수 있고….(君以民爲天 民以食爲天 知天之天者 王道可成)”
 김수녕은 “흉년 때문에 남도의 백성들이 굶어죽는데 승려들은 무위도식하고 있다”며 불경을 만들고 중들을 먹이는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쏟지말고 백성 구휼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1524년(중종 19년) 홍문관 직제학 민수천 역시 예의 그 ‘이민위천’ 고사를 인용하면서 임금을 닥달한다.
 “백성이 춥고 곤궁해서 원망하고 저버리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백성은 임금의 소유가 되지 않을 겁니다. 대체 누구를 데리고 임금노릇을 하려 하십니까.” 
 민수천은 술독에 빠져 백성의 고혈을 짜내고, 환곡의 환란을 일으키는 관찰사를 비롯한 지방관헌들을 엄단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1567년(명종 22년), 임금이 “시기에 맞춰 파종하라. 농사를 늦출 수는 없는 일이다.”라는 전교를 내렸다. 그러자 <명종실록>의 기자는 “왕자는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그 고사를 인용하면서 적절한 임금의 하교였음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다.
 또 선조 임금은 1603년, 자신의 부덕 때문에 전쟁을 두 번이나 치르고, 개기월식과 같은 흉사가 잇따른다면서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하늘의 노여움은 더욱 더해만 가고 있다. 별이 떨어지고 돌이 옮겨가는 놀랍고도 두려운 재변이 거듭 나타나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도 이런 변이가 자주 나타나더니 끝내 큰 화란을 부르고 말았는데, 앞으로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왕자(王者)는 백성을 하늘로 삼는데 민심이 이와 같으니, 어찌 나의 부덕(否德)한 소치가 아니겠는가.”
 1615년(광해군 7년) 대사헌 이병 등이 임금의 경연참여와 백성 진휼을 촉구하며 올린 상소문에도 나온다.
 “혹심한 가뭄 때문에 넘어지고 굶어죽은 시체가 줄지어 있는가 하면, 지아비와 지어미가 서로 목을 매는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데, 나라의 근본이고 임금의 하늘인 백성들이 이미 이 지경이 되었으니…. 전하께서는 모든 세금을 적게 받고 역(役)을 늦추어 주며 곡식을 옮기고 창고를 여는 등의 일이 모두 실지로 실행되게끔 힘을 쓰시고 허례적인 형식을 따르지 마소서. ”
 국정원이 지난 28일 내란음모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집에 걸린 액자 속 글귀인 ‘이민위천’을 두고 종북연계성을 의심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좌우명과 같다는 것이다. 다른 혐의가 어떤 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민위천’의 글귀를 두고 ‘종북파’ 운운하는 것은….
 그렇다면 ‘이민위천’의 정신을 누누이 강조한 세종대왕에게도 ‘종북파’의 딱지를 붙일 것인가. 역이기의 말을 듣고 곡창지대를 취한 한나라 고조 유방은 물론, 성종과 중종, 명종과 선조, 광해군 모두 종북파인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