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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내 안의 학살본능, 제노사이드

 1941년 8월 24일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BBC 생방송 연설에서 나치독일의 만행을 규탄했다. 그는 나치의 민간인 대량 학살을 두고 “우리는 ‘이름없는 범죄(a crime without a name)’에 직면해 있다”고 표현했다.
 “이처럼 조직적이고 잔혹한 살육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독일의 살인특무무대가 빨치산 소탕을 명목으로 소련땅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을 지칭한 것이었다. 나치독일의 만행은 300만 명의 유대인이 한 줌의 재로 변할 때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이어졌다. 뭐라 딱히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군대간 전쟁이 아니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쟁(war against peoples)’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04년은 나치 독일의 유태인 집시 학살 60주년을 맞은 해였다. 유럽 각지에서 수천명의 집시들이 학살 현장인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수용소 부지에 모였다. 

1944년 폴란드 출신의 유대한 법학자 라파엘 렘킨이 ‘이름없는 전쟁’에 ‘제노사이드(genocide)’란 이름을 붙였다. 종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genos)와 살인의 라틴어(cide)를 결합시켰다. 제노사이드는 반드시 한 집단의 ‘즉각적인 파괴’ 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어떤 집단의 절멸을 위해 자행되는 다양한 행위를 지칭했다. 집단의 존재기반을 서서히 와해시키는 ‘부드러운 절멸’도 포함시켰다. 창씨개명(정치), 모국어사용 금지 및 우민화정책(문화) 등도 역시 제노사이드라는 것이다. 제노사이드를 국제법상의 범죄로 만들려고 동분서주한 렘킨의 노력은 1948년 유엔총회에서 제노사이드 협약을 맺음으로써 결실을 얻었다. 제노사이드 범죄는 ‘국민·인종·민족·종교집단 전체 또는 부분을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실행된 행위’로 규정됐다.(협약 제2조) 그렇지만 ‘~파괴할 의도’ 문구가 두고두고 문제가 됐다. 아무리 끔찍한 제노사이드 가해자라도 ‘의도 없는 우발적 사건’이라 우기면 소모적인 논쟁으로 변질되기 일쑤였으니까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1차대전 도중 오스만제국(터키)이 자행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제노사이드라고 규탄하자, 터키가 ‘내전의 일부였다’고 반발했단다. 익숙한 변명이다. 지난 100년간 제노사이드로 희생된 민간인 수가 1억75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제노사이드의 기질은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