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립스틱 짙게 바른' 석굴암 부처님과 창령사 오백나한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국립춘천박물관이 8월28~11월25일 사이에 개최하는 ‘창령사터 오백나한’ 특별전의 제목이다. 무엇이 나의 마음과 닮았다는건지 박물관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금방 느낄 수 있다.
전시실에 일렬로 전시해놓은 나한상들을 바라보는 순간 무장해제된다. 어디선가 보았던 친척이나 친구, 이웃집 사람의 얼굴 같은 느낌…. 나한상을 볼 때마다 이 나한상과 꼭 닮은 누군가를 찾게된다. 그 뿐인가. 나와 비슷한, 아니 나보다 ‘조금’ 못생긴 것 같은 나한상과 꼭 사진을 찍고 싶어진다. 전시회가 끝날 무렵엔 각 나한상과 찍은 수십장의 사진 파일이 남았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을 붙잡은 모델이 있었으니 바로 ‘립스틱 짙게 바른’ 나한상이었다.
김상태 국립춘천박물관장에게 물어보니 ‘립스틱’ 바른 나한상이 몇 점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성분분석을 해보았더니 천연안료인 연단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것저것 더 알아보았더니 창령사터 출토 나한상 뿐이 아니었다. 그 유명한 본존불을 포함한 석굴암 불상들의 입술에 립스틱을 발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부처님 입술, 나한상 입술에 립스틱을 짙게 발랐을까.

강원 영월 창령사터에서 발굴된 318점 가운데는 립스틱을 칠한 나한상이 여럿 보인다. 성분 분석 결과 예부터 천연안료로 쓰였던 연단(鉛丹·Pb₃O₄)으로 칠한 것이었다. |국립춘천박물관 제공  

■불상을 무자비하게 깨뜨린 사람들
2001년 5월 1일, 강원 영월군 남면 창원2리의 소유지에 암자를 지으려고 경작지 평탄작업을 벌이던 김병호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뜩이나 ‘무덤치 절터’로 알려진 심상치않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사람 형상의 석상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김병호씨는 그렇게 수습한 조각상 100여점을 천막하우스에 보관했고, 그 중 상태가 좋은 6점은 임시로 가설된 암자 안에 봉안해놓았다. 김씨는 6일 뒤인 5월7일 영월군 문화관광과에 유물 출토 사실을 신고했다. 당연히 정식발굴이 시작되었고 수습된 기와 중에 ‘창령(蒼嶺)’이라는 명문기와를 확인함으로써 절 이름이 <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 등장하는 ‘창령사’임을 추론해냈다.

창령사 출토 나한상에서 확인되는 빨간 입술 색깔의 흔적. 다른 신체에서는 붉은 안료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한상 제작당시 조각가가 입술에만 바른 것으로 보인다. |국립춘천박물관 제공 

추가 발굴 성과는 대단했다. 발견된 석상은 총 317점에 달했으며, 그중 완형은 64점이었다. 나머지 250여점은 머리와 몸체가 분리된채 발견됐다. 몸체는 135점, 머리는 118점이었다. 또한 석상의 일부는 열에 노출된채 확인됐다. 그리고 이 석상들을 모셨던 금당 또한 화재로 폭삭 내려앉은 흔적이 역력했다. 성리학을 앞세운 조선의 유학자 누군가가 창령사 석상들을 무자비하게 훼손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조의 유학자들은 사찰로 몰려가 불상을 태우거나, 깨뜨리는 행위를 ‘영웅시’했던 분위기가 있었다.
예컨대 1489년(성종 20년) 유생 이벽이 인수대비(소혜왕후·성종의 어머니)가 정업원(출가한 비구니 처소)에 내린 불상을 태워버렸다. 인수대비가 “그 자를 엄벌에 처하라”고 아들 성종에게 권하자 성종은 “유생이 부처를 물리치는 것은 상을 주어야지 죄를 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깨달음의 성자 오백나한의 현현
그렇다면 317점이나 집중출토된 석상의 정체는 무엇인가.
바로 나한상(羅漢像)이다. 나한은 ‘arhan’이라는 말을 음역한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가리킨다.

부처의 제자로 뛰어난 수행 끝에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일컫는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의미로 무학(無學)이라고도 한다. 왜 하필 500나한일까. 석가모니가 입적한 뒤 가섭을 비롯한 제자 500명이 모여 석가모니의 생전 말씀을 경전으로 만들었는데, 그 때 모인 500명을 ‘오백대아라한’이라 일컬었다.
언필칭 ‘깨달음을 얻은 불제자’로 일컬어진 나한은 점차 재앙을 물리치는 신통력을 갖춘 존재로 인식되었다. 후대사람들은 나한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제작하여 숭배했다.

립스틱 짙게 바른 나한상의 모습들. 극도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뜻하는 나한상에 립스틱을 바른 이유는 수수께끼다. |국립춘천박물관 제공  

 

■희로애락을 표현한 오백나한상
원래 나한상은 부처나 보살 같은 통상의 불상과는 좀 다른 모습이다.

부처 및 보살상은 대부분 근엄하지만 온화한 표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한상은 천차만별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500인의 나한상을 만드는데 똑같은 패션에 똑같은 얼굴로 만들어 설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한상의 경우는 각 인물의 개성을 살려 제작한다.
창령사 출토 나한상을 봐도 그렇다. 엄청 다양한 모습이다. 등을 맞대고 있는 쌍신상이 있는가 하면 바위굴에 홀로 앉아 수행에 전념하는 상도 있고, 오른손을 위로 들어 머리를 긁고 있고 왼손을 내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상도 있다.  

립스틱 바른 나한상들. 1994년 전남 나주 불회사 인근에서 출토된 나한상에서도 립스틱 나한상들이 일부 확인된 바 있다. |국립춘천박물관 제공

나한상의 백미는 시선 처리와 얼굴 표정이다. 정면을 바라보는 상이 대부분이지만 대화를 나누듯 옆면을 바라보거나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거나, 생각에 잠겨 턱을 괴고 있거나 바위 뒤에서 살짝 고개만 내민 나한상들도 있다. 위로 치켜뜨거나 아래로 내리뜬 눈,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진 눈, 화두 해결을 위해 고뇌에 빠진 눈, 잔뜩 화가 나서 째려보는 눈 등 다양한 시선처리가 돋보인다. 또 양 입술을 위로 올려 가볍게 웃고 있거나 입꼬리가 내려가 침울한 표정으로 슬픔에 잠긴 나한상도 있다. 일상의 희노애락을 나한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조각가가 500나한상을 한곳에 봉안할 때의 전체적인 배치와 구성까지 고려한 것일 수도 있다.

 

■크기 12㎝ ‘오징어’여서 더 편안한 얼굴
얼굴전문가인 조용진 한국형질문화연구원장의 해석이 흥미롭다. 즉 창령사 나한상의 얼굴 크기가 대략 12㎝인데, 이것이 절묘하다는 것이다.
“조각가가 작업할 때의 동작거리가 약 60㎝인데, 그 60㎝에서 황반에 맺히는 얼굴크기는 약 12㎝이다. 즉 안구의 시축이 약 25㎜이므로 여기 황반의 직경 5㎜에 알맞는 크기는 60㎝ 거리에 있는 12㎝ 크기가 된다. 즉 60㎝ 거리에 두고 12㎝의 얼굴상을 조각할 때 가장 에너지 소비가 적게 된다. 이 거리에서는 얼굴 전체가 한 눈의 시야에 들어간다. 정보착란의 염려도 없다.”
그러니 나한상의 얼굴을 편안하게 볼 수밖에 없다.

각양각색의 나한상 모습들. 인자한듯 근엄한 불상과 보살상과 달리 오백나한의 얼굴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조성된다.

또한 창령사 나한상의 얼굴특징은 매우 한국적이다.
그러나 창령사 나한상을 보라. 꼭 인위적으로 솟은 것은 깎아내고 튀어나온 것은 밀어넣었으며, 패어 들어간 것은 메워 일부러 최대한 평평하게 만든 것 같다. 그러니까 솟은 코는 볼과 이마의 높이로 낮아지고 눈자위와 입술부분은 살짝 올라와 패인 골을 메운다. 좋은 말로 ‘부족한 곳은 채워주고 넘치는 것은 덜어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조각 미남의 레전드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에 견줘보면 어떨까. 시쳇말로 전형적인 ‘오징어 얼굴’이 아닌가.
그러나 이 ‘오징어 얼굴’이 바로 창령사 나한상의 ‘미덕’이다.

 

■돌로 돌아가는 나한상
사실 ‘오징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있기는 하다. 화강암 재질이기 때문이다.

입자가 굵은 화강암으로 조성했기 때문에 조각이 쉽지 않은데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화가 빨리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화강암 재질의 나한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바람에 깎이고 다듬어져서 더욱더 뭉그러질 수밖에 없다.
마침 사회학자인 이진경 서울과학대 교수(사회학과)가 이 대목에서 ‘철학’을 가미했다.
“(창령사 나한상들은) 더 닳거나 문지르면 얼굴도 신체도 알아보기 힘든 돌덩이가 될 것이다.…돌로 돌아가는 조각들이다. 그래서 조각 이상으로 돌이, 돌의 물성이 형상을 흘러넘치며….”
‘돌로 돌아가는 나한상’이라니 참 그럴듯한 표현이다.
돌로 돌아가는 돌의 물성이야말로 실은 부처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의 입술채색 흔적.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인술 채색흔적이 역력하다. |안장헌 한국문화유산사진연구원장 제공 

■입술을 붉게 칠한 나한상
이 글의 모두에 언급했지만 최근 국립춘천박물관이 개최한 특별전에서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전시패널이 있었다.
‘나한상 중 일부는 입술에 지금도 선명하게 붉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발굴할 때는 몰랐지만 흙 묻은 나한상들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입술이 붉게 칠해져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당시 발굴을 담당한 강원문화재연구소가 나한상의 붉은 입술 색깔을 X레이 형광 및 회절분석으로 알아본 결과 붉은 색 안료, 즉 연단(鉛丹·Pb₃O₄)이었음을 확인했다. 납(Pb)이 주성분인 연단은 수은(Hg)과 철(Fe)이 주성분인 진사(HgS), 석간주(Fe203)과 함께 고대부터 사용했던 전통적인 천연 적색안료이다. 그러니까 나한상의 입술에 조각가가 색칠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필자는 이 패널과 함께 희미하지만 일부 나한상의 입술에 남아있는 붉은 흔적을 확인했다. 늘 ‘스토리텔링’에 목이 마른 필자의 뇌리를 스치는 제목이 있었다. ‘립스틱 짙게 바른 나한상!’, 이 얼마나 흥미로운 제목인가.

 

■석굴암 불상의 입술에도 립스틱이
필자는 관련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자료 하나가 보였다.
1994년 10월 전남 나주시 불회사 인근에서 출토된 나한상 일부의 입술에 채색한 흔적이 있었다는 발굴보고서(‘불회사 나한상 출토유적 발굴조사보고’, 1994년, 국립광주박물관)였다.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사로 나한상을 발굴한 최응천 동국대 교수(미술사학과)는 “(불회사 출토 나한상의) 반달형 입술은 검은색으로 탈색됐지만 분명히 채색한 예가 많다”고 전했다.
또 하나 필자의 시선을 붙잡은 것이 있었다. 그 유명한 석굴암의 본존불과 십일면 관음보살상의 입술 등에도 붉은 색을 칠했다는 것이다. 이리저리 자료를 찾아보니 ‘립스틱 바른’ 석굴암 불상 이야기는 본존불 등 불상을 가깝게 친견할 수 있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식 같았다.
40년 이상 불상 사진을 찍어왔던 안장헌 사진작가는 “석굴암 불상 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마애불(벽에 새긴 불상 조각) 등에도 채색흔적이 여럿 보인다”고 알려주었다. 과연 안작가가 보내준 사진 중 채색 흔적이 있는 불상이 여럿 있었다. 그 중 붉그스레한 석굴암 본존불의 입술 립스틱 사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원로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에게 물었니 “석굴암 불상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입술에 붉은 색을 옅게 칠한 것”이라 말했다.

경북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남쪽면 삼존불의 채색흔적. 가운데 및 좌협시 의 입술과 나한(승려)상의 입술에서 붉은 색이 보인다.|안장헌 원장제공

 

■온몸을 화려한 색채로 치장한 불상들
이리저리 수소문하다가 박홍국 위덕대 박물관장이 쓴 ‘한국 석조탑상 채색론-경주지역의 석불·석탑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보았다. 논문은 “석굴암 같은 석불은 물론이고 바위 벽에 새긴 마애불 등의 얼굴과 온몸 전체에 채색을 한 흔적이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박홍국 관장은 전래되고 있는 순금 및 청동불상은 물론이고 목조불상과 철불의 경우도 화려한 색채를 가미한 것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돌을 새긴 불상, 즉 석불과 마애불도 예쁘게 그리지 않았을까. 주로 입자가 굵은 화강암에 새겼기에 조각하기 어려운 석불이나 마애불의 경우 이목구비를 또렷하게 하기 위해 색을 입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과거 연구자들이 석불이나 마애불을 가까이서 친견한 뒤 밝힌 소감에 단서가 있었다.
1960년대 석굴암 해체복원작업을 주도한 황수영 전국립박물관장은 이미 “석굴암의 여러 불상은 채색되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건축가인 신영훈 전 한옥문화원장은 “석굴암 본존상 입술에 붉은 색 자취가 남은 것처럼 창건 당시 법당내에 조성된 여러 불상에 합당한 채색을 했을 것”이라 추정했다.
석굴암 뿐이 아니다. 황수영 박사는 경주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을 논평하면서 “각 불상에는 채색이 되어있어서 그 아름다움이란 오늘날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을 것”이라 상상했다. 미술사학자인 김리나 전 홍익대 교수는 경북 성주 노석동 마애불상군을 두고 “암벽 전체에 채색한 흔적이 있다”고 전한 바 있다.,
박홍국 관장이 육안으로도 쉽게 채색의 흔적을 확인한 석불과 마애불은 10곳에 이른다.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과 굴내 여러 불상의 입술에 남은 립스틱 흔적이 그 중 하나다. 그 외에도 경주 남산 배리석불입상과 남산 불곡 감실 불상,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성주 노석동 마애불상군, 충북 괴산 원풍리 마애불좌상, 경북 군위 삼존석굴, 경주 남산 삼릉계 마애관음보살입상, 경주 칠불암. 경주 선도산 마애대불 등이다.

충북 충주 봉황리마애불 보살상. 입술과 얼굴 등 곳곳에 채색흔적이 보인다. |안장헌 원장 제공

이중 석굴암의 여러 불상을 포함한 립스틱의 흔적은 탑곡 마애조상군과 삼릉계 관음보살입상, 칠불암 등에서 보인다. 이런 색채의 흔적이 보이는 석불과 마애불은 주로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감실 안이나 바위의 자연 처마 안에 조성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입술만일까, 온몸전체일까
그렇다면 한가지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하나 있다.
가장 관심의 초점이 될 석굴암의 여러 불상은 립스틱만 칠했을까 아니면 온몸 전체를 치장했을까.
사실 온몸에 치장한 것으로 짐작되는 석불의 대다수는 바위 벽면을 새긴 마애불이 절대 다수이다.
그렇다면 석굴암 본존불 같은 입체의 석조불상에는 온몸 채색 대신 ‘립스틱’만 짙게 바른 것일까.
박홍국 관장은 “그럴 리 없다”고 여긴다. 박 관장은 “입체의 석조불상인 남산 배리석불입상에서도 뚜렷한 색채가 엿보인다”면서 “석굴암의 여러 상들의 경우에도 입술에만 채색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중국 당나라 시기에 조성된 159굴 보살상의 채색을 보라. 비슷한 시기 비슷한 형상의 석굴암 십일면 관세음보살에서 이런 채색이 빠졌을 리 만무하지 않을까요.”
특히 눈동자까지 세밀한 선으로 조각한 석굴암 십일면 관세음보살상에 그저 입술만 칠했을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박관장은 따라서 “입체 석물이나 마애불을 통틀어 거의 모든 석불은 입술 뿐 아니라 온몸 전체에 화려한 빛깔로 칠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입체 석불의 경우 ‘입술만’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강우방 원장은 “(석굴암 불상의 경우) 깊고 해맑은 화강암 빛깔 속에 오직 입술 만이 불그스름하다”면서 “화려하게 치장된 중국의 불상과 달리 석굴암 건축과 조각은 절제된 색채로 성스러운 공간을 만들어 마음을 침잠케 한 것”이라 해석한다. 강원장은 “그 중에도 입술만 살짝 칠함으로써 불상의 생동감을 얹은 것”이라고 보았다.

충북 괴산 영풍리 마애불좌상. 그림을 그리기 위한 회칠한 흔적이 보인다. |안장헌 원장 제공

안장헌 사진작가는 “(석재를 고르거나 움직일 수 없는 벽면에 새겨야 하는) 마애불을 선각(선으로 새김)할 경우 입체감을 불어넣기 위해 온몸 전체에 색칠하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난 석굴암 본존불 같은 입체석불에는 입술만 살짝 터치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 해석했다. 자연 그대로의 바위 속에 ‘계신’ 부처님을 드러내는 마애불은 섬세한 조각이 어려워 색채로 마무리 해야 하지만 조각 자체가 완성품인 입체석불의 경우는 입술만 강조함으로써 생동감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립스틱의 원료는 연단이었다
창령사터에서 출토된 일부 나한상의 ‘립스틱’ 흔적과 그것에 대한 과학적인 성분분석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석굴암 석불 등에서도 보이는 ‘립스틱’ 흔적이 자연현상이 아니라 조각 당시 채색한 흔적이었음이 분명해졌다는 것이다. 자연현상설이 무엇인가. 화강암에는 철(Fe) 성분이 들어있는데, 퉁화과정에서 이 성분이 산화해서 붉게 변하게 된다는 것이 자연현상설이다.
그러나 창령사 출토 나한상의 입술에 묻은 붉은 빛깔을 성분분석한 결과 천연안료인 연단임이 밝혀졌다. 그동안 탁상공론으로만 제기된 석불의 색깔논쟁은 과학적 성분분석으로 마무리 되는 듯하다. 즉 석불의 색깔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조각가의 연출이었다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립스틱이나 온몸 채색이나 후대의 누군가가 칠하고 바른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의심하기도 한다.

예컨대 석굴암 본존불의 경우도 발견 당시에는 깨끗했는데 후대의 누군가가 덧칠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석굴암이 재발견된 1910년 무렵에는 채색의 흔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그런 희의론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땅속에서 출토된 창령사터 나한상의 립스틱 흔적은 여러모로 심상치 않다. 나한상의 제작시기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12세기설과 15세기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창령사터에서 발굴된 나한상의 얼굴크기는 대량 12㎝ 정도였다. 그런데 이 얼굴은 한국인의 시선에서 가장 편안한 크기이다. 얼굴 전체의 전체시와 부분시가 한눈 시야에 다 들어온다. |조용진 한국형질문화연구원장의  글에서

그러나 아무래도 영월과 같은 작은 고을에서 오백나한상 조성이라는 대규모 불사의 시대적 배경이 훼불이 만연하던 조선 15세기보다는 불교가 위세를 떨치던 12세기 가능성이 더 클 것 같기는 하다. 
12세기든 15세기든 적어도 숭유억불책으로 누군가에 의해 절터가 불에 타고 나한상이 무참히 훼손되어 땅 속에 묻힌 그 시점에도 일부 나한상은 ‘립스틱 짙게 바른 입술’ 모습이었다. 고고학적 발굴의 출토양상이 그걸 입증해준다.
입술을 짙게 바르고 살포시 모습을 드러낸 창령사터 나한상의 모습에서 8세기 완성됐다는 석굴암 본존불 등 불상의 입술을 붉게 바르던 신라 조각가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창령사터 오백나한' 특별전을 관람하면 왠지 나한상과 사진찍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아니 오히려 나보다 못생긴 그런 얼굴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역시 오징어는 오징어를 알아본다고 할까.      

 

■눈을 감고 보아도 부처님이 보여야 한다
평생 돌덩이에 먹줄을 긋고 불상을 새겼던 석공이 백담사 오현무산 스님(1932~2018)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스님, 평생을 돌에 걸었는데 이제보니 헛것이었네요…돌에 먹물을 새기고 정으로 쏘아 새기지 않고도 진불(眞佛)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면 좋을텐데…. 이젠 눈을 감고 이 반석(돌)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천진한 동불(童佛)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 암벽에는 마애불이 그 옆 바위에는 연등불이, 그 앞 반석에는 삼존불이…. 젊었을 땐 눈을 뜨고 봐도 나타나지 않아 먹줄을 그어야 했는데….”

다시 '돌로 돌아가는 나한상' 즉 '돌로 돌아가는 돌의 물성이야말로 부처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이진경 교수의 표현이 떠오른다. 가만보니 석굴암 불상이나 창령사터 나한상의 립스틱 흔적도 이제 사정없이 희미해졌다.이기환 선임기자

 

<참고자료>
강삼혜·정병삼·최선주·강선정·최기주·김상태·이진경·조은정·조용진·권윤미·허일권, <창령사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특별전 도록, 춘천국립박물관, 2018
박홍국, ‘한국 석조탑상 채색론-경주지역의 석불·석탑을 중심으로’, <한국의 전탑연구>, 학연문화사, 2000
최응천, ‘불회사 나한상 출토유적 발굴조사보고-500나한상편의 양식고찰을 중심으로’, <미술자료> 제54권, 국립중앙박물관 1994
강원문화재연구소, <창령사 발굴조사보고서>,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