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박근혜 '올림머리'가 준 절망의 메시지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가 영국총리 시절 평생 정치적 무기로 활용한 제품이 있었다.

 

아스프레이 검정색 사각핸드백이었다. 대처가 핸드백을 회의실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 장관들은 심장이 멎는듯 긴장했다고 한다.

 

대처의 핸드백은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는 뜻의 신조어 ‘핸드배깅(handbagging)’을 탄생시켰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은 ‘재키룩’이라는 패션장르를 만들 정도로 여성정치인들의 롤모델이 됐다. 그러나 패션을 정치로 활용한 것은 미셸 오바마가 한 수 위다.

귀족의 이미지인 재클린에 비해 미셸은 35달러짜리 원피스를 입고 ‘투데이쇼’에 출연하는 등 실용성을 강조했다. 미셸이 패션업계에 끼친 효과는 연간 27억 달러(3조원)에 이른다.

 

2011년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정상만찬에 참석한 미셸은 남북한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빨간색을 혼합하면 나타나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었다. 남북의 화합을 상징한 색깔이었다.

 

2012년 국무장관 시절 페루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은 리비아 벵가지 미영사관 피습사건을 언급하며 ‘모두 내 책임’이라 사과했다. 힐러리가 그 때 입은 패션 스타일은 블랙과 화이트가 혼합된 재킷과 진주목걸이로 클래식한 스타일을 연출했다. 연약하고 침통한 이미지를 연출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사랑은 유난스럽다. 2013년 취임식날 다섯차례나 옷을 갈아입고 등장했다.

 

언론은 ‘5색 패션정치’ ‘기품있는 패션’ 운운하며 앞다퉈 보도했다. 2006년엔 모델라인 주최의 ‘코리아베스트 드레서상’까지 받았다. 그렇게 패션리더인 박 대통령이 ‘올드하다’는 평을 받으면서 40년 넘게 고수하는 패션아이템이 있다. 복고풍 올림머리다.

 

1974년 어머니의 서거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대통령으로서는 단아하고 부드러운 육영수 여사의 이미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트레이드 마크인 한복과 올림머리는 어느덧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로 피내림했다. 한나라당 대선 예비주자 시절이던 2007년 1월엔 잠깐 변신하기도 했다. 커트머리로 헤어스타일을 바꾼 것이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해프닝이 벌어졌다. 커트머리를 한 박후보였지만 방미도중 한복을 입으려면 한복에 걸맞은 올림머리 헤어스타일이 필요했다.

 

박후보는 한복용 올림머리를 만들려고 부분가발을 썼고 그것을 고정시키려고 실핀 24개를 꽂았다. 그게 문제를 일으켰다. 보스턴 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할 때 요란한 경보음이 울린 것이다. 박후보는 별도의 공간에서 실핀을 모두 뽑고 나서야 통과할 수 있었다. 올림머리 패션이 그때도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그동안 박대통령의 올림머리 패션을 두고 원칙과 신뢰를 상징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기야 대통령의 패션정치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민심을 붙잡는 노력 없이 비선실세에 마음을 빼앗기고, 어머니의 이미지로 자신의 외모만 꾸미려 했다면 문제가 아닐까.

워싱턴포스트의 패션저널리스트인 로빈 기번은 “여성 정치인의 패션은 정치적 성명발표와 같다”고 했다. 또 힐러리 클린턴은 “당신의 스타일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당신이 갖고 있는 희망과 꿈도 말해준다”고 했다.

 

세월호에서 300명이 넘는 인명이 수장되는 순간에도 올림머리 패션에 몰두한 대통령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 이웃집 아이가 물에 빠졌어도 버선발로 뛰어가는게 우리네 어머니의 인지상정인데 말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참고자료>
윤나리·임선희·진용미,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 및 헤어스타일 분석’, 한국미용예술학회지 제7권 1호, 2013년
양미경, ‘여성정치인의 패션스타일 활용연구’, 세종대 석사논문,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