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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영토없는 나라 '몰타기사단', 교황과 싸우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면적 0.44㎢(13만3000평)에, 1000명도 안되는 시민이 살고 있는 바티칸시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티칸시국은 양반이다.

예 ‘영토없는 국가’가 있다. 이름도 생소한 ‘몰타 기사단(Knights of Malta)’이다.

국가의 3요소인 영토·주권·국민 중 영토가 없는데도 국가일까. 그러나 세계 106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고, 헌법과 여권, 화폐, 우표는 물론 차량번호판까지 있다.

게다가 유엔의 항구적인 옵저버로 인정받고 있다. 로마의 한 건물을 ‘영토’로 하는 ‘사실상의 주권국’인 셈이다. 물론 기사단장은 로마 교황청이 임명하는 당연직 추기경이 맡고 있다.

몰타 기사단은 예루살렘 성지의 순례자들을 위한 진료소에서 시작됐다.

로마 시내에 붙은 교황비방 벽보. 몰타기사단과 교황의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수도사들의 봉사로 운영된 ‘구호 기사단’이었다. 그러다 12세기 초 1차 십자군 원정 때 성지 순례자들의 경호를 맡으면서 군사조직으로 확대됐다.

흰색 십자가를 그린 검은 겉옷을 갑옷 위에 걸친채 무슬림과 싸웠다. 1187년 예루살렘 왕국이 멸망한 이후 유럽을 옮겨다니다가 몰타에 정착했다.

1563년에는 700명의 기사와 8000명 보병으로 오스만 제국의 4만 대군을 궤멸시켰다.

아주 잠깐이지만 1660년 프랑스에 넘겨줄 때까지 카리브해 4개섬을 획득한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은 가장 작은 그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길에 정복당하면서 기사단의 ‘리즈 시절’은 마감됐다.

교황 레오 13세(1878~1903년)부터 구호 및 종교조직으로 회귀한 것이다. 지금도 120개국에서 구호활동을 벌이며, 회원 1만3500명에 직원·자원봉사자가 10만명이 넘는다.

1986년엔 몰타 정부가 과거의 인연을 고려해서 몰타 섬의 하나를 기사단에 할양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주민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몰타기사단은 기사단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원리 원칙을 지키는 보수 성향의 조직이다. 200여 년 전 나폴레옹에 항복한 이유가 ‘같은 기독교인과 싸워서는 안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니 말이다.

최근 몰타 기사단이 미얀마에서 콘돔을 배포한 기사단 소속 고위관계자를 해임한 사건을 두고 기사단과 교황청이 맞서고 있다. 이름하여 ‘콘돔게이트’다.

낙태는 물론 피임도 절대 안된다는 몰타기사단과, 이와같은 항명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다. 이번 싸움은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의 대리전 성격이 짙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