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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지긋지긋한 학교, 누가 만들었나

 “왜 집에서 빈둥대느냐? 제발 철 좀 들어라. 학교에 가서~ 선생님 앞에서 과제물을 암송하고~ 거리에서 방황하지 마라. 내가 한 말을 알아들었느냐?”(아버지)
 기원전 1700년, 수메르인 아버지가 말썽꾸러기 아들을 다그친다. 학교에 가지않고, 거리를 맴도는 아들을 마구 몰아붙이고 있다.
 “너에게 나무를 해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짐수레를 밀게 하지도. 쟁기를 끌게 하지도, 땅을 개간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다. ‘가서 일을 해서 날 먹여살려라’라고 한 적도 없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노는 아들’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전한다.

 동양에서는 은(상)시대에 처음으로 학교가 시작됐다. 지난 2008년 은(상)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중국 안양 인쉬에서 갑골문 발견 100주년 행사가 열렸다. 학교의 탄생지에서 초등학생들이 갑골문 쓰기 대회에 참가, 학생들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기환 기자

■최초의 학교
 “너 때문에 밤낮으로 고통받았다. 넌 밤낮으로 쾌락에 빠져 있다.~ 너의 형과 너의 아우 좀 닮아라. 너는 너의 인간성을 돌보지 않고 있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아버지의 직업(필경사)을 이어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는 아들을 답답한 심정으로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금이야 옥이야 키우며 그저 공부만 하면 된다는 아버지…. 그러나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며 꿈쩍도 안하는 아들…. 어쩌면 그렇게 오늘날의 ‘아버지와 아들’과 비슷할 수 있을까.
 이 아버지와 아들의 ‘말싸움’은 고대 수메르인이 제작한 점토판에 기록된 에세이의 한 대목이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200년 무렵 지금의 이라크 지역, 즉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살면서 가장 오래된 문명을 창조한 사람들이다. 인류최초의 문자인 ‘쐐기(설형)문자’를 발명했다. 그들은 점토판에 글자를 새겨 경제와 행정문서로 활용했다. 그리고 글을 쓸 ‘두브사르’(dub sar), 즉 필경사를 양성해야 했다.
 인류 최초의 학교인 에두바(edubba)가 탄생한 것이다. 1902~1903년 사이 수메르인인 ‘노아’의 고향인 고대 슈르파크에서 상당량의 수메르 학교 교과서가 발굴됐다. 기원전 2000년 점토판에 적힌 학생(필경사)들의 아버지 직업은 총독, 도시고위지도자, 군대지휘관, 고위직 세금관리, 대사, 신전 관리자 등이었다. 당대 필경사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부유층이나 고위층 자제들이었던 것이다.

 

 ■최초의 체벌·촌지
 앞서 인용된 ‘빈둥대는 아들’ 경우처럼, 학생들에게 학교와 수업은 따분하고 지겨운 과정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원전 2000년, 어느 수메르 학생이 교과내용을 담은 서판에 남긴 생생한 낙서를 읽으면 요절복통이다.
 “쉬는 날은 사흘이다. 예배보는 날도 사흘이다. 달마다 24일은 난 학교에 다녀야 한다. 지겨운 학교.”
 얼마나 지겨웠던 학교 생활이었으면…. 어느 학교선생이 점토판에 남긴 에세이는 어느 학생의 학창시절을 생생한 필치로 다루고 있다.
 학생은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니가 준 점심(빵 2개)를 들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그 학생은 좀 주위가 산만한, 문제학생이었던 것 같다. 시쳇말로 ‘구멍 학생?’ 수업을 받다가 뜬금없이 일어 나가거나 문밖으로 걸어나가는 등 돌출행동으로 교직원들에게 체벌을 받았다. 심지어 어떤 교사는 이 학생의 필기가 엉망이라면서 매질을 가하기도 했다. 학교체벌의 역사가 그 때 시작된 것이다. 학생도 선생의 매질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깜짝 놀랄 제안을 한다.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선물로 회유하면 어떨까요.”
 그런데 자식이 뭔지 부모도 학생의 제안을 덜컥 받아들여 선생을 집으로 초대한다.
 “집에 찾아온 선생님은 상석에 앉았다. 학생이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아버지는 선생님과 술잔을 기울이며 식사를 했다. 선생님에게 새 옷을 입히고 선물을 주었으며. 반지를 끼워주었다.”
 이것이 문자로 기록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촌지였다. ‘촌지’를 받고 기분이 한껏 고조된 선생님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학생을 칭찬한다.
 “넌 네 형제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낼 것이야. 친구들 중에서는 우두머리가 될 거야.”     

 

 

 도성내에서 학교를 세우려는데 순조로운지 점친 내용이다. 아래 갑골문은 악기인 용(대종)을 학교로 들어와도 좋은 지를 점친 것이다. 음악교육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 |양동숙 교수의 <갑골문해독>에서

■최초의 체벌
 그렇다면 동양의 학교는 어떨까.
 <예기> ‘내칙’은 “‘우하은주(虞夏殷周)’ 시대에 상(庠)·서(序)·학(學)·월교(月交)라는 학교가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러니까 동양에서 학교의 기원은 우순(虞舜), 즉 순임금 때인 기원전 2255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다. 학교의 존재가 확실하게 보인 때는 은(상)나라 시기(기원전 1600~1046년)이다. <상서(尙書)> ‘다사(多士)’에는 “그대 은나라 조상들에게는 전적이 있었다(惟爾知惟殷先人有冊有典)”는 기록이 있다. 은(상) 나라 사람들이 갑골문자를 만든 문명인이었으니 당연히 그 갑골문으로 책을 만들었을 것이다.
 또 수메르인들이 설형문자를 창조함으로써 학교가 탄생했듯 은(상)도 갑골문의 창안과 함께 학교가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설문해자>를 보면 ‘학(學)’은 ‘가르칠 효(斅)’로 나타나는 데 이는 매를 맞아가며 배운다는 의미이다. 교(敎)자도 갑골문에서는 모두 손에 매를 들고 아이를 가르쳤던 형상을 나타낸다.
 그러고 보면 수메르인이나 은(상)사람들이나, 학교체벌은 인지사정이었나 보다. 하기야 가르치는데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속이 터져 주먹이 먼저 나가고, 매를 들게 되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을 것이다. 갑골문에서 보이는 ‘학(學)’자의 형상 가운데 ‘효(爻)’가 있다. ‘爻’는 셈가지를 교차시켜 놓은 숫자의 개념이기도 하고, 역(易)의 육효(六爻), 즉 점괘의 6개 획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爻라는 문자가 가르치고 훈련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인류가 맨처음 했던 교육이 아마도 산수와 수학교육이었음을 암시한다.

 

 ■최초의 예체능교육
 학교와 관련된 갑골문도 상당수 나온다. 갑골문이란 왕이나 귀족이 어떤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점을 친 뒤 점의 내용과 결과를 거북등이나 짐승의 뼈에 새긴 글자이다.
 “도성 내에 학교를 세우려는데 순조로울까요?(作學于入若)”
 “기라는 사람으로부터 용이라는 악기를 학교로 들여올까요?(入學 自夔 庸至 新)”
 “오늘 정유일에 만이 가르칠까요?(今日丁万其學)”
 두번째 문장의 ‘용(庸)’이라는 악기는 대종(大鐘)이다. 또 세번째 문장에서 보이는 ‘만(万)’이라는 사람은 은(상)나라 때 전문 악사 조직의 일원이다. 즉 두번째와 세번째 갑골문은 은(상)때 이미 전문적인 음악교육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대학(大學)’의 역사도 은(상)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기(禮記)> ‘왕제(王制)’를 보자.
 “제후는 천자가 백성을 가르칠 것을 명한 후에야 학교를 세운다. 소학은 공궁의 남쪽 왼편에 세우고 대학은 교외에 세운다. 천자의 대학은 ‘벽옹(피雍)’이라 하고 제후의 대학은 ‘반궁(반宮)’이라 한다.(天子命之敎 然後爲學 小學在公宮南之左 大學在郊 天子曰피雍 諸侯曰 반宮)”
 그런데 후한시대 유학자 정현(鄭玄·127~200)은 이 대목에서 ‘학교의 역할’에 주석을 달았다. 
 “임금은 이 학교에서 조화를 높이고 밝히며 도예를 익혀서 천하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통달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정현은 <예기>에 나오는 ‘소학과 대학’을 두고 “은(상)의 제도”라고 못박았다. <예기> ‘내칙’을 보면 “8세 정도에 소학에 입학해서 15살 정도에 대학에 입학한다”고 했다. 또 왕후 귀족 자제들은 “예절(禮)·음악(樂)·활쏘기(射)·말타기(御)·글쓰기(書), 숫자의 개념(數) 등을 익힌다”(<주례> ‘보씨’)고 했다. 소학에서는 숫자와 동서남북의 방위, 그리고 천문역법을 익힐 수 있는 60갑자를 배웠다. 대학에서는 제사와 종교활동에 필요한 예절과 악무, 그리고 군사·전쟁·수렵을 위한 활쏘기와 말타기를 배웠다.(<대대기(大戴記)> ‘보전’) 

학교의 탄생을 알려주는 수메르인의 점토판. 빈둥거리는 아들과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꾸지람, 선생을 집으로 초청해서 '아들을 잘 봐달라'고 간청하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가람기획 제공

■최초의 대학
 문헌상에만 나타난 이들 기록을 뒷받침하는 고고학 유물이 쏟아졌다. 
 1972년 12월의 일이다. 허난성(河南省) 안양현(安陽縣) 샤오툰촌(小屯村)에 살던 농부 장위안우(張元五)가 도로가에서 흙을 파다가 갑골 하나를 수습했다. 갑골문을 훑어본 발굴자들의 눈이 빛났다.
 “조정(상나라 왕·재위 기원전 1466~1434)을 모셔놓은 제당에서 제사(심제)를 드릴까요? 대청과 제당에서 심제를 드릴까요? 대학에서 심제를 드릴까요?(于祖丁旦尋 于庭旦尋 于大學尋)”
 발굴단은 이 유적의 연대를 두고 은(상)의 말기 왕인 ‘강정(재위 기원전 1220~1199)~문정(기원전 1112~1102) 사이’로 보았다.
 갑골문은 ‘제사를 어디서 지낼 것인지’를 점치고 있는 것이다. ‘심(尋)’은 제물을 올리고 술을 뿌리는 제사의 일종이다. 양동숙 교수(숙명여대)는 “왕이 적장을 제물로 삼아 드리는 제전일 것”이라고 보았다. 전쟁터에서 사로잡은 적장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였을 것이라는 얘기다. 학교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잘못된 것이 아닌가. 아니다.  
 <예기> ‘왕제’를 보면 “전쟁에 나서 죄인을 잡아 돌아오면 ‘학궁(學宮)’에서 석전제를 올리고 신문할 자와 왼쪽 귀를 벤 자의 수를 고한다”고 기록했다. 또 “천자가 장차 출정할 때는 ~조상의 사당(祖廟)에 출정의 길흉을 점치고, 학궁(學宮)에서 그 모책을 결정한다”(<예기> ‘왕제’)고도 했다.
 결국 학교는 학문을 닦고 장소였을 뿐 아니라 전쟁의 모책과 같은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나라의 제사를 올렸던 성스러운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초의 교사
 그렇다면 선생은 무구였을까. 양동숙 교수는 왕과 귀족을 대신해서 점을 쳤던 집단인 ‘정인(貞人)’이었을 것이라 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은(상)대의 정인은 120여 명에 이른다. 왕을 대신해서 점을 쳤으며, 왕실·귀족 자제들에게 문자를 가르치고 간지(干支)와 역법(曆法), 방위(方位)를 가르친 전문집단이었다.
 어떤 갑골문에는 미숙한 글자체로 60갑자표를 쓴 예가 있다. 중국의 석학 궈모뤄(郭末若)은 “이것은 서툰 글자형으로 보아 학생들이 연습용으로 새긴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이는 “소학에 들어가면 천문역법을 익힐 수 있는 60갑자를 배운다”는 <예기>의 기록과 정확히 부합된다.
 또한 갑골문에 나오는 만(万)이나 다만(多万)은 앞서 밝혔듯이 왕실의 전문 악사로 음악과 무도(舞蹈)를 담당한 전문가들이다.
 “만에게 춤을 추게 하면 큰 비가 내릴까요?(万呼舞 有大雨)”
 “대왕은 만에게 음악을 연주하게 할까요?(王其呼万奏)”
 기우제를 지내며 전문악사인 만을 시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게 하면 큰 비가 내릴 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또 앞서 인용했듯이 용(대종)을 학교에 들여올 지, 전문악사인 만이 가르칠 지를 묻는 갑골문이 보인다. 이는 ‘만’이라는 사람이 학생들을 음악과 무도를 가르치는 예능교사의 역할도 했음을 보여준다.

 

 ■최초의 유학
 어떤 학생들이 교육을 받았을까.
 안양의 인쉬(殷墟) 화위안좡(花園莊) 동쪽에서 발굴된 귀족 무덤에서 흥미로운 갑골이 나왔다.
 “자(子)가 학교에 들어가는 데 순조로울까요?(子其入學 若永)”
 이 갑골문은 은(상)의 귀족인 ‘자(子)족’이 점을 친 뒤 기록해놓은 것이다. 왕이 아닌 귀족인 ‘자족’도 학교에 입학했음을 보여주는 갑골이다. 또 중요한 갑골문이 있다.
 “많은 소국들의 자제와 관리들을 불러 교육할까요?(其呼以多方子小臣其敎)”         
 무슨 뜻인가. ‘유학’을 뜻하는 것이 아닌다. 이 갑골문은 바로 ‘주변국 자제들’(方子)이 중국에서 공부하는, 이른바 ‘유학(留學)의 효시’를 말하고 있다,
 양동숙 교수는 “상나라 대의 학교는 지식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나라의 원로들을 봉양하고, 국정을 논의하며, 나라의 중요한 제사를 지낸 했던 장소였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고 보면 학교와 학교교육은 인류에게 있어 필요악인 것은 틀림없다. 문자를 만들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면 없어서는 안되니까…. 그러나 수메르 학생의 말마따나 피교육생은 37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따분하고 지겨운 곳이니까…. 지금 이 순간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한마디….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즐겨라! 즐겨! 혼자만 괴로운 게 아니지 않는가. 경향신문 선임기자

 

  <참고자료>
 양동숙, <갑골문으로 본 상대의 교육>, ‘중국문학연구 제28집’, 한국중문학회, 2004
         <갑골문 겸 갑골문 해독>, 서예문인당, 2005
 새뮤얼 노아 크레이머,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가람기획, 2000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Ⅰ>, 들녘, 2009
 李濟, <安陽>, 上海世紀出版集團, 2005
 이기환·이형구,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