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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청와대 진돗개는 왜 '의문의 1패'를 당했나

대통령이 키우는 반려견에게 ‘퍼스트도그(Firstdog)’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퍼스트도그’는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고독한 최고권력자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진정한 친구를 원한다면 개를 키우라”고 했을 정도였다.

‘퍼스트도그’는 대통령이 대중적 이미지가 필요할 때는 최측근 ‘정치견(犬)의 신분’으로 활약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반려견인 보(7살)과 써니(4살)는 대통령 취임일에 미셸 여사 옆에서 하객들을 맞이했고, 부활절에는 계란굴리기 행사에도 나섰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대통령의 반려견 팔라는 1주일에 수천통의 펜레터를 받는 ‘인기견’이었다. 루즈벨트는 펜레터를 일일이 읽고, 답장을 보내주느라 집무시간의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52년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애완견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받은 것은 체커스(반려견) 밖에 없다. 그러나 내 딸이 체커스를 너무 좋아해서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반려견과 딸’을 앞세운 닉슨의 동정표 작전은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한국 대통령의 반려견 사랑도 뒤지지 않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와이 망명 때 킹 찰스 스패니얼 품종의 반려견을 데려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진돗개 ‘백구’와 스피츠종인 ‘방울이’에 애정을 쏟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은 진돗개와 풍산개 각각 1쌍을 선물로 주고받았다. 이 때의 반려견은 남북화합의 민간사절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반려견 ‘진돗개’ 사랑도 지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분수를 지켜야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로 내정된 ‘호랑이’ 대신 ‘진돗개’로 바꾸라고 지시했단다.

진돗개를 고집한 배경에 최순실씨의 이권개입 혐의도 제기된다.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만약 대통령의 빗나간 진돗개 사랑 탓이라 해도 절대 ‘관용의 담장’을 넘게 할 수 없다.

무튼 마스코트의 지적재산권을 갖고 있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의 반대는 완강했다.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문제삼았다. 그렇지않아도 유럽의 동물보호단체에서 ‘개고기를 먹는 한국에서 올림픽 개최는 불가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차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로서는 민감한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난 4월에는 당시 조양호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과 김종덕 문체부장관이 국제올림픽위원회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으로 달려갔다.

거절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청와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늦었던 올림픽 마스코트 결정은 1년 가까이 허송세월한 끝에 지난 6월 ‘호랑이’로 최종 결정됐다.

발표 10일 전까지 마스코트의 이름도 확정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마스코트를 활용한 각종 수익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헛된 진돗개 고집’이 끼친 손해는 필설로 다할 수 없다.

불현듯 조선조 성종의 사례가 떠오른다. 성종이 송골매와 낙타 기르기에 몰두하자 신하들이 득달같이 나서 아우성쳤다.

“애완에 한눈을 팔면 백성을 향한 임금의 본심을 잃게 됩니다.”

도에 지나치면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엔 민심을 잃은 지도자와, 또 잘못된 길인줄 알면서도 그 누구도 진실을 간하지 못하는 간신배만 득실거리고 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