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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현정화가 단일팀 논란에 묻는다. '그럼 통일은 안할건가요?'

 “언니랑 밥 한번 먹고 싶어요. 꼭 둘이서만….”

현정화 렛츠런(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49)은 설레는 마음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다리고 있다.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꺾고 단체전 우승을 일궈낸 ‘코리아 단일팀의 짝궁’ 북한의 리분희(50)가 평창을 찾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리분희는 북한 장애자 체육협회 서기장으로서 평창 패럴림픽에 참가할 가능성이 짙다.

27년전 취재기자로 33일간 일본전지훈련장과 본대회를 취재했던 필자가 현정화 감독과 리분희와 관련된 추억과 단일팀를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봤다.

1991년 지바탁구선수권대회에서 코리아 단일팀 소속으로 만나 단체전 우승을 이끈 현정화와 리분희. 46일간 한솥밥을 먹으며 작은 통일을 이뤄냈다.  

 

■27년간 이뤄지지 않은 소망

“리분희를 만나면 맨 먼저 무엇을 하고 싶어요?"(필자)

현정화 감독은 잠시 뜸을 들인 뒤 "식사 한끼 대접하고 싶다"면서 이 한마디를 강조했다.

"꼭 둘이서만…’

그러나 행여나 이번에도 분희 언니를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닌게 조바심이 난 듯 하다.

“장애인협회서기장이면 하계올림픽든 동계올림픽이든 상관없이 참가하는 것이 맞겠지요.” 
리분희와는 1993년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본게 마지막이었으니 벌써 25년이 흘렀다.

같은 단일팀 선수였던 김성희와 결혼한 리분희의 아들(진성)이 장애인이 됐고, 그 때문에 리분희가 장애인협회 일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뿐이다. 

“아니, 그 이후엔 한번도 본 적이 없었나요.”(필자)
“분희 언니는 결혼하면서 은퇴했고, 저도 (예테보리 선수권 단식 우승 후) 선수생활을 접었고….”(현정화 감독)
몇차례 만날 기회는 있었다.

특히 2014년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리분희가 협회장 자격으로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회직전 리분희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만나면 둘이서 밥한끼 먹고싶다”는 소박한 바람은 27년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단일팀 남녀에이스 현정화 유남규, 북한의 김성희, 리분희. 리분희는 김성희와 결혼했다.

 

■"왜 그리 눈물이 났을까요"

“어쨌든 (아이스하키팀의) 단일팀이 구성되었는데 감회가 새롭겠네요.”(필자)
역시 27년 전 현장기자로서 지바 현장에 있었던 필자가 현정화 감독의 추억을 자극했다. 현감독은 새삼스럽다는 듯 기억의 편린을 맞추었다.
“단체전 우승한 뒤의 순간이 떠오르네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단일팀 멤버들(현정화·홍차옥·리분희·유순복 등)이 라커룸으로 밀려 들어갔는데요. 우리 선수들만 있게 됐는데, 갑자기 선수들 모두 눈물이 터진 거예요. 다들 붙잡고 얼마나 울어댔는지….”(현 감독)
왜 그렇게 눈물이 터졌는지는 모른다. 합숙전지훈련 33일과 대회 13일 등 총 46일간 남북한 선수들이 흘린 땀과, 쏟아지는 부담감을 우승으로 보상받았다는 안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현감독은 “46일간의 작은 통일이라 할 수도 있는데, 사실 선수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엄청났다”고 되돌아봤다.
“남북한 선수들끼리 토닥대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한참 생각하더니 “아무리 되돌아봐도 특별히 싸운 기억이 없다”고 했다.
“혹시 남북한 선생님들(코칭스태프)은 싸웠을지 모르지만 선수들은 정말 사이가 좋았어요.”

■우정의 증표로 준 금반지는 지금 있을까

헤어지기 전날 밤 몰래 리분희 선수의 방에 찾아가 서울에서부터 마련한 금반지를 선물로 준 기억도 떠올렸다.
“공식적으로는 줄 수 없었으니까 남의 이목을 피해 언니 방으로 찾아갔죠. …링반지였는데요. 그래봐야 1돈짜리지만 평양에 가서도 꼭 기억해라는 뜻이었지요.”
말하자면 우정의 증표를 전한 것이었다. 그 반지를 리분희가 지금도 간직하고 있을까.
단일팀 일정을 끝내고 리분희와 헤어지는 그 순간 현정화는 또 눈물을 흘렸다.
“이 기분 뭐지? 왜 이렇게 헤어지는 거지? 좀 답답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냥 눈물이 나더라구요.”
당시의 신문들은 남북선수들의 헤어짐을 ‘짧은 만남, 기약없는 이별’이라고 했다.
과연 그 제목대로 현정화와 리분희는 46일간의 짧은 통일을 경험한 것으로 만족한채 ‘기약없는 이별’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다정한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맞잡은 현정화와 리분희.

 

■"단일팀 논란? 저도 당황스러워요."

지바 단일팀의 감동을 지금도 느끼고 있는 필자가 현정화 감독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요즘 평창올림픽 단일팀 구성과 관련해서 여론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단일팀을 경험한 나도 좀 당황스러운데….”(필자)
“그렇죠.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에요. 당황스럽죠. 예전 같으면 단일팀 구성한다고 하면 굉장히 호의적이었는데…. 젊은 세대 정서가 달라진 것 같아요.”(현 감독)
“북한을 감상적으로 여겼던 예전과 달라진 감도 있고…. 북한에 대한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졌고….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너무 일방통행식으로 아이스 하키 단일팀을 밀어붙인 것 때문이 아닐까요.”(필자)
“특히 정부의 일방통행 말씀하셨는데 그건 저희 때도 마찬가지였죠. 정부가 탁구선수들한테 물어보고 단일팀 추진했나요. 그저 정부가 추진하면 ‘따라가야 하나 보다’ 하는 분위기였죠.”(현 감독)
현 감독은 “세상이 달라졌다는 반증이 아니냐”고 했다.
“지금 시민이 대통령을 바꾸는 세상이 됐잖아요. 정부가 시키는대로 하는 시대는 지난 거 같아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정부가 갑질한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죠.”

■"그래도 스포츠가 정치를 선도할 수 있잖아요" 

그러나 현 감독은 단일팀 구성 자체를 백안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선도적으로 풀었던 분야가 바로 체육이잖아요. 정치상황 때문에 다른 분야는 어렵잖아요. 가장 하기 쉬운 체육을 매개체로 해서 남북이 대화를 한다면 좋은 일 아닙니까.”
현정화 감독은 이번에 단일팀을 구성하는 아이스하키팀 선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탁구가 그랬듯 아이스하키도 단일팀으로서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정부 역시 이번 기회에 여자아이스하키의 저변을 넓혀주는 방안을 마련해주면 좋을 듯 싶어요.”
‘단일팀 경험자’의 입장에서 현정화 감독은 “지금 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던진다.
“단일팀이 소용없다고 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던데요. 한번쯤 질문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통일은 하지 않을 것인가’. 스포츠교류가 바로 통일의 출발점이 아닌가요.”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