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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이건희 회장이 ‘픽’한 ‘애착 유물’…‘삼성가 국보 100점 프로젝트’ 비화

이기환기자 2026. 4. 8. 12:21

생전에 모아둔 문화유물과 함께 전국을 돌고 미국과 영국을 주유하는 인물이 있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다.
2021년 삼성가가 고(故) 이건희 회장의 수집품 2만3000여점을 국가기관(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고 난 뒤의 사후 여행이다. 
무슨 일인가. 국가기관, 즉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 기증품’을 바탕으로 전국 주요 전시관에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순회전을 열었다. 전국 10여개 도시에서 열린 순회전엔 지금까지 약 350만명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왕제색도’, ‘추성부도’, ‘석보상절’ 같은 국보급 유물과, ‘황소’, ‘여인들과 항아리’ 등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이 소외 지역민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켜 준 것 같다. 무엇보다 ‘삼성’ ‘이건희’라는 이름값이 순회전의 가치를 한껏 높였다. 

고 이건희 삼성회장은 1980~90년대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결과 국보(37건)·보물(110건) 등 국가지정문화재(149건)를 수집했다. 이 숫자는 선친(이병철 회장)이 수집한 국보(12건)·보물(9건)의 7배가 됐다.

■이건희 회장의 사후 여행
이제 고 이건희 회장과, 그의 수집품은 미국·영국 나들이 나섰다. 지난해 11월부터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의 국외순회전(‘한국의 보물:모으고, 아끼고, 나누다’)이 첫번째 여행코스였다. 그 첫번째 순회전엔 8만명의 관람객이 모였다. 이 관람객은 스미소니언 미술관의 지난 10년간 열린 특별전 가운데 가장 많은 관람객을 기록했다. 또 미국 관람객 만족도 조사 결과 최근 15년간 최고 평가’(highest rated exhibition)'를 받기도 했다. 또한 담당 큐레이터의 설명을 담은 영상은 조회수 100만을 넘겼다. 최근 10년간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이 제작한 영상 중 최다 시청을 기록한 것이다. 이밖에 국립중앙박물관과 삼성전자가 협업한 홍보 콘텐츠도 노출 1700만 회를 상회했다.

무엇보다 삼성의 오너 일가는 ‘이건희 컬렉션’을 매개로 적극적인 ‘문화 외교의 장’으로 활용했다. 즉 지난 1월28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국외순회전 폐막 갈라 행사가 그 무대가 되었다.  이 행사에는 이재용 회장을 비롯해 홍라희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부부가 참석해 외빈들을 맞았다. 이 갈라행사에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비롯해 미 정·관계 인사와 글로벌 기업 경영진, 문화계 주요 인사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두번째 나들이 코스는 시카고다. 3월7일부터 7월5일까지 시카고박물관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의 국외순회전 명칭은 ‘한국의 국보:한국미술 2000년’이다. 이 전시에는 국보 7건, 보물 15건을 포함한 문화유산 127건(244점)과 한국 근현대미술 13점 등 총 257점이 소개된다. 주요 전시품은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 김홍도(1745~?)의 ‘추성부도’ ‘천·지·현·황이 새겨진 백자 대접’, 삼국시대 금동불, ‘천수관음보살도’, 조선전기 ‘석보상절’ 등이다. 워싱턴·시카고 여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카고 순회전 이후에는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박물관 순회전(10월1~2027년 1월31일)으로 이어진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가장 사랑했다는 가야금관 일괄유물. 이병철 회장은 가야금관이 유독 애착을 가졌다. 이회장은 특히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5~6세기)보다 수백년 앞선 최초의 금관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세기의 기증
이 대목에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난 2021년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엔 어떤 작품들이 있을까. 
2021년 고 이건희 회장이 기중한 문화 유물 및 미술품은 1만123건(2만3000여점)이었다. 이것을 국립중앙박물관(9797건·2만1600여점)과 국립현대미술관(1226건·1400여점)에 기증했다. 기증품 중에는 국보 14건, 보물 46건 등 총 60건의 국가지정문화재가 포함됐다. 
이중 진경산수화의 전범이라는 ‘정선필 인왕제색도’(국보)와 뒤늦게 진가가 드러난 ‘청화백자죽문각병’(국보),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보물), 단원 김홍도(1757~1806?)의 마지막 그림인 ‘추성부도’(보물) 등이 손꼽히는 국보·보물 기증품들이다. 
그 뿐이 아니다. 비지정 문화유산인 고려불화(‘수월관음도’) 등도 국보·보물급의 가치가 차고 넘친다. 
근·현대 미술품은 이상범(1897~1972)의 ‘무릉도원’, 이중섭(1916~1956)의 ‘황소’, 박수근(1914~1965)의 ‘절구질하는 여인’, 김환기(1913~1974)의 ‘여인들과 항아리’, 나혜석(1896~1948)의 ‘화령전 작약’ 등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세기의 기증’이라 했다.

이병철 회장이 사랑한 투톱 중 다른 한 건은 ‘청자진사주전자’(국보)다. 이 주전자의 안료로 쓰인 진사(辰砂)는 수은 황화물(HgS)의 광석이다. 진사 안료는 고온에서 급작스럽게 휘발되기에 고난도의 제작기술이 필요하다.

■삼성가 국보·보물
비단 이건희 회장(1942~2020) 뿐이 아니다. 선친인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1910~1987)와 함께 2대에 걸친 고미술 수집가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삼성가 2대’의 전체 수집품은 어느 정도일까.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고 이건희 회장·삼성문화재단(이병철 창업회장의 수집 기증품)·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의 소유로 파악된 국보(37건)·보물(110건)은 총 147건이었다. 그중 2021년에 40%인 60건을 국가기관에 기증한 것이다. 다만 이병철 회장의 수집품은 이미 전체가 삼성문화재단에 기증됐다. 따라서 2021년 기증 대상은 아니었다. 

1979년 이병철 회장은 일본에 있던 불화 아미타삼존도 등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일본측이 한국내 반일감정 등을 고려하여 팔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이회장은 미국의 삼성물산 지사를 동원하여 구입 비선을 만든 뒤 아미타삼존도롸 지정도를 구입했다. 이외에도 단원 김홍도의 ‘군선도 병풍(국보)과 국내 유일의 급속제 탑인 금동대탑(국보), 가짜로 몰릴 뻔했다가 일약 국보로 떠오른 신라사경(국보), 고려금속공예의 극치인 청동은입사향완(국보) 등도 ’이병철 수집품’이다.

 

■이병철 회장의 애착 금관
그렇다면 삼성가 2대가 수집한 국보·보물에는 대체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중 기증된 것들은 무엇이고, 기증되지 않은 것들은 무엇일까. 
1976~1995년 사이 호암미술관에서 부관장 등을 역임하며 삼성가 2대의 수집을 도운 이종선씨의 단행본 <리컬렉션>(2016·김영사)을 참고로 살펴보자. 이병철 창업주의 수집 문화재(호암컬렉션) 중 ‘투톱’은 ‘전 고령 가야금관 및 장신구 일괄’(이하 가야금관·국보)’과 ‘청자동화연화문표주박모양 주전자’(이하 청자진사주전자·국보)이다. 
이중 ‘가야금관’은 이병철 회장이 하루 일과를 ‘잘 있냐’는 안부를 물으며 시작했단다. 직접 금관의 부속유물들을 몸체에 붙여보며 들여다봤다고도 한다. 이병철 회장이 ‘가야금관’에 유독 애착한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 이 회장에게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5~6세기)보다 수백년 앞선 최초의 금관”이라고 귀띔했기 때문이다. 이회장은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신라 금관(황남대총 북분 금관은 5세기 3/4분기, 금관총·서봉총 금관은 5세기 4/4분기로 추정)보다도 훨씬 앞선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것이니 얼마나 애지중지했겠는가.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닫았다. 심지어 이 회장과 가까웠던 김원룡 서울대 교수(고고학과)마저도 이 회장의 주장이 워낙 강해 입도 벙긋 못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의 본격적인 국보 수집은 ‘고구려반가사유상’의 인수부터 시작됐다. 이 불상은 가장 오래된 원조 반가사유상으로 꼽힌다. 국보 중 국보로 꼽히는 83호와 78호 반가사유상보다 앞서는 작품이다.

■백지수표 제시설
‘호암(이병철 회장의 호) 컬렉션’의 투톱 중 다른 한 건은 ‘청자진사주전자’(국보)다. 이병철 창업주의 ‘주전자’ 사랑은 끔찍했다. 
1982년 호암미술관 개관을 위해 2층 전시실을 마련하면서 30㎜ 방탄유리로 쇼케이스를 만든 것도 바로 이 주전자 때문이었다. 진사(辰砂)는 약제로도, 안료로도 쓰이는 수은 황화물(HgS)의 광석이다. 그런데 진사 안료는 고온에서 급작스럽게 휘발된다. 
따라서 고난도의 제작기술이 필요하다. 이병철 회장은 가뜩이나 색깔이 미려한 청자의 겉면에 진사가 듬뿍 발린 이 주전자를 특별히 사랑했다. 특히 진사기법이 중국보다 수백년 앞서 있다는 견해에 이 회장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해맑은 미소를 띄었다고 한다. 

고구려 반가사유상은 1940년 평양에서 골동품상을 운영하던 고 김동현이 일본 병기창에서 근무중인 조선인에게서 기와집 세채값인 6000원을 주고 구입했다. 김동현은 이후 이 반가상을 지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병철 회장이 이 국보 청자진사주전자를 수중에 넣게 된 것에는 두가지 설이 떠돈다. 하나는 이 회장이 1970년대초 일본 오사카(大阪)국립박물관의 경매전시 소식을 듣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져오라”는 특명을 내렸고, 마침내 거금 350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는 설이다. 
또하나는 ‘백지수표’ 설이다. 이 주전자는 1963년 강화도에서 도굴된 유물 중 한 점으로 끼어있었다는 것이다. 도굴품 일괄을 사들인 인물이 다른 도굴품들은 이리저리 팔아넘겼지만 이 주전자만큼은 공소시효(10년)를 비켜가기 위해 비밀리에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거간꾼을 통해 업계에 돈 소문에 접한 이병철 회장이 군말없이 구입했다는 것이다. 이때 이 회장이 백지수표를 건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동현은 훗날 집 한 채 없이 여관방을 전전하면서 지독한 생활고를 겪었다. 1963년 반가사유상을 처음 공개했을 때 여관방을 찾았던 전문가들이 깜짝 놀랐다. 김동현은 지독한 생활고를 겪었지만 고구려반가상과 삼존불상 등 수집 유물만큼은 비싼 보관료를 지불하고 은행금고에 보관했다.

■비밀리에 구입
이병철 회장이 사랑한 또다른 도자기는 ‘청자상감 운학모란국화문 매병’(보물)이다. 
이 회장은 1976년 일본경제신문 기고에서 라고 자랑한 바 있다. 흠없고 때깔이 좋은 작품을 주로 찾았던 이병철 회장 기호에 맞는 작품들이었다. 국보 ‘아미타삼존도’는 해외에서 최초로 정식 수입한 고려 국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은 파란만장했다. 
1979년 일본 나라(奈良)시 박물관의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에서 경매를 겸한 고려불화 전시회가 열렸다. 그러나 주최측에서는 갑자기 한국에는 고려불화를 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할까 두려웠음에 틀림없었다. 

결국 이병철 회장은 미국의 삼성물산 지사를 동원하여 구입 비선을 만들어 이 불화를 사들인 뒤 국내로 우회 수입하는 방법을 취했다. 일본→미국-한국이라는 복잡한 경로를 거친 것이다.
그렇게 사들인 ‘아미타삼존불’(국보)과 ‘지장도’(보물) 등 불화 두 점이 우여곡절 끝에 국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밖에 단원 김홍도의 31살 작품인 ‘군선도 병풍(국보)과 국내 유일의 급속제 탑인 금동대탑(국보), 가짜로 몰릴 뻔했다가 일약 국보로 떠오른 신라사경(국보), 고려금속공예의 극치인 청동은입사향완(국보) 등이 ’호암 수집품’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그렇게 수집한 문화유물 전체를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했다. 따라서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에서는 빠졌다. 

1970년대 후반 건강이 악화되자 소장 유물들의 ‘그 후’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결국 김동현씨가 소장하고 있던 고구려 반가상은 삼존불상 등과 함께 ‘이건희 컬렉션’이 되었다.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
‘이건희 컬렉션’은 어떨까. 이종선씨의 단행본(<리컬렉션>)에 따르면 1980~90년대 이건희 회장은 아주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것이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다. 이 회장은 “명품 1점이 다른 수집품들의 가치를 올려준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명품주의’라 했다. 이종선 씨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의 국보 수집은 이병철 창업주와 의논한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호암미술관과도 별개로 진행됐고, 일찍부터 개인수집가들로부터 국보급 문화유산을 인수·소장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 유물이 ‘정선 필 인왕제색도’(국보)와 <금강전도>(국보)이다. ‘인왕제색도’는 겸재 정선이 76살 때인 1751년(영조 27) 비온 뒤의 인왕산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중국의 산수화를 그린 관념산수화와 달리 조선의 경치를, 조선의 화법으로 보고 그린 실경산수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번 기증에는 빠진 ‘금강전도’는 1734년(영조 10) 정선이 내금강의 실경을 그린 작품이다. 

이건희 회장의 대표 수집 유물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와 <금강전도>(국보)이다. ‘인왕제색도’는 겸재 정선이 76살 때인 1751년 비온 뒤의 인왕산 모습을 그린 실경산수화이다. 기증품에서는 빠진 ‘금강전도’는 1734년 정선이 내금강의 실경을 그린 작품이다.

■원조 반가사유상의 구입 사연 
이건희 회장의 본격적인 국보 수집은 ‘고구려반가사유상’의 인수부터 시작됐다. 이 불상은 가장 오래된 원조 반가사유상으로 꼽힌다. 국보 중 국보로 꼽히는 83호와 78호 반가사유상과, 일본이 자랑하는 국보 1호(목조부문) 고류지(光隆寺)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의 할아버지 뻘 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반가사유상은 1940년 평양에서 골동품상을 운영하던 고 김동현이 일본 병기창에서 근무중인 조선인 막노동꾼에게서 기와집 세채값인 6000원을 주고 구입했다. 대폿값이라도 벌려고 명문 고구려 기왓장과 흙투성이의 반가상을 판 막노동꾼은 팔자를 고쳤다. 김동현은 이후 이 반가상을 지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방대한 한국문화재를 쓸다시피 한 대구의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1870~1964)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당시 기와집 250채 값인 50만원을 제시했지만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 기와집 한 채 가격이 10억원이라도 250채값이면 2500억원이 아닌가. 흥정이 불가능해지자 오구라는 “내가 수집한 금속유물 전부와 반가상을 바꾸자”는 제안까지 했지만 김동현은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동현은 훗날 종지에 담긴 간장을 유일한 반찬으로 삼고 사는 등 지독한 생활고를 겪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고구려반가상과 삼존불상 등 수집 유물만큼은 비싼 보관료를 지불하고 은행금고에 보관했다. 유물을 팔아 팔자를 고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건강이 악화되자 소장 유물들의 ‘그 후’를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단다. 결국 김동현 소장 유물들은 삼성가로 넘어오기 시작했고, 1990년대 초 마지막으로 고구려 반가상과 삼존불상은 ‘이건희 컬렉션’이 되었다. 

이건희 회장이 출근길에 아파트 여러 채 값을 결제 처리했다는 백자가 바로 국보 ‘백자 달항아리’다. 기름 얼룩이 져 있는데, 오히려 생활용기라는 점이 이 백자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백자 마니아
이병철 창업주가 ‘청자 마니아’라면 이건희 회장은 ‘백자 마니아’였다. 이중 이건희 회장이 출근길에 아파트 여러 채 값을 결제 처리했다는 백자가 바로 국보 ‘백자 달항아리’다. 이 달항아리는 조화롭고, 풍만하면서 완전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 전형적인 조선 중기 백자 호의 특징을 보이는 작품이다. 이건희 회장은 청화백자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청화백자는 아랍산 푸른 안료(코발트)를 써서 만든 최상급 백자다. 
이중 국보 ‘청화백자매죽문호(항아리)’는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가짜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출처가 불분명한데다 작품이 너무 깨끗했기 때문에 “15~16세기 작품일리 없다”는 쑥덕공론이 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논쟁이 끝났다. 1976년 종로구 관철동 부근 지하철 공사장에서 이 청화백자와 비슷한 모양의 백자 어깨 파편이 출토된 것이다. 결국 이 백자는 1984년 국보로 지정됐다. 국보 <청화백자죽문각병>도 나중에 진면목을 찾은 작품이다. 대나무 문양도, 모깎이를 한 각병의 모양이 특이했지만 정처없이 임자를 찾아 떠돌다가 이건희 회장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 백자는 결국 1991년 1월 국보로 지정됐다. 

국보 ‘청화백자매죽문 항아리’는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출처가 불분명한데다 작품이 너무 깨끗했기 때문에 “15~16세기 작품일리 없다”는 쑥덕공론이 일었다. 국보 ‘청화백자죽문각병’은 대나무 문양도, 모깎이를 한 각병의 모양이 특이했지만 정처없이 임자를 찾아 떠돌다가 이건희 회장의 수중에 들어갔다.

■사진만 보고…
조선초 문인화가인 이암(1499~?)의 ‘화조구자도’(보물)는 유물 사진만 보고 구입을 결정한 작품이란다. 
일본 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인데, 1980년대 후반 일본인 거간이 <화조구자도> 사진을 가져왔다. 당시 일본에 반출되어있던 이암의 작품 중 일부가 북한 김일성 컬렉션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이종선씨는 “계약금만 받으면 <화조구자도>의 실물을 빌려오겠다”는 일본인 거간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했다. 전후사정을 파악한 이건희 회장은 “그러라”고 승락했다. 결국 꽃과 강아지, 새를 그린 이암의 ‘화조구자도’는 국내전문가의 실물 확인 및 감정을 거쳐 구입환수됐고 보물로 지정됐다. 이암의 작품 중 <모견도>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고양이를 함께 그린 ‘화조구묘도’는 북한 평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조선초 문인화가인 이암의 ‘화조구자도’(보물)는 유물 사진만 보고 구입을 결정한 작품이다. 국내전문가의 실물 확인 및 감정을 거쳐 구입환수됐고 보물로 지정됐다. 이암의 작품 중 <모견도>는 국립중앙박물관이, 고양이를 함께 그린 ‘화조구묘도’는 북한 평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밖에 조선 초중반의 화가 김시(1524∼1593)의 산수 인물화인 ‘동자견려도’(보물)와 1440년(세종 22) 제작됐다는 명문이 새겨진 ‘분청사기 상감 정통5년명 어문 반형 묘지’(보물), 12세기 명품 청자인 ‘양각죽절문병’(국보) 등이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구입했다.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자 국보(37건)·보물(110건) 등 국가지정문화재(147건)는 선친(이병철 회장)이 수집한 국보(12건)·보물(9건)의 7배가 됐다. 2021년 국보·보물 60건(국보 14건·보물 46건)을 기증했지만 아직도 삼성가엔 87건의 국보·보물이 남아있는 셈이다. 

다소 뜬금없는 얘기일 수 있지만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일본 뎬리대에 소장된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만약 구입 환수할 수 있다면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의 백미가 될 것이다.

■몽유도원도는?
그런데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다가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대목이 있었다. 

“지금 일본 뎬리대에 소장된 안견(생몰년 미상)의 ‘몽유도원도’를 만약 구입 환수할 수 있다면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의 백미가 될 것”이라는 이종선씨의 언급이다.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고 이건희 회장의 수집품 기증으로 삼성가의 국보 보물수가 89건으로 줄었다. 그렇다면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에 13점이나 미달되게 되었다.
거두절미하고 딱 1점, 즉 ‘몽유도원도’ 단 한 점을 귀환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프로젝트는 100%가 아니라 1000% 완수하는 셈이 되지 않을까. 물론 삼성 만의 프로젝트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이 기사는 이종선의 <리컬렉션>(김영사·2016)과 이건희 회장의 기증 후 다시 펴낸 <이종선 관장이 말하는 이건희 컬렉션>(김영사·2023)을 참고했습니다.

이기환 히스토리텔러 lkh07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