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컬링을 둘러싼 한 일 딸기 전쟁·

이기환기자 2018. 3. 5. 12:00

한국에 ‘영미’ 팀이 있다면 일본에는 ‘소다네(そだね)’ 팀이 있다.

‘영~미, 영미!’처럼 삿포로 지방의 억양으로 ‘소다네!(그렇지)’를 외치는 일본여자컬링선수들을 지칭하는 별명이다.

일본팀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컬링 종목 사상 처음으로 메달(동)을 딴 것도 인기요인이다.

덧붙여 시종 생글생글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한 스킵(주장) 후지사와 사츠키(26·藤澤五月) 등 일본 선수들의 모습 역시 팬들을 매료시켰다. 5엔드 후에 맞이하는 간식시간조차 화제를 뿌렸다.

NHK가 지난 17일 일본-OAR(러시아)전의 휴식시간에 잠시 다른 영상을 내보자가 “왜 간식시간을 끊느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일본팬들은 컬링팀의 휴식시간을 ‘모구모구(もぐもぐ·오물오물의 의태어) 타임’이라 했다.


그런데 이때 일본 선수들이 맛있게 먹던 딸기가 구설에 오를 줄이야.

‘세컨드’ 스즈키 유미(27·鈴木夕湖)가 동메달 기자회견에서 “한국산 딸기가 그렇게 맛있는 지 깜짝 놀랐다. 내가 가장 좋아한 간식이었다”고 밝힌게 뜻밖에 후폭풍을 일으켰다.

일본 내에서 “한국산 딸기는 일본의 기술을 훔친 것”이라는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급기야 사이토 겐(齊藤健) 농림수산상은 “선수들이 일본산 딸기를 먹었다면 더 기분이 좋았을 것”이라면서 “한국산 딸기는 일본 딸기의 이종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새품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아사히 신문은 일본농림수산성 관계자의 언급을 인용해 일본의 딸기수출이 한국 때문에 해마다 40억엔(약 410억원)을 손해 보고 있다고 추산했다.
사실일까. 실제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내에서 딸기 재배면적의 90%는 일본 도입종이 차지하고 있었다. 국내업자들이 일본농가를 찾아가 개인적으로 계약을 맺고 들여온 딸기품종이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진 것이다. 무단유포였다.

한국은 2002년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했지만 딸기 등 몇개 품종은 보호대상에서 10년간이나 유예시켰다. 일본측이 뒤늦게 로열티 지불 등을 요구하는 등 호들갑을 떨었지만 끝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는 없었다.

국내농가에서는 ‘남의 국권까지 훔친 나라의 씨앗 좀 무단유포한 게 무슨 죄냐’는 식의 버티기작전까지 폈다. 급기야 2005년에는 국내에 퍼진 일본 품종들로 우리 실정에 맞는 종자를 개량하는데 성공했다.

지금은 전체농가의 95%가 국산품종을 쓰고 있다. 그러니 일본으로서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버스 지나간 격이니 어찌할 수 있겠는가.

지금 한국도 같은 고민에 빠졌다. 일본 종자를 바탕으로 좋은 딸기를 개발한 것은 좋았는데, 지금은 중국 등에서 무단으로 한국산 딸기를 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동병상련일 수 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