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AK(아카보) 소총과 칼라시니프 동상

이기환기자 2017. 9. 22. 09:32

인류가 경험한 가장 가공한 무기는 원자폭탄이었다.

 

1945년 8월 일본 미군의 원폭 투하로 히로시마(인구 34만명)에서 최고 17만명, 나가사키(인구 24만명)에서 최고 8만명 등 25만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원폭투하는 단 두 번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해마다’ 원폭 사망자수와 비슷한 25만명을 쏘아죽이는 무기가 따로 있다. 전세계에 1억정 이상 보급돼있으며, 대당가격도 평균 100~300달러에 불과하다. 잠비크 국기와 짐바브웨·동티모르의 국장(國章), 그리고 헤즈볼라 깃발에 그려져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모스크바 중심가에 들어선 칼라시니코프의 동상

휴대폰보다도 가격이 싼 이 무기는 바로 1947년 구 소련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1919~2013)가 개발한 AK-47 돌격소총이다.

 

러시아어인 ‘자동소총 칼라시니코프’(Avtomat Kalashnikov)의 머리글자와 개발연도(1947년)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그야말로 싼 가격에 인간을 한사람 한사람 죽일 수 있는 ‘가성비’ 높은 총이었던 것이다.

지난 19일 모스크바 중심부 ‘가든 링 로드’에서 이 무기의 개발자인 칼라시니코프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 행사에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문화부장관은 물론 러시아정교회 관계자들까지 첨석했다. 메딘스키의 말이 걸작이다.

 

“이 동상은 러시아의 문화브랜드”라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모잠비크 국기에 새겨진 AK-47소

제막식을 집전한 러시아정교회의 콘스탄틴 신부는 “칼라시니코프는 조국 수호를 위해 이 총을 창조한 인물”이라고 칭송했다. 정교회의 전직 사제는 “이 소총은 성스러운 무기”라 했다.

해마다 25만명씩 죽이는 소총의 개발자를 두고 정부는 물론이고 교회까지 나서 ‘성스러운 문화브랜드’ 운운하며 우상화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모스크바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에 세워진 이 동상은 군국주의 러시아의 이미지를 상징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떤 시민은 ‘칼라니시코프는 죽음의 개발자’라는 구호를 쓴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려다 경찰에 연행됐다. 사실 이번 제막행사는 러시아 문화부가 국수주의로 무장한 러시아군사역사회라는 단체를 통해 진행했다. 러시아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헤즈볼라 깃발에 그려진 AK소총

 

생전의 칼라시니코프는 자신의 개발품이 불의한 자와 집단에 들어가 ‘마구잡이 살상용’으로 쓰이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심지어 지구촌 곳곳의 소년병 손에까지 들려진 AK소총을 바라보는 개발자의 심정이 좋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우뚝 선 칼라시니코프의 동상을 바라보면 갖가지 상념이 든다. 광장은 공공의 합의를 표현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렇다면 이 공공의 장소에 세워진 기념물 역시 당대 사회의 분위기를 상징해준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면 어떻게 될까. 칼라시니코프의 경우 지금이야 러시아에 불어닥친 국수주의 풍조에서 ‘애국자’의 상징물로 서있겠지만 훗날은 어떨까.

 

세상인심이 바뀌면 지탄의 대상이나 증오의 상징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역사가 웅변해준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