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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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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의 꿈 서린 주몽의 도읍지, 오녀산성을 가다 “와!” 환런(桓仁)시내에서 8㎞ 쯤 달렸을까. 단풍이 곱게 물든 산 길을 굽이굽이 돌다가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상상 속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이, 혹은 천신이 강림하여 쌓은 거대한 성채(城砦) 같은 것이 떡하니 솟아있다. 이름하여 오녀산성이다. 옛날 산과 마을을 수호하던 선녀 5명이 흑룡과의 싸움에서 전사했다고 해서 ‘오녀산성(五女山城)’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고구려의 발상지라면서 5선녀가 어떻고. 흑룡이 어떻고 하는 전설이 좀 뜬금없기는 하다. 하지만 마땅히 부를 이름이 없으니 어쩌랴. 산성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녹록치 않다. 필자는 강남문화원 답사단과 함께 중국 라오닝성(遼寧省) 환런시(桓仁市)에서 약 8㎞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휴전선이 찢어놓은 궁예의 야망 “저기 예쁘게 생긴 나무 한 그루 보이시죠? 그 나무를 따라 쭉 이어진 띠 처럼 펼쳐진 윤곽이 보이시죠?” “예” “저 윤곽이 바로 궁예가 건설한 태봉국 도성의 외성 흔적입니다.” 지난 25일 강원 철원 흥천원 벌판, 비무장지대가 눈앞에 펼쳐있는 평화 전망대. 필자는 파주 교하도서관의 탐방프로그램(‘길 위의 인문학’)에 참가한 답사객들에게 태봉국과 태봉국의 역사를 설명했다.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 지역 문화유산 전문가인 박종용씨가 부연한다. “이곳에 와보니 궁예가 왜 이곳에 태봉국의 도읍을 정했는지 알 수 있겠죠?”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궁예의 태봉국도성. 군사분계선과 경원선이 4등분으로 도성을 갈라놓았다. ■비무장지대는 산이 아니다. 벌판이다. 최성숙 교하도서관 사서를 비롯한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
잘못 출제된 입시문제 '흑역사' 최근 수능 세계지리 8번 문제 파동을 보면 역사는 돌고 돈다는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1964년 12월 7일 서울시 전기중학 입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도 수능일이면 전국이 들썩거리지만 그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험 치른 다음날, 각 신문에는 전날 치른 문제가 이른바 ‘가리방으로 긁은 글씨체’ 그대로 전제되었다. 당시만 해도 코흘리개 국민학생(초등학생)들까지 입시지옥을 겪었으니 아찔한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큰 사단이 일어났다.. 1964년 12월 7일 벌어진 전기중학 입시 자연문제 17번과 18번 문제,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재료를 고르는 문제이다. 전기중학 시험문제는 도하 각 신문에도 그대로 전제됐다. |경향신문 자료..
포석정의 비밀…경애왕은 '놀자판'이 아니었다. “옛날 견씨(견훤)이 왔을 때는 승냥이나 범을 보는 것 같더니 지금 왕공(왕건)이 이르러서는 마치 부모를 보는 듯 하구나.”( ‘신라본기·경순왕조’ 931년 3월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이 경주를 방문하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감읍한다. 는 이어 “왕건의 부하 군병들은 엄숙하고 조용했으며 어떤 조그만 물건에도 손대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경순왕이 ‘승냥이나 범’으로 치부한 견훤 때는 어땠는가. “견훤이 927년 겨울 11월에 경주에 들이닥쳤다. 견훤은 후궁에 숨어있던 경애왕을 핍박하여 자결케 하고 왕비를 강음(强淫)했다. 부하들은 경애왕의 비첩들을 난통(亂通)했으며 공사의 재물을 노략질했다.”( ‘신라본기·경애왕조’) 경주 포석정. 경애왕이 견훤이 침략하는 사실도 모르고 술판을 벌이다가 비참한..
1974년의 '김수현', 최불암의 CF 모델료 “지난 몇해동안 우리나라 TV 수상기 보급 증가율은 파천황적이다.” 경향신문 1974년 10월 12일자는 ‘부쩍 는 TV수상기 보급-전국 150만대 돌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TV수상기 증가율을 ‘파천황적(破天荒的)’이라는 표현을 쓰며 놀라워했다. 파천황은 혼돈의 상태(天荒)을 깨뜨리는(破) 천지개벽의 상황을 일컫는다. 기사는 “KBS에 등록된 TV 수상기 대수가 150만대를 돌파했다”면서 “등록되지 않은 음성대수를 포함하면 200만대가 보급됐을 것”이라 전하고 있다. 당시 기사는 “TV 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모나코(1위)이며. 미국(2위), 캐나다(3위), 쉬든(스웨덴·4위)이 뒤를 잇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대략 25위로 추산된다”고 추정했다. 기사를 보면 ‘파천황’이 그렇게 과장된 표현이 아..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정권입니다' “고구려는 조기 중국 북방의 소수민족정권입니다.” 중국 지안(集安)의 광개토태왕릉 위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면 누구든 감상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그야말로 절대 넘을 수 없는 군사분계선 철책을 돌고 돌아 중국대륙으로 우회해서 온 길이 아닌가. 압록강엔 철책이 없다. 북한 땅, 북한 사람들이 손에 닿을듯, 마음에 닿을 듯 가깝다. 그러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왕릉을 내려와, 그 거대한 광개토대왕비를 바라보면 또 한 번 상념에 젖을 수밖에 없다. 7m에 가까운 비석에 새겨넣은 1800자에 이르는 명문…. 명문에 표현된 대로 비문의 주인공은 바로 ‘광활한 영토를 개척한’(廣開土) ‘왕중의 왕’(太王)이 아닌가. 압록강 이남 한반도로 쪼그라들고, 그 조차 군사분계선으로 양분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