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376) 썸네일형 리스트형 ‘7000명이 쌓고, 1만4140명이 고쳤다’…신라 왕실의 ‘저수지’ 프로젝트 해방 직후인 1946년 어느 날이었다. 대구사범대에 재직 중이던 금석학자 임창순(1914~1999)이 길을 걷다가 대구 대안동의 어느 집(서태균의 집) 앞에 놓인 둥근 형태의 비석을 발견했다. 임창순 선생은 단박에 ‘명문 신라 고비’로 판단했다.집주인(서태균)에게 물으니 “매입한 적산가옥(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집)을 수리하다가 부엌 부근에서 발견한 비석”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경북 영천의 청제(저수지) 제방을 쌓고(536) 수리(798)하는데 7000명(축조)~1만4140명(수리)이 동원되었음을 알려주는 명문비석. 1968년 학계에 보고되었다.|국가유산청 제공이 비석의 원 위치는 알 수 없었다. 후속 연구(하일식 연세대 교수)에 따르면 비석이 발견된 대안동 서태균의 집이 조선시대 경상 감영에 속해있었다. 따.. 과학으로 증명한 ‘639년의 낙뢰’, 그 순간…무왕의 익산 천도 3번째 퍼즐 맞췄다 ‘이것이 꼭 1386년 전인 639년 떨어진 벼락(낙뢰)의 흔적이다.’ 얼마전 (2025년 3월호)에 따끈따끈한 논문이 실렸다.전북 익산 제석사터에서 두 동강으로 방치되었던(지금은 붙여놓음) 목탑의 심초석을 자력 탐사로 분석한 논문(오현덕·한광휘의 ‘자력탐사를 통한 익산 제석사 목탑에 내리친 낙뢰(벼락)의 과학적 고찰’)이었다. 커다란 심초석이 두 동강 난 이유로는 ‘벼락 때문’으로 짐작되었다.(후술) 따라서 이번 자력탐사는 ‘벼락을 맞은’ 직접증거를 찾기 위함이었다.벼락 맞은 목탑의 흔적문헌(에 639년 벼락을 맞아 소실·붕괴된 것으로 기록된 익산 제석사 목탑터에 대한 자력탐사 결과 실제로 강력한 전류의 흐름이 번개문양으로 측정되었다. 문헌자료가 사실임이 입증된 셈이다.|오현덕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학.. 수장고에 꽁꽁 숨긴 ‘천마총 인물화’…‘깔끔쟁이’ 신라인의 화장실 88곳 경주 천마총(6세기초 조성) 하면 어떤 유물이 떠오를까. 1973년 조사된 이 왕릉급 무덤에서 쏟아져 나온 1만1500여점 중에서…. 두말할 것도 없이 해방 후 우리손으로 처음 발굴된 ‘금관’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그러나 금관보다 더 센 유물이 출현했으니, 그것이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천마도’)였다.워낙 강한 ‘원투펀치’ 때문에 다른 유물은 상대적으로 묻혔다.1973년 천마총에서 출토된 고리 모양의 채화판. 말을 타고 사냥에 나서는 듯한 1500년전 신라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천마도와 금관 등에 가린데다 공기 중 훼손에 취약한 자작나무 재질이어서 지금까지 수장고에 보관되었다.|국립경주박물관 제공■원투펀치에 밀렸지만…그 중 천마도 말다래와, 그 밑에 차곡차곡 쌓은 말갖춤새까지 걷어내.. “사랑하는 당신!” 2000년 전 죽은 남편의 가슴에 얹은 ‘망부가’ 거울 ‘○○○ 파경….’ 이혼이나 이별을 알리는 기사 제목에 즐겨 등장하는 용어가 ‘파경(破鏡)’이다.거울이 깨졌으니 돌이킬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면 ‘파경’에는 ‘중원(重圓·다시 원을 이룸)’이 붙어 ‘파경중원(破鏡重圓)’, 즉 ‘이별(파경) 후 재회(중원)’가 본뜻이기 때문이다.2017년 경북 경산 하양읍 양지리의 널무덤 주인공 가슴 위에서 출토된 명문 청동거울. 명문이 ‘군망망(君忘忘~)’으로 시작되어 ‘군망망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들어 지병으로 떠나보낸 남편을 사랑한 나머지 ‘아직 그대를 놓아줄 수 없다’고 애끊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남편의 가슴에 고이 올려놓은 청동거울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나왔다.|국립대구박물관·국립청주박물관·국립나주박물관 제공■파경=이.. ‘백제 후예’ 자처한 데라우치 총독…“선원전 현판·원구단 건물 뜯어간 범인 맞다” 2023년 11월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도쿄(東京) 지사를 통해 깜짝 놀랄만한 정보가 입수되었다. 12월26일 일본 후쿠오카 유메카이(友茗會) 옥션에서 특별한 경매가 예정돼있다는 소식이었다. 경매에 앞서 인터넷상에 공개된 출품 목록에 과연 눈길을 잡아끄는 유물이 등장했다.‘경매시작가 200만엔(한화 약 2000만원) Lot(경매 품목번호) 622번 조선 19세기 경복궁 선원전 편액’출품 목록에는 경복궁 ‘선원전(璿源殿)’이라고 새긴 고색창연한 편액(현판)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려있었다.얼마전 구입환수한 ‘경복궁 선원전’ 현판은 2016년 일제강점기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의 철거업체 창고 천장에서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린채 발견되었다. 창고에는 조선 궁궐의 건물에 설치되었던 잡.. 문화유산, ‘보이지 않는 빛’으로 들춰보니…‘아차 실수!’, ‘인간미’까지 찾아냈다 햇빛이 ‘일곱색깔 무지개’로 분리된다는 것을 증명한 이는 영국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1642~1727)이다.1672년 뉴턴은 깜깜한 방의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무지개색으로 바뀌고 볼록렌즈로 합친 빛이 두번째 프리즘을 통과하면 다시 백색광으로 바뀌는 실험을 했다. 이것이 가시광선(可視光線)이다. 사람들은 이 가시광선만이 빛인줄 알았다.아니었다. 1800년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셀(1738~1822)은 프리즘을 통과해서 색깔별로 나눠진 빛의 띠를 조사하다가 ‘빨간색 띠 너머’(적외·赤外)에 열이 나는 구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CT(컴퓨터 단층 촬영) 결과 국보 ‘청자어룡 모양 주전자’는 여러 부위를 따로 만들어 붙인 흔적이 보였다. 물레로 만든 항아리를의 옆면을 자른 다.. “신라 태자는 주색잡기에 빠졌다?”…‘태자궁’ 출현에 풀린 ‘50년 오해’ 경주 시내에 아주 매력적인 핫플레이스가 있다. ‘동궁과 월지’이다.야경, 은은한 달빛에 비치는 ‘연못(월지) 위의 데칼코마니 뷰’는 절로 감탄사를 자아낸다.그런데 이 ‘동궁과 월지’ 명칭은 좀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낯설다. 오랫동안 ‘안압지’ 명칭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안압지’는 기러기(안·雁)와 오리(압·鴨)가 뛰노는 연못(지·池)이라는 뜻이다.그런데 꼭 50년 전인 1975년 이 연못에서 ‘주색잡기에 빠진 신라 태자’를 상징하는 유물 2건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그것이 오해였다는 고고학 방증자료가 발표되었다. ‘동궁과 월지’에 담겨있었던 ‘오해와 진실’을 한번 풀어보자.최근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결과 ‘월지’ 동편에서 신라 태자가 거처한 ‘동궁’임을 추정케하는 ‘대형건물+.. 피 토한 고종, 통곡한 총리, 폭발한 민심…‘을씨년스러웠던’ 1905년 을사년 ‘을씨년스럽다’는 ‘2025년 을사년’을 맞아 더욱 인구에 회자되는 표현이다.은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이 말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을사년’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설처럼 떠돌고 있다.피를 토한 고종1905년 11월18일 새벽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대한제국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일본 경찰은 “고종이 몇시간째 통곡했고, 급기야 피를 토하기까지 했으며, 전국 각지에 사자를 파견, ‘조약은 불법으로 맺어졌으니 짐의 백성들은 궐기하라’는 밀명을 내렸다”는 정보보고를 올렸다.| 제24권 ‘한일협약’(1905년11월18일 경찰보고)■을사년, 을씨년하지만 1855년 편찬된 조재삼(1806~1866)의 에 다른 설명이 등장한다.“을사년=세간에 을사년을 흉하게 여겨.. 이전 1 2 3 4 ··· 1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