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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1400년전 신라인의 ‘지문’, 1800년전 백제인의 ‘족적’이다. 범죄사건이 일어났을 때 수사요원들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있습니다. 지문과 족적입니다. 지문은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끼리도 다르다고 하며, 같은 지문을 가질 확률이 640억분의 1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은 “유일하게 지워지지 않는 서명은 사람의 지문”이라고 했답니다. 신발 발자국인 족적 또한 신원을 파악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됩니다. 신발의 크기와 보폭으로 키와 연령대를 가늠하고 신발의 종류와 찍힌 족적의 방향, 걸음걸이 등을 파악해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습니다. 아니 역사 고고학 이야기 하면서 왜 뜬금없이 지문과 족적을 들먹이냐구요 ■남근처럼 보였던 흙인형이… 이유가 있습니다. 1800년 전과, 1300~1400년 전의 지문과 족적이 실제로 고고학 발굴로 확인된 이야..
'전하, 바다귀신 소개합니다'…임진왜란 참전한 '흑귀노' 용병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전시회가 개최되는 경우가 많이 생겼는데요. 문화재청 세종대왕유적관리소에서는 27일부터 6월27일까지 ‘효공과 하멜 이야기’ 기획전시를 연다고 합니다. 전시는 ‘북벌 의지를 다졌던 효종과 조선에 억류된 네덜란드인 하멜이 무기개량 등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했다고 합니다. 덕분이겠지만 조선 땅에 표류한 외국인 중 가장 유명한 이가 네덜란드인인 헨드릭 하멜(1630~1692)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네덜란드인끼리 목놓아 울었다 하지만 하멜 말고도 상당수 외국인이 낯선 땅 조선에 표착해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남겼습니다. 1653년(효종 4) 8월6일자 을 볼까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와있습니다. “예전에 조선에 온 박연이 금방 표류한 자들(하멜 일행)을 만나보..
"'이릉 송백'의 치욕을 절대 잊지마라"…일본에 사신단을 보내는 영조가 눈물로 신신당부했다 최근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조선통신사 재현선을 체험형 문화공간으로 활용한 ‘선상박물관 문화기행’을 4월 28일부터 10월 20일까지 운영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선상박물관 문화기행’은 전남 목포를 중심으로 문화유산 소개, 옛 뱃길 산책, 수중발굴유적지 탐방, 문화예술 공연, 체험 등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특히 옛 뱃길을 따라가는 운항경로는 연구소에서 출발하여 천연기념물 갓바위, 삼학도, 목포항구, 고하도, 달리도 수중발굴현장, 시하바다를 둘러보는 여정이다. 조선통신사선은 지난 2018년 실물크기인 길이 34.5m, 너비 9.3m, 깊이 3.0m, 총 137t수로 재현했다. 이런 배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4년간 12차례에 걸쳐 일본에 파견된 ‘조선통신사’들을 태웠다. 한번에 3..
책 1억번 읽은 '조선의 둔재'…세종도 울고 갈 '독서왕'이 됐다 최근 충북 증평군에서 색다른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독서왕김득신문학관’이 준비한 ‘느리지만 끝내 이루었던 길 독서왕 김득신’ 특별전인데요. 김득신의 유물인 과 이 충북도지정문화재가 된 것을 기념해서 7월11일까지 열립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김득신은 ‘야묘도추’ 등을 그린 풍속화가 김득신(1754~1822)이 아닙니다. 그 분과 동명이인이자 조선 중기의 시인인 백곡 김득신(1604~1684)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백곡 김득신은 천하의 책벌레로 알려진 세종대왕(재위 1418~1450)도 울고 갈 지독한 독서왕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더욱이 김득신은 어려서부터 둔재로 소문났던 사람입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세종을 능가하는’ 독서왕이 됐을까요. ■세종의 ‘자뻑’…나..
벽돌에 새겨진 신라 전성기의 기와집…으리으리한 팔작지붕이었다 요즘엔 합금(구리+주석)이 워낙 좋아서 사라진 관행이지만 예전 설 명절마다 익숙한 풍경이 있었다. 곱게 빻은 기왓장 가루를 지푸라기 수세미에 묻혀 하루종일 놋그릇을 빡빡 문질러 닦는 풍습이었다. 그렇게 닦으면 놋그릇이 반들반들하게 되는데 어쩌랴. 한데 이게 보존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아주 잘못된 관행이었다. “곱게 간 기와 가루로 빡빡 문질러대면 번쩍거리며 윤이 나죠. 그러나 결국은 그릇의 표면을 깎아내는 것이죠. 그러니 계속 문질러대면 그릇이 얇아지겠죠.”(홍원희 안성맞춤박물관 학예연구사) 놋그릇도 얇아진다지만 기왓장은 또 무슨 죄인가. 과거의 으뜸 건축자재였던 기와는 그렇게 ‘놋그릇 닦기용’ 가루가 되어 산산이 흩어졌다. 그러니 무슨 문화재 대우를 받았겠는가. 유창종 유금와당박물관장의 경험담이 흥미롭다..
당신이 길가에서 우연히 국보 문화재를 찾는다면…보상금은 얼마? 문화재 담당기자이던 저는 가끔 현장답사를 다니다가 헛된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만약 역사를 바꿀만한 명문비석을 발견하거나 유물을 찾아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지표면을 샅샅이 뒤지기도 하고, 수풀을 더듬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같은 사람의 눈에 쉽게 걸리겠습니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알고보면 역사·고고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반 시민들이 역사에 길이 빛날 문화유산을 발견했고, 그 분들 중 일부는 그 대가로 소정의 보·포상금도 받았으니까요. ■신라 국보 비석 트리오의 발견 스토리 대표적인 케이스가 있죠. 2009년 5월11일의 일이었는데요.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 주민 김모씨는 자기 집 앞 도로공사 현장을 지나다가 크고 평평한 돌에 시선이 꽂혔답니다. 화분받침대로 제..
능산리 절터의 목탑지 석조사리감은 왜 도끼로 훼손된채 발견됐나 여러분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각자의 취향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겠죠. 금관이나 반가사유상, 석굴암, 불국사 등을 꼽는 분도 있을 거고, 혹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택하는 분도 있겠죠. 그런데 이러한 대표 문화유산 중에 막내라 할 수 있는 문화재가 있는데요, 바로 백제금동대향로인데요. 복제품의 몸값도 수백만원에 이른다는 금동대향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문=백제금동대향로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 중 하나라는 것은 알겠는데 막내라는 이유는요? 답=예 가장 늦게 발견되었기 때문에 막내라는거죠. 금동대향로는 1993년에 우연히 발견됐으니까요. 그리고 이 금동대향로는 복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실물크기로 만든 가장 비싼 것은 300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는데요. 특히 일본인들의..
구텐베르크와 동년배, 세종은 가장 아름다운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얼마전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국내에서는 전해지지 않는 15세기 금속활자본을 일본 도쿄(東京) 와세대대(早稻田大) 도서관에서 찾아냈다는 소식이 들렸는데요. (吏學指南)이라는 책은 중국 원나라 때인 1301년에 편찬한 법률·제도 용어집이자 관리 지침서랍니다. 그러나 저는 이라는 책 자체에는 그리 관심이 없구요. 이 책이 1420년(세종 2년) 제작된 ‘경자자(庚子字)’라는 금속활자로 만들었다는 것에 눈길이 쏠렸습니다. ■신료들은 왜 금속활자를 반대했을까 1420년이라면 어떻습니까. 최초의 금속활자본이 (1377년)이든, 혹은 공인본(보물 758-2호·1239년 무렵)이든 43~181년이나 흘렀던 때입니다. 바로 그럴 때 조선의 태종과 세종은 양질의 금속활자를 개발해서 책을 대량인쇄하는 것을 국책사업으로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