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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이세돌 대 인공지능, 누가 이길까

바둑의 ‘경우의 수’는 사실상 무한대다. 한번 놓을 수 있는 가짓수만 361개(19X19)에 달한다.

흑과 백이 첫수를 주고 받는 경우의 수만 12만9960(361X360)가지에 이른다. 두 번 씩만 주고받아도 167억 가지(361X360X359X358)가 되고, 모든 경우의 수를 굳이 계산하면 ‘10의 170제곱’에 이른다.

우주의 원자수 10의 80~100제곱 보다 훨씬 많다. 요순시대부터 시작됐다는 바둑의 5000년 역사에서 똑같은 판이 나왔을 리 없다. 옛 사람들이 바둑을 우주에 견줘 바둑판의 한가운데 점을 하늘의 중심인 ‘천원(天元)’이라 한 것은 천고의 혜안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수학의 ‘경우의 수’니 확률로 계산할 수 없는 ‘패’나 ‘먹여치기’ ‘되따기’ 등의 요지경 같은 바둑룰까지 있다. 상대방의 수를 그대로 따라 두는 ‘흉내바둑’이 있기는 하다.

1929년 우칭위안(吳淸源)이 기타니 미노루(木谷實)에게, 1965년 후지사와 호사이(藤澤朋齊)가 린하이펑(林海峰)에게 각각 흉내바둑을 두었다. 하지만 어떤 흉내 바둑도 70수를 넘지 않았다.

그저 승부를 위한 부분전술일뿐 ‘인간의 체면’을 걸만한 전략은 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불끈불끈 솟아나는 인간의 승부욕이 똑같은 바둑을 용납하지 않았다. 순간의 감정과 직관을 발휘해서 그때 그때의 국면에 대처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인공지능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감정과 직관을 불어넣기 위해 바둑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체스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추월했지만 차가운 논리 만으로 둘 수 없는 바둑은 난공불락으로 치부됐다.
그런데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프로 2단인 유럽바둑챔피언을 꺾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컴퓨터의 이미지 인식능력 98.52%인 구글은 인간의 97.53% 보다 뛰어난 점을 앞세워 바둑정복에 나서고 있다. 3000만국의 프로기사 대국장면을 이미지 인식으로 읽어내 판세를 분석하고 좋은 수를 찾아가는 식이다. 유럽챔피언을 꺾고 의기양양한 알파고가 세계최정상인 이세돌 9단에까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물론 손근기 프로 5단의 분석처럼 알파고의 기력은 이세돌 9단에게는 아직 족탈불급이다. 다행이다.

만일 로봇이 이긴다면 기계가 인간, 그것도 입신의 경지라는 바둑 9단의 마음까지 훔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원래는 약자를 응원하는게 인지상정이지만 이번에는 강자인 이세돌 9단을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