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의 난개발을 막고 평화구역으로 만들기 위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지난 7일 도종환 문화체육부장관은 48개국 주한외교단과 함께 판문점과 비무장지대 일대를 방문한 행사에서 “비무장지대가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을 위한 평화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비무장지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도 장관은 “70여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온대림과 야생동물 등 생태자원을 갖춰 관광잠재력이 높다”면서 “이런 생태문화의 보고를 자본의 논리로 잘못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경기 연천 동이리에 있는 유엔군 화장터. 등록문화재 제408호이다. 주로 영국군의 시신을 화장했던 곳이다.

 

■비무장지대는 생태의 보고만은 아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기념물이나 건조물, 유적지 등 역사·고고학적인 유산에 초점을 맞춘 ‘문화유산’과, 지질·과학·지문·생태 등 자연의 기념물이나 동식물종을 보전하는 ‘자연유산’, 그리고 문화·자연유산의 특징을 동시에 충족하는 ‘복합유산’으로 나뉜다. 도장관의 발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다는 세계자연유산에 더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무장지대 일원은 자연유산 뿐이 아니라 세계사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의 자격도 차고 넘친다. 따라서 지무장지대를 자연유산 만이 아니라 자연+문화유산을 아우르는 ‘유네스코 복합유산’으로 등재할 필요가 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휴전협정 조인식 모습. 왼쪽 책상에 앉은 이가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이고 오른쪽 책상에 앉은 이가 공산군 수석대표 남일 대장이다. 현재 조인식장 건물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어 북한 측에 편입된 상태이다.|국사편찬위원회 소장

물론 도장관의 언급대로 비무장지대 일대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강원 평강의 오리산(해발 453m) 일대에서 10차례 이상 분출된 용암이 빚어낸 임진강·한탄강 유역의 주상절리가 절경을 이룬다. 게다가 사향노루와 수달, 검독수리, 담비, 가시오갈피나무, 가는동자꽃 등 멸종위기ⅠⅡ 급 생물 등 야생생물이 6000종 가까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비무장지대가 70여년간 중무장지대였고, 해마다 시계확보를 위한 인위적인 산불과 철조망 같은 시설물에 의한 생태계 왜곡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왜곡된채 나름대로 재생·복원되는 생태계 또한 비무장 지대 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따라서 비무장지대 일대는 ‘지질·지형·지문학적인 특성으로 지구사의 주요단계’와 ‘특별한 자연미와 심미적 중요성을 지닌 자연현상’, ‘진행중인 중요한 생물학적 과정’, ‘멸종위기종의 현장보전’ 등 유네스코 자연유산의 등재기준 4개항목을 모두 충족한다. 세계자연유산의 자격이 차고 넘친다고 할 수 있다.

2년 1개월 여의 지루한 휴전회담 끝에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공산 양측이 군사분계선(휴전선)의 말뚝을 박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유네스코 복합유산이다

하지만 그동안 생태계에 초점이 맞춰진 사이 간과되고 있었던 것이 바로 ‘유네스코 문화유산’로서의 가치이다.
수심이 얕고 여울이 많아 도강하기 쉬운 임진강·한탄강은 예부터 한반도 경영을 꿈꾼 세력이 반드시 건너야 할 전략적인 요처였다. 이미 2000년 전부터 말갈-백제, 고구려-백제, 신라-고구려, 신라-당나라 등이 접전을 벌인 흔적이 도처에 깔려있다.

그런데 이곳은 해방 이후 분단과 1950년 한국전쟁 및 냉전 상황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한국전쟁은 전쟁의 전기간 중 3년1개월2일(1127일) 가운데 3분의 2에 달하는 764일을 이곳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싸운 교착전의 양상으로 벌어졌다.

특히 이 전쟁에서는 전쟁 당사자인 남북한을 포함해서 17개국 젊은이들이 동서진영의 자존심을 건 이데올로기의 희생물로 피를 흘렸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비무장지대 일대는 비무장이 아닌 중무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라는 오명을 안았다. 따라서 비무장지대 일대는 명실상부한 전쟁유산이자 하나의 거대한 전쟁유적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비무장지대에 있는 백마고지. 피아간 십자포화로 고지의 정상부위가 평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 피아간 2만명이 넘는 병사들의 희생됐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고지 이름에 담긴 사연

예컨대 1951년 7월부터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27일까지 2년여에 걸친 휴전회담을 벌인 개성 광문동 민가와 내봉장, 판문점은 대표적인 전쟁유적이다.

광문동 민가와 내봉장에서 벌어진 회담에서 양측은 승리자를 뜻하는 자리인 남쪽을 차지하려고 눈치 작전을 벌이는 하면 키를 크게 보이려고 상대방의 의자를 잘라버리는 등의 유치한 싸움을 벌였다. 심지어 양측 협상단은 “깜박거리면 진다”는 듯 무려 2시간 11분간의 눈싸움까지 벌이기도 했다.

결국 판문점으로 자리를 옮긴 회담은 159회의 회담과 575회의 공식회의, 1800만 단어를 주고받은 끝에 휴전협정에 서명했다. 지루한 휴전협정이 벌어지는 동안 19개국 장병들은 국지적인 고지쟁탈전에서 피를 흘렸다. 전쟁 당사자인 남북한군(90만~110만명), 16개국 유엔군(약 32만명), 중국군(약 97만명) 등 220만명을 웃도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희생했다.  

피의 능선. 처절한 전투로 능선이 피바다를 이뤘다는 의미로 ‘피의 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백마고지, 저격능선, 불모고지, 포크찹 고지, 수도고지·지형능선, 티본고지, 제인러셀 고지, 단장의 능선, 피의 능선 등 처절한 전투가 벌어진 고지 이름들은 종군기자들이 쓴 기사로 전세계에 타전됐다.

티본 스테이크 처럼 생겼다는 ‘티본고지’, 육체파 여배우 제인 러셀의 가슴을 닮았다고 ‘제인러셀 고지’, 십자포화로 나무가 모두 쓰러져 산의 형태가 마치 백마처럼 보였다고 해서 ‘백마고지’, 치열한 전투로 피바다가 되었다는 ‘피의 능선’, 심장이 찢어질듯 고통스럽다는 뜻의 ‘단장의 능선’, 맹포격으로 고지정상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는 ‘아이스크림 고지’ 등은 전쟁의 아픔과 추억을 동시에 전해주는 고지 이름들이다.

■콜롬비아, 터키, 에티오피아, 태국, 필리핀군까지

유엔 16개국 중에는 14만명의 인명피해를 낸 미국과 호주·캐나다·뉴질랜드·벨기에·룩셈부르크 등 5개국과 영연방 사단을 구성한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단급인 5090명을 파견해서 언어문제로 남북한 병사를 식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악전고투한 터키와 불안정한 국내정세에도 대대급 규모를 파견한 콜롬비아 병사들도 있었다.

황실근위대 1200명이 참전한 에디오피아군. 에티오피아군은 121명의 전사자와 535명의 부상자를 기록했지만 포로는 0명으로 집계됐다. 황제를 향한 충성심 때문에 포로가 되는 것을 가장 불명예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황실근위대 중 1200명을 보낸 에티오피아군은 ‘가그뉴(Kagnew·상대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다는 에티오피아어)’ 정신으로 무장했다. 에티오피아군은 121명의 전사자와 535명의 부상자를 기록했지만 포로는 0명으로 집계됐다. 황제를 향한 충성심 때문에 포로가 되는 것을 가장 불명예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군은 포위가 되어도 전멸이 될 때까지 싸웠다고 한다. ‘리틀 타이거’의 별명을 얻은 태국군은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포크찹 힐’로 유명한 ‘포크찹 고지 전투’ 등에서 피를 흘렸다. 한국전쟁 개전 직후 유엔의 결의에 따라 지상군을 보낸 3번째 국가인 필리핀의 참전도 유명하다. 1992~96년 대통령을 지낸 피델 라모스 중위가 이끄는 필리핀 결사대가 에리고지(연천 역곡천 지류 고지)를 점령한 기록이 한국군의 전사(戰史)에 기록되었다.

■중국이 구축한 지하만리장성도 있다

아군 뿐이 아니다. 비무장지대 일대에는 북한군 외에도 수십만에 달하는 중국군의 피와 넋이 묻혀있다. 중국군은 1951년 8월부터 52년 12월까지 한반도 동서를 잇는 250~287㎞, 폭 20~30㎞, 총연장 4000㎞에 달하는 지하갱도를 파내어 교착전에 대비했다. 중국은 이 어마어마한 지하갱도를 일컬어 ‘지하만리장성’이라 명명했다. 중국측은 이 지하장성 덕분에 1952년 10~11월에 벌어진 상감령(김화 오성산 일대)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중국은 1950년대 이 승전의 기록을 ‘상감령 정신’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승전을 기념한 영화 ‘상감령 주제가인 ’나의 조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리허설 때 연주되는 등 국가(‘의용군행진곡’) 다음으로 애창되었던 노래다. 2011년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위한 국빈만찬에서 중국의 천재 피아니스트인 랑랑(郞朗)이 연주한 일도 있었다.

 

1951~52년 사이 중국군은 전 전선에서 지하갱도를 팠다. 갱도의 규모는 248~287킬로미터였으며, 총연장은 4000킬로미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중국은 이 갱도를 지하만리장성이라 일컬었다.|눈빛 출판사 제공

 

■휴전선 말뚝과 철책도 문화유산이다

한국전쟁 중의 전쟁유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휴전협정에 따라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른 군사분계선은 선(線)의 개념이 아니라 표지물 제0001호부터 동해안의 제1292호까지 모두 1292개의 말뚝(표지물)을 약 200m 간격으로 박아놓은 ‘점(點)’의 개념이다. 이 1292개의 말뚝 역시 전쟁과 냉전시대의 상징유물이다. 당연히 그 점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쳐놓은 철책과 중무장 요새와 장비 또한 평화시대에는 구시대의 전쟁유산으로 간직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등록기준은 ‘독특하거나 희귀하거나 오래된 것’과 ‘가장 특징적인 건축양식이지만 경제적 변혁의 영향으로 훼손되기 쉬운 것’, ‘역사적 중요성이나 함축적인 사상, 신념’ 등이다. 비무장지대 일대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요새이자 전쟁박물관이다. 국적을 달리한 19개국 젊은이들의 피와 넋이 묻힌 곳이며 전쟁 후에도 동서냉전의 상징으로 평화를 희구하는 인류에게 다시는 이런 전쟁을 처러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안겨주는 대표적인 ‘부(負)의 유산’이다. 그럼에도 남북 평화 무드와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훼손될 우려가 있는 유산이다. 모든 조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기준에 정확하게 부합된다.

임진강 한탄강에는 용암이 빚어놓은 주상절리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디.

 

■세계유산 준비는 지금부터

문화재청은 이미 2002년부터 한국전쟁이 낳은 흔적들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해왔다. 유엔군 화장터(등록문화재 제408호·연천)와 증기기관차(78호)와 죽음의 다리(79호), 노동당사(22호·철원), 승일교(26호·철원)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별 유산의 지정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남북화해무드가 현실로 이뤄지고 난개발의 유혹이 거세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자연과 역사유적이 공존하는 비무장지대 전체를 ‘유네스코 복합(문화+자연)유산’으로 개념화하고 지금부터 지정의 범위를 논의하고 보존할 곳은 보존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무장지대를 단순한 생태계의 보고(寶庫)로만 여기면 그것이야말로 단견이다.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에 남았던 갈등의 흔적, 즉 거대한 군사요새를 관광하면서 평화를 희구하는 세계인의 모습을 그려보는 ‘평화관광’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경향신문 선임기자 
 

  

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