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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거둘 땅을 빼앗다니…" 1500년전 신라 판결문 뜯어보니 “응? 이거 뭔가 글씨 같은데?” 1988년 3월 20일 경북 울진 죽변면 봉평 2리 마을 이장 권대선씨는 길 옆 개울에 처박혀있던 돌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봐도 돌에 새겨진 문양은 글씨 같았다. 이 돌은 두 달 전인 1월 20일 주두원씨 소유 논에 거꾸로 박혀있다가 포크레인 작업으로 뽑아내어 길옆 개울로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돌의 문양이 글씨라는 것을 확신한 권대선 이장은 즉시 죽변면사무소와 울진군청에 신고했다. 이것이 유명한 울진 봉평비(국보 제 242호)의 발견 이력이다. 이번에 3D 가공 이미지로 판독해본 포항 중성리 비문 글씨. 다양한 각도의 조명에서 찍은 결과 135도, 225도, 315도에서 찍은 사진이 양호했다. 이 사진은 조사각 315도에서 찍은 것이다.|국립경주..
'정선, 김홍도…' 화가적 시선으로 본 조선의 실경산수화 특별전 실경산수화는 실재하는 경치, 즉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폭넓게 칭하는 일반적인 표현. 고려시대 이녕의 와, 작자미상의 , 등이 있다. 조선중기 한강가 독서당에서 열린 계회장면을 그린 (보물 제 867호)와 곡운 김수증(1624~1701)이 강원도 화천의 승경지를 선정해서 사인화가(士人畵家) 조세걸(1636~?)에게 그리게 한 (1682년) 등이 있다. 실경산수화는 주로 실용적 목적에 따라 제작됐다. 겸재 정선의 . 1711년 금강산을 처음 여행하고 제작한 화첩의 한 장면이다. 단발령에서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는 여행자들의 모습을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실경산수화에 사상적인 표현을 가미한 것을 이른바 진경산수화라 한다. 한국의 산천을 화제로 삼았다기 보다는 이런 실경을 다루면서 ..
'보물급 실경산수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재일교포 사업가 경포대와 총석정 등 강원도의 명승지를 그린 16세기 보물급 실경산수화 2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재일교포로 자수성가한 고 윤익성(1922~1996)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 창업주의 유족이 16세기 중반에 제작한 와 2점을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19일 밝혔다.일본에서 구입하여 기증된 16세기 실경산수화 ‘총석정도’. 실경산수화의 전통이 정선(1676~1759) 이전부터 확립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이번에 기증된 와 는 현재 전해지는 강원도 명승지를 그린 그림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특히 16세기 감상용 실경산수화 제작 양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현존작으로 가치가 높다. 두 작품은 16세기 중엽 관동 지방의 빼어난 풍경을 유람하고 난 후 감상을 그린 ..
'고령 만취 운전'으로 사망한 조선의 개국원로공신 “남양백 홍영통이 임금의 탄일에 만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1395년(태조 4년) 10월11일 의 기사다. 기사의 주인공 홍영통(?~1395)은 여말선초의 문신이다. 고려말 공민왕(재위 1351~1374) 연간에 신돈(?~1371)에 의해 감찰대부와 밀직부사를 지냈지만 1371년(고려 공민왕 20년) 주살된 신돈의 당여(같은 패)로 몰려 파직유배됐다. 그러나 나 은 신돈이 정적을 죽이려 할 때 입도 벙긋 못하고 수수방관하던 다른 이들과 달리 ‘죽이면 안된다’고 직언함으로써 여러 사람을 살린 인물로 표현된다. 혜원 신윤복의 . 유흥업소 기생을 차지하기 위한 남성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갓과 양태가 벗어지도록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가운데 웃통 벗고 있는 수염난..
빔프로젝트, 냉난방, 현대식화장실까지…경복궁 흥복전의 변신 “참신해보이기도 하고…좀 생경해보이기도 하고….” 지난 10일 3년3개월의 공사 끝에 사실상 복원을 마무리지은 경복궁 흥복전 안에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개최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올 1월 기존의 궁·능 유적관련부서들을 통폐합해서 새롭게 출범한 궁능유적본부가 흥복전의 복원공사와 4대궁 40개릉의 중장기 발전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옛 모습 그대로의 복원을 금과옥조로 삼았던 기존의 관례였다면 이날처럼 말끔하게 복원된 궁궐 전각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복원을 사실상 끝낸 경복궁 흥복전. 단청공사만 마무리 되지 않았을 뿐 사실상 공사를 끝내고 외부관람이 허용됐다. 흥복전은 지금 백골집(단청을 하지 않은 상태)의 형태이다.|우철훈 선임기자분명히 옛 궁궐, 그것도 조선의 법..
'백세토록 받들어야 할' 한국의 서원 9곳 “백세토록 받들어야 할 47개 사액서원은 놔둬라.”( 1871년 3월20일자)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곳 중 대표적인 9곳이다. 소수서원(경북 영주·1543년·안향)을 비롯해 남계서원(경남 함양·1552년·정여창), 옥산서원(경북 경주·1573년·이언적), 도산서원(경북 안동·1574년·이황), 필암서원(전남 장성·1590년·김인후), 도동서원(대구 달성·1605년·김굉필), 병산서원(경북 안동·1613년·류성룡), 무성서원(전북 정읍·1615년·최치원, 신잠 등), 돈암서원(충남 논산·1634년·김장생) 등이다. 9곳의 서원은 성리학 교육기관의 전형이라는 공통..
'병든 부모 위해 손가락 깨문' 효자의 지석, 북한 화가의 작품 …국립중앙박물관 기증품 면모 “부모가 병들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다”는 내용이 적힌 조선 중기의 인물인 유심(1608~1667)의 묘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국립중앙박물관은 최근 전주 유씨 춘호공파 후손인 유양석씨(92)로부터 전평군 유심의 ‘백자청화묘지’ 5점(1686년작)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박물관측은 이를 포함해서 탕평 정치를 대표하는 송인명(1689~1746년)의 문집인 과 20세기 북한 화가 선우영(1946-2009년)의 등 문화재 6건 19점을 5명의 소장가들로부터 기증받았다고 덧붙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조선 중기의 인물인 유심의 묘지. “부모가 병들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전평군 유심의 유물인 ‘백자청..
사상 첫 해외이민 우리 문화재 '책가도'에 담긴 정조의 숨은 뜻 1만원권 지폐 앞면에 세종대왕의 초상화 뒤에 용비어천가의 ‘뿌리깊은 나무…’ 구절과 함께 심상치 않은 그림이 보인다. 바로 일월오봉도이다. 해와 달, 다섯봉우리, 소나무와 물 등을 그린 일월오봉도는 왕권의 상징이자 군왕의 분신이며 동일체로 여겨져 언제나 조선 임금의 어좌 뒤편에 걸려 있었다. 일월오봉도가 왜 왕관의 상지이자 국왕의 분신이라 했을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연구자들은 중국의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의 ‘천보’라는 시에서 묘사된 9가지 자연현상을 인용한다. 즉 여기에 등장하는 다섯봉오리는 하늘이 내린 왕을 보호하는 물체를 일컬고, 나머지 4개, 즉 해와 달, 소나무, 물 등은 통치자가 자신의 미덕을 발휘하는 법을 보여준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것들이 임금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해외 영구반출이 결정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