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어느 날이었다. 헝가리와 치른 베이징 올림픽 여자핸드볼 3~4위 결정전을, 그것도 녹화중계로 보던 필자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마침 곁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망정이지 남우세스러울뻔 했다. 종료 1분을 남기고 33-28로 승리가 확정적이었을 때였다. 임영철 감독이 작전타임을 불렀다.

“너희들 내가 왜 교체하는 줄 알지.”

1995년 헝가리-오스트리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헝가리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여자핸드볼 선수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당시 한국은 러시아 독일 헝가리 덴마크 헝가리 등을 연파하고 8전승 우승의 신화를 이뤘다.

그러면서 오성옥·오영란·홍정호 등 30대 선수들을 대거 투입했다.

동메달 획득의 순간을 노장 선수들에게 양보하고자 한 것이다. 감독이 이해를 구하자 그때까지 헝가리를 마구 밀어붙이던 젊은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네”하고 화답했다. 그 장면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단언컨대 필자의 눈물은 ‘여성 호르몬의 과다분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불현듯 필자가 현장취재했던 13년 전인 1995년 헝가리-오스트리아 세계선수권대회가 떠올랐다.

임영철 감독이 코치로, 오성옥·오영란·홍정호가 파릇파릇한 선수로 출전했던 대회였다. 필자는 감히 주장하고 싶다.

당시 정형균 감독이 이끌었던 1995 핸드볼 대표팀이 모든 종목을 통틀어 ‘내 생애 최고의 팀’이었다고…. 물론 여자핸드볼팀이 1988서울·92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2연패를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참가 8팀이 5번 싸우고 메달을 딸 수 있는 올림픽에 비해 20팀 참가에 8번 경기를 치러야 하는 세계선수권에서 성적을 내기란 더 힘들다.

그런데 ‘95년팀’은 8전승 우승을 차지했다. 현장에서 목도했던 대표팀은 참 신기했다. 4~6점차로 뒤지고 있다가도 감독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뒤집어놓았다.

6명이 번갈아가며 쉴틈없이 상대방을 엄습하는 대각변칙수비가 무기였다. 핸드볼 강국인 러시아와 독일, 홈팀 헝가리까지 한국팀의 ‘후다닥 작전’에 홀려 대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국제핸드볼연맹의 홈페이지는 핸드볼의 역사를 기술하며 한국여자팀을 극찬했다.

"홈팀 헝가리도 한국의 소용돌이 전법(대각변칙수비)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한국은 여자핸드볼 역사에서 결코 경험하지 못한 하이스피드를 과시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올림픽 2연패와 세계선수권까지 차지한 첫번째 비유럽 국가라는 이정표를 만들었다”고도 덧붙였다.

‘95년 멤버’가 그대로 출전한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덴마크와의 연장 명승부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국제연맹은 이렇게 평가했다.

“센세이셔널한 승부는 역사상 최고의 결승전 중 하나였다. 여자경기에 표가 매진됐다. 핸드볼이 매력과 경쟁력이 넘치는 올림픽 종목임을 각인시켰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덴마크와 2차 연장 및 승부던지기 접전 끝에 은메달을 차지했다.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이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어떠했는가. 7점이나 앞섰던 러시아전을 필두로, 프랑스와 스웨덴전에서 모두 역전패 당하며 예선탈락했다.

필자가 아는 ‘우생순’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최태원 대한핸드볼협회장(SK그룹 회장)은 “너무 승패에 집착하지 말고 핸드볼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선수들을 격려했다.

최회장의 언급은 메달보다는 경기를 즐기려는 요즘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촌스럽게 메달색깔로 애국의 순위를 가리는 세상은 지났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언론이 어떤 종목, 어떤 선수의 부진을 문제삼아 지적할라치면 ‘지고 싶어서 졌겠냐’ ‘그렇게 잘났으면 네가 한번 해보라’는 등의 역풍을 맞는다.

과연 “올림픽은 승부보다는 참가에 의의가 있고,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라던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언급은 천고의 명언이다.

그러나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라는 올림픽 표어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선의의 경쟁’을 강조한 언급이다.

게다가 국가대표는 시민의 세금으로 훈련하는, ‘직업이 운동인’ 선수들이다. 동호인이 아닌 이상 ‘즐기기 위한 운동’은 없다. 성적을 내고 메달을 따려고 땀을 흘리고, 그 결과에 책임도 져야 한다.

‘우생순’의 예를 보자. 모두들 골키퍼 오영란(44)의 노장투혼에 박수를 쳤지만 통계를 보면 달라진다.

오영란의 방어율은 출전 골키퍼 중 공동 16위(28%)에 그쳤다. 2004(37%·9위)·2008(36%·7위)의 활약에 견줄 수 없는 성적이다. 메달권에 드는 팀의 골키퍼 성적은 방어율 35% 정도는 돼야 한다. 

오영란의 잘못이 아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44살 노장을 복귀시켰을까.

분명 세대교체의 실패요, 지도자와 협회의 잘못이다. 또 역전승의 명수였던 우생순이 왜 갑자기 역전패의 희생양으로 전락했을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우승멤버의 평균연령이 20.3세였다. 그 때의 주축멤버인 임오경·오성옥·홍정호 등은 2004 아테네와 2008 베이징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그 약발이 다 떨어졌고, 급기야 44살 노장까지 불러야 했으니 우생순의 신화는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 사이 무엇을 했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패인을 분석하며 와신상담해야 한다.

핸드볼 뿐이 아니다. 사상 처음으로 ‘노메달’로 전락한 탁구는 어떤가. 정영식(24)을 키워야 하는 것이 그나마 소득이라 한다. 그러나 한때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한국 탁구가 24살 정영식에게만 올인해야 한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단식금메달을 딴 유승민의 나이가 22살이었는데?

이에리사·현정화·유남규·김택수 등 세계적인 스타를 배출한 탁구계로서는 낯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도와 레슬링, 하키, 배드민턴 등도 나름대로 몰락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우생순’ 신화의 핵심은 금메달이 아니다. 2008 베이징에서 동메달을 따고도 필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은 딱 한가지였다.

선수들이 스포츠를 통해 전하는 감동의 스토리텔링이었다. 신체조건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전술적으로, 정신적으로 극복해내는 각본없는 드라마가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다.

만약 아무런 이야깃거리를 만들지 못한다면 신화는 그저 희미한 옛 이야기로 전락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승부보다는 즐기는 스포츠여야 한다’고 박수치는 관객들의 격려가 쏟아진다.

그러나 재미도, 감동도 없어진 드라마는 결국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

관객이 떠나면 텅빈 무대에 남는 것은 선수들 뿐이다. ‘즐겼으면 됐다’는 주변의 다독거림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필자는 ‘우생순’이 다시 일어서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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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