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3000년도 넘은 속담입니다. ‘여자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핑계입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어땠습니까. 최초의 여성지도자인 선덕여왕을 두고 “아녀자가 정치를 하다니,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라고 비난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당장 파면당해도 시원치않을 지독한 ‘여혐발언’입니다. 그러나 김부식은 옛날 남자라 칩시다. 요즘도 걸핏하면 ‘여자탓’하고, 툭하면 ‘여자가~’하는 못난 남자들이 곧잘 보입니다. 
최근들어 브렉시트 후유증과 글로벌 경제 침체, 테러 다발 등 혼란에 빠진 지구촌을 지켜낼 구원투수들이 등장했다는 기사가 봇물을 이룹니다. 그 구원투수들은 바로 여성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어지럽힌 쓰레기는 여자나 나서서 치운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여전히 여자니 남자니 하는 편가르기의 속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성이 어지러운 세상을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90회 주제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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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원로배우의 유행어 중에 ‘못난~놈’이 있다.

톡 까놓고 ‘불알 두 쪽 값’도 못하는 사내를 가리키는 말이리라. 필자가 내내 들여다보는 역사서에도 사내들의 ‘못난 짓’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여인의 눈길 한 번에 성이 기울고, 눈길 두 번에 나라가 기운다(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한서> ‘이부인전’)는, 그 유명한 경국지색(頃國之色)의 고사가 대표적이다. 나라가 망한 책임을 걸핏하면 ‘경국지색’으로 돌렸던 ‘못난 사내’들의 사례는 필설로 다할 수 없다.

 

인도인들이 지난 2013년 작고한 마거릿 대처의 얼굴조각상에 헌화하고 있다. 대처는 '철의 여인'으로 일컬어지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중국 주 무왕이 무도한 은(상)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을 정벌하면서 던진 출사표는 가히 허무개그라 할 수 있다.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이 망한다(牝鷄之晨 惟家之索)”(<사기> ‘주본기’)는 것이었다.

무슨 뜬금없는 암탉 이야기인가. 즉 주왕이 부인(달기)을 위해 주지육림을 만들어 퇴폐행위를 일삼고 충신들을 잔인하게 죽여 망국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라를 망친 장본인(주왕)을 두고, 애꿎은 여인(달기)의 꼬임 탓으로 돌린 것이다. 서주(유왕·포사), 오(부차·서시), 당(현종·양귀비) 등도 바로 언필칭 여자 때문에 망했다는 왕조들이다.

하기야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도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 낮았다면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했으니 중국이나 서양이나 도긴개긴이다. 굳이 남의 나라에서 찾을 것도 없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의 언급은 점입가경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풀텍스트로 들어보자.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하다.(男尊而女卑) 어찌 아녀자가 안방을 뛰쳐나와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여자를 왕으로 세웠으니 참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國之不亡幸也)”(<삼국사기> ‘신라본기·선덕여왕조’)
최초의 여성지도자인 신라 선덕여왕의 시대를 이렇게 폄훼한 것이다. 시공을 뛰어넘는 ‘여혐’의 극치다. 다른 이도 아니고 공자까지 나서 “여자와 소인은 가까이 하면 버릇없이 굴고, 멀리하면 원망하기 때문(近之則不遜 遠之則怨)에 길들이기 힘들다”(<논어> ‘양화’)고 했으니 좀 당황스럽기는 하다.

훗날 루쉰(魯迅·1881~1936)이 “공자가 언급한 여자 속에 그의 어머니도 있을까”하고 비아냥 댈 정도였다.

새 영국총리로 확정된 테리사 메이. 브렉시트 후유증을 최소화시킬 구원투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백번 양보해서 공자나 김부식, 주 무왕 등은 옛날 사람들이라 치자. 세계 60여개국에서 여성총리나 대통령을 배출했다는 지금도 별반 다를바 없다.
1976년 구 소련의 저널리스트 유리 가브릴로프가 국방부 기관지 ‘크라스나야 즈베즈다’(붉은 별)에 영국의 마거릿 대처 보수당 대표를 ‘철의 여인’으로 표현했다.

소련의 패권주의를 강력 비난한 것을 두고 ‘철의 여인이 경적을 울렸다(The Iron Lady Sounds the Alarm)’고 되받아친 것이다. ‘독일의 ‘철혈재상(Iron Chancellor)’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빗댄 나쁜 수식어였다. 그 후 별의 별 ‘~여인’들이 다 등장한다.

티타늄 여인(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 콘크리트 여인(폴린 마로아 전 퀘벡주 총리), 구리 여인(마누엘라 레이테 전 포르투갈 사민당 대표)까지…. ‘강인한’이라는 뜻도 분명 들어있지만 왠지 ‘여자답지 않은 고집센 여자가~’라는 냉소적인 냄새가 풍기는 수식어들이다.

최근 영국 보수당의 중진 켄 클라크 의원의 언급도 웃긴다.

“(테리사 메이 신임총리는) 지독하게 골치아픈 여자(bloody difficult woman)야. 그러나 우린 대처 하고도 일했잖아.”

물론 클라크 자신이 메이를 지지한 인물이고, 스카이뉴스 방송녹음 중인 것을 모른채 내뱉은 농담성 칭찬이라고 했다. 하지만 누가봐도 ‘그렇게 다루기 힘든 (마가릿) 대처까지 겪어본 남자들인데 메이 쯤이야’라고 읽히는 흰소리를 누가 좋다고 하겠는가.

 

그 뿐이 아니다. 언론은 메이의 정치적 능력과 식견을 논하기에 앞서 갑자기 ‘영국의 이멜다’란 생뚱맞은 수식어를 붙인다. 필리핀의 이멜다 마르코스처럼 구두수집광이라는 것이다. 표범무늬 구두와 꽃무늬 오버코드로 치장한 ‘패션의 여왕’이라는 점도 부각시킨다.

또 메이를 언급할 때마다 ‘메르켈의 길을 갈거냐 대처의 길을 갈거냐’에 관심을 쏟는다. 여성인 지도자들도 각자 나름의 개성과 정책을 갖고 있을 텐데 그저 여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비교·평가하려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영국의 여성평등당 소니 워커 대표는 “정책보다 젠더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에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다.

아이슬란드 최초의 여성총리인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글로벌경제 위기에 빠진 아이슬란드를 구해낸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점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영국 및 독일총리와 차기 미국 대통령 및 유엔 사무총장까지 여성으로 채워졌거나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브렉시트와 글로벌 경제위기, 테러 등 지구촌의 난제들을 해결할 ‘여성인’ 지도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바지입고 가죽장갑을 낀 포스트모던 엘렉트라(그리스 여신)들이 남성들이 만든 쓰레기를 말끔히 치울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더 협력적인 여성의 따뜻함이 혼란기엔 적격이라는 말이다.

2009년 만신창이가 된 아이슬란드의 첫 여성총리로 등장한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는 잉기뵈리 하랄즈도티르 시인의 싯귀를 떠올렸다.

“…언제나 여성들이 다가와 테이블을 치우고 바닥을 청소하며 창문을 열어 담배연기를 빼낸다.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가만 돌이켜보면 중국 한나라의 여태후와 당나라 및 대주의 측천무후는 궁중에서 가혹한 권력을 휘두른 것으로 악명높다. 그러나 위대한 역사가들인 사마천과 사마광은 두 여인에게 찬사를 보냈다.

“천하가 안락해서 백성들이 농삿일에 힘쓰니 의식이 나날이 풍족해졌으며”(여태후), “상벌을 평행하면서 천하를 다스려 유능한 인재가 쓰였다”(측천무후)는 것이다.

두 역사가는 남자가 어떠니 여자가 어떠니 하는 ‘못난 평가’가 아니라 오로지 백성의 삶에만 초점을 맞춘 ‘당연한 평가’를 내린 것이다. 이것이 요즘과 같은 미증유의 혼란기에 구원투수로 대거 등장한 여성 정치시대의 관전법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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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기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