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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구르칸 용병과 북미정상회담

2010년 9월 인도-네팔행 기차에서 ‘40대 1’의 격투가 벌어진다.

퇴역 군인(당시 35살)이 총칼로 무장한 떼강도 40명과 활극을 벌인 것이다. 처음엔 그저 푼돈이나 뜯어가는 좀도둑떼이겠거니 하고 참고 지켜보았다.

그러나 강도 두목이 18살 소녀를 부모 앞에서 강간하려고 하자 분연히 일어섰다.

품에서 휘어진 칼 한자루를 뽑아든 퇴역군인은 순식간에 두목을 포함 3명을 죽이고 8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나머지 강도는 줄행랑치고 말았다. 이 퇴역군인은 전설적인 ‘구르카 용병’ 출신이었다.
구르카 용병의 역사는 뿌리깊다.

1816년 영국-네팔 전쟁에서 적군이었던 몽골계 구르카 부족 전사의 용맹을 높이 산 영국이 포로 일부를 동인도회사의 사병으로 편입한 것에서 시작됐다.

넘치는 폐활량 덕분에 지구력이 뛰어나고, 터프하며, 명령에 잘 복종하고, 다른 부대원들과도 식구처럼 지내는게 장점이었다. “비겁자가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구르칸 용병의 모토는 유명하다.

특히 퇴역군인이 40대1의 격투에서 사용한 칼(쿠크리·사진) 또한 인구에 회자된다. 구르카 용병들은 칼을 뽑았으면 반드시 피맛을 봐야 한다고 믿는다.

만약 적군의 피를 묻히지 못하면 자신의 살이라도 베어 피를 낸 연후에야 칼집에 도로 꽂을 수 있다는 것이다. 1·2차 대전에서만 4만3000명이 전사했을만큼 불굴의 용맹을 떨쳤다.

2차대전 때 영국군 장교가 구르카 용병의 무공을 의심하자 곧바로 적군의 귀를 한가득 담은 바구니를 보여줬다느니, 태평양 전쟁 때 구르카 용병 한 사람이 일본군 참호에서 24명을 전멸시켰다느니, 포틀랜드 전쟁 때 ‘구르카 용병이 쳐들어온다’는 말 한마디에 아르헨티나 군인들이 혼비백산하고 줄행랑 쳤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요즘도 선발시험 자체가 엽기적이라 할만큼 혹독하다.

해마다 200명을 선발하는 영국군의 경우 네팔 고지대 청년 2만8000명 가량이 지원한다. 18~19세 사이가 대부분인 지원자들은 70파운드(32㎏)의 돌멩이를 담은 바구니를 매고 가파른 산길 6㎞를 40분 안에 주파해야 한다. 합격되려면 최소한 30분대는 끊어야 한다.
영국과 인도는 물론 싱가포르에서도 약 1800명 가량의 구르칸 용병이 경찰병력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이 12일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의 보안·경호작전에 대거 투입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모쪼록 세계평화의 길에 들어설 북미 정상의 발걸음을 지켜주는 이름 그대로 역대 최강의 용병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