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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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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성화, 평창의 성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주신(主神) 제우스가 감춰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준 이가 프로메테우스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매일 간을 쪼여먹히는 형벌을 받았지만 인간은 덕분에 문명의 세상을 밝혔다. 그리스인들은 인간문명의 길을 열어준 불을 신성시해서 올림피아의 성역 곳곳에 피워놓았다. 고대 올림픽 기간 중에는 제우스와 헤라 신전 등에 불을 더 밝혔다. 이것이 성화의 기원이다. 신들의 제전이던 올림픽을 위한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근대올림픽이 시작되자 성화 의식은 재개됐다. 하지만 1936년 나치 치하의 베를린 올림픽 때 사달이 일어났다. 고대 그리스와 아리안족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달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성화봉송식. 나치는 그리스~베를린 사이 7개국 3000여킬로미터의 길을 성화봉송로로 ..
kg은 왜 옷에 묻은 얼룩이 되었을까 “질량(㎏)은 옷에 묻은 얼룩 같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국제단위계는 길이(m), 질량(㎏), 시간(s), 전류(A), 온도(K), 광도(cd), 물질량(mol) 등 7개다. 그런데 무결점을 추구하는 과학계의 입장에서 가장 주먹구구식으로 통용되는 단위가 질량(㎏)이다. 예컨대 빛이 진공에서 2억9979만 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길이를 ‘1m’로 정의한 것처럼 다른 6개 단위는 불변의 물리적 원리를 바탕으로 정의됐다. 그러나 ㎏ 단위는 130년 가까이 임의 기준이 통용돼왔다. 1889년 처음 제작되어 프랑스에 보관중인 kg원기. 시간이 흐르면서 질량의 차이가 나타났다고 한다.|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19세기 과학자들은 1기압 섭씨 4도의 순수한 물 1ℓ를 ㎏으로 정의했다. 과학자들은 18..
레이건의 DMZ와 트럼프의 DMZ 1952년 12월 2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한국을 극비 방문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처음에는 방문 사실을 몰랐다. 여의도 비행장에 아이젠하워를 태운 군용기가 내렸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다. 아이젠하워의 잠행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대통령 선거 때 내건 ‘한국전쟁의 휴전과 전방부대 시찰’ 공약의 실천이었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 12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중동부 전선인 지형고지와 수도고지를 방문했다. 북진통일과 휴전반대를 줄기차게 외치던 이 대통령을 굳이 만날 이유가 없었다. 아이젠하워는 중동부 전선인 수도고지와 지형능선을 관할하는 최전방부대를 방문했다.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와 하얀 눈이 뒤덮은 고지를 망원경으로 바라보며 아이젠하워는 휴전의 의지를 다..
우리 개는 '다' 물어요 19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불베이팅(bull baiting)’이라는 오락이 있었다. 이름하여 ‘소 골리기’인데, 경기내용은 자못 잔인하다. 먼저 기운 센 황소를 반경 30피트(9.14m) 정도만 움직일 수 있도록 말뚝에 묶어두고 소의 코에 잔뜩 고춧가루를 묻힌다. 날뛰기 시작한 황소는 달려드는 개들을 뿔로 치받거나 마구 흔들어 내동댕이친다. 이 오락은 개가 소의 코를 꽉 물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된다. 왜 불베이팅에 ‘참전한’ 영국산 개에 ‘불도그(블독·bulldog)’란 이름이 붙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단순한 오락은 아니었다. 1908년 오스트리아 자허 호텔을 운영했던 안나 자허 (1859~1930)가 두 마리 프렌치 불독을 애완견으로 키우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당대 영국에서..
실미도 부대원의 절규…"높은 사람 만나고 싶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살벌했던 해가 바로 1968년일 것이다. 1월21일 북한 124군 소속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했고, 이틀 뒤인 23일엔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납치됐다. 1월30일 북베트남 게릴라의 ‘구정공세’가 펼쳐졌고, 10월30일부터는 울진·삼척 지역에 북한의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했다. "높은 사람 좀 만나고 싶다"고 실미도를 탈출해서 중앙청 진입을 시도한 실미도 부대원들. 결국 자폭하고 말았다.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가 전쟁의 공포에 휩싸인 한 해였다. 특히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새해 벽두부터 청와대 코앞까지 달려와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다”고 외친 이른바 1·21사태는 박정희 정권을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그해 4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주도 아래 ..
몰락한 '우생순 신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08년 8월 어느 날이었다. 헝가리와 치른 베이징 올림픽 여자핸드볼 3~4위 결정전을, 그것도 녹화중계로 보던 필자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마침 곁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망정이지 남우세스러울뻔 했다. 종료 1분을 남기고 33-28로 승리가 확정적이었을 때였다. 임영철 감독이 작전타임을 불렀다. “너희들 내가 왜 교체하는 줄 알지.” 1995년 헝가리-오스트리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헝가리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여자핸드볼 선수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당시 한국은 러시아 독일 헝가리 덴마크 헝가리 등을 연파하고 8전승 우승의 신화를 이뤘다. 그러면서 오성옥·오영란·홍정호 등 30대 선수들을 대거 투입했다. 동메달 획득의 순간을 노장 선수들에게 양보하고자 한 것이다. 감독이 이해를 구하자 그때까..
4등은 없다. 그대는 세계 4강이다. 이규혁·남수일·김해남·유인호·이종섭(이상 역도), 최윤칠·이창훈(이상 마라톤), 이상균·원봉욱(이상 레슬링)…. 1948년 런던 올림픽부터 64년 도쿄 올림픽까지 뛰었던 선수들이다. 이 분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한 선수들이다. 그 뿐이 아니다. 동계올림픽까지 통틀어 73개 세부종목 선수들이 올림픽 4위 리스트에 올라있다. 이 가운데 평안도 영변 출신이었던 김해남 선수의 경우는 성적에 관한 한 특히 한스러웠다 할 수 있다. 1950~60년대를 주름잡은 역도스타였던 김해남은 헬싱키(52년)~도쿄(64년)까지 무려 4회 연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하고 아쉬운 표정을 짓던 임정화 선수. 그러나 당시 은메달을 땄던 터키 선수의 금지약..
여성들은 언제나 남자가 버린 쓰레기를 치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3000년도 넘은 속담입니다. ‘여자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핑계입니다. 를 쓴 김부식은 어땠습니까. 최초의 여성지도자인 선덕여왕을 두고 “아녀자가 정치를 하다니,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라고 비난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당장 파면당해도 시원치않을 지독한 ‘여혐발언’입니다. 그러나 김부식은 옛날 남자라 칩시다. 요즘도 걸핏하면 ‘여자탓’하고, 툭하면 ‘여자가~’하는 못난 남자들이 곧잘 보입니다. 최근들어 브렉시트 후유증과 글로벌 경제 침체, 테러 다발 등 혼란에 빠진 지구촌을 지켜낼 구원투수들이 등장했다는 기사가 봇물을 이룹니다. 그 구원투수들은 바로 여성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어지럽힌 쓰레기는 여자나 나서서 치운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