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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 캐스트-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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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 관리에서 홍어장수까지…조선판 '하멜표류기' 남긴 사람들 지난 2월초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의 특별전(‘ㄱ의 순간’)을 보던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이 한 점 있었다. ‘조선인일본표착서화’(배가 조난당해 일본에 표착한 조선인을 그린 그림과 글씨)’라는 그림이었다. 일본 후쿠오카(福岡)의 개인사업가가 소장한 작품이 대여전시된 것이다. 이 작품이 특별전에 출품된 사연이 있다. 대학(평택대)의 일본어과에 재학중이던 학생(장윤화씨)이 일본에 머물던 친구에게서 작품의 존재를 알고서 서예박물관에 연락했다. 마침 특별전을 준비중이던 서예박물관측이 수소문 끝에 후쿠오카(福岡)의 개인사업가가 소장한 작품의 대여전시를 성사시켰다. ■표류민 초상화에 쓰여진 한글 흘림체 이 그림은 1819년(순조 19년) 1월7일 강원도 평해(지금 경북 울진)에서 멸치와 담배를 싣고 출항했다가..
하룻밤 사이에 수습한 무령왕릉…왜 최악의 졸속발굴이었나 올해는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이기도 하고, 백제가 웅진천도 이후 다시 강국이 됐다는 이른바 갱위강국을 선포한지 1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공주시와 문화재청이 올해 내내 갖가지 행사를 펼쳐진다고 합니다. 축하받아야 마땅하겠네요. 그러나 고대사의 블랙박스를 열었다는 무령왕릉 발굴은 최악의 졸속 발굴이었다는 비판도 받는데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에서 알아봅니다. 문=무령왕릉 발굴의 의미를 말하자면? 답=무엇보다 “내가 이 무덤의 주인공인 무령왕이요”하고 선언한 명문이 나왔으니까요. 삼국시대 고분 중에 이렇게 주인공을 알 수 있는 고분이 나온 건 처음입니다. 그러니까 이 무덤에서 나온 모든 유물은 연대가 분명하니까 삼국시대 유물의 연대를 편년하는 기준자료가 되었죠. 그래서 ..
사라진 송산리 29호분, 일인 교사 '도굴’ 88년 만에 발굴하는 이유 왜 하필 29호분일까. 최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웅진 백제 시기(475~538년) 왕릉의 구조와 상장례를 규명한다면서 첫번째로 지목해서 발굴 조사하는 고분이 바로 송산리 29호분이다. 송산리 고분군(사적 13호)은 웅진백제 시기 조성된 왕릉묘역이다. 그때의 임금이라면 문주왕(재위 475~477)-삼근왕(477~479)-동성왕(479~501)-무령왕(501~523)-성왕(523~554, 538년 사비로 천도) 등 5명이다. 일제강점기 자료를 종합하면 송산리에 29기 이상의 고분이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29호분의 정체 2019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지표조사와 지하물리탐사 등의 첨단기법으로 분석해보니 자그만치 40여기의 백제고분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현재는 주인공이 밝혀진 무령왕..
내시도 궁궐 현판을 썼다…일제강점기 훼철된 385점 제자리 찾아보니 조선 왕비의 침전을 교태전(交泰殿)이라 했다. 경복궁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궁전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좀 얄궂지 않은가. 남편(임금)의 사랑을 얻으려는 왕비가 교태(嬌態)를 부리는 침실이라는 것인가.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교태(交泰)’는 에서 하늘과 땅의 사귐, 즉 양과 음의 조화를 상징한다. 임금과 왕비가 후사를 생산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교태전이라 한 것이다. 1395년(태조 4년) 태조는 서울에 새 궁궐을 짓고 대대적인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 술이 거나하게 취한 태조가 정도전(1342~1398)에게 “새 궁궐의 이름을 지으라”고 명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구절을 외웠다. “(임금의) 술대접에 취하고 임금의 덕에 배부르니 후왕의 앞날에 큰 복(경복·景福)을 받게 할 것입니다.” ■왕비 침전..
'조선의 타임캡슐' 미라는 문화재인가 그저 무연고 시신일뿐인가 ‘혹시 암이 아닐까.’ 2002년 9월 경기 파주 교하의 파평 윤씨 묘역 중 무연고 묘에서 나온 미라의 옆구리 쪽을 살피던 김한겸 교수(고려대 의대)팀의 심장이 떨렸다. 미라의 홑바지 옷고름에 있는 글씨로 보아 ‘병인년윤시월’(1566년 윤 10월)에 묻힌 여인으로 추정됐다. 436년이 지났는데도 피부의 탄력이 살아있었다. 아직 인체에 수분이 남아있다는 증거였다. ■모자 미라의 충격 무엇보다 김교수가 경악한 것은 심하게 부풀어오른 옆구리였다. 이것이 수백년전 사망한 여인의 암덩어리라면 어떨까. ‘암 연구’에 획기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 떨리는 심정으로 미라의 X레이 사진을 찍어보았다. 그랬더니 판독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부풀어 오른 복강과 골반강 안에서 태아의 골격이 보이고 있었다. 암 덩어..
‘4㎜의 반전매력’…1500년간 ‘흠결’ 숨긴 78호 반가사유상 “세상사가 힘들 때 찾아와 영혼까지 치유받고 간다”는 문화유산이 있다.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다. ‘반가사유’는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채 생각에 잠긴 자세를 가리킨다. 출가 전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고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부처의 출가전 이름) 태자를 조각한 상에서 유래했다. 6~7세기에 유행한 반가사유상은 30여 구 남아있는데, 그중 국보 78호와 83호가 으뜸이다. ■78호보다 83호? 물론 문화재, 그것도 국보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그래도 피어나오는 객쩍은 질문 하나가 있다. 78호와 83호 중 딱 한 점을 꼽으라면 어떨까. 대체로는 78호보다는 83호를 선호할 것 같다. 무엇보다 83호가 일본의 국보 1호(조각부문)인 일본 고류지(광륭사·廣隆寺..
숭례문, 교과서와 공문서에서 ‘국보 1호’ 꼬리 60년만에 뗀다 국보 1호 숭례문, 보물 1호 흥인지문, 사적 1호 포석정…. 문화재의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은 문화재 지정번호 제도가 60년 만에 개선된다. 기존의 지정번호는 ‘내부관리용’으로만 활용된다. 이에따라 각종 고문서와 교과서 등에서 ‘국보 1호 숭례문’은 ‘국보 숭례문’으로, 보물 1호 흥인지문은 ‘보물 흥인지문’으로, 사적 1호 포석정은 ‘사적 포석정’으로 표현이 바뀐다. 문화재청은 최근 문화재 지정번호의 개선을 골자로 한 올해 주요업무계획을 발표했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문화재 지정번호로 문화재가 서열화되고 있는 일부 인식을 개선하고자 관리번호로 운영하고, 비지정문화재까지 포함한 보호체계를 새롭게 마련할 방침”이라고 배경을 밝혔다. 개선안에 따르면 문화재 지정번호는 완전 폐지되지는 않는다. 문화..
백제의 '리즈' 시절을 웅변하는 석촌동 고분…100m 연접분의 정체는 “어, 이거 웬 구멍이야?” 2015년 5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고분군(사적 243호)을 관리하던 이가 이른바 석촌동 1호분의 북쪽 잔디광장에서 직경 25㎝의 동공을 발견했다. 순간 머리카락이 바싹 섰다. 고분군 밑으로 백제고분로 지하차도가 관통하고 있는데다 그 밑에서는 지하철 9호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굴 가능성 뿐 아니라 당시 석촌호수 주변에서 심심찮게 나타나던 싱크홀일 수도 있었다. ■100m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접분 한성백제박물관 조사팀의 시굴 결과 동공은 지하수 확보를 위해 팠다가 사적공원 지정 후 폐기된 우물터가 함몰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조사과정에서 의미심장한 현상을 목격했다. 관정 벽면에서 인위적인 석축열과 점토성토층이 드러난 것이다. 본격 발굴하자 깜짝 놀랄만한 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