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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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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피난처, 북한산성에 왜 금괴 매장설이 퍼졌을까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는 포인트가 있다. 도심에서 걸어서 오를 수 있는 산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산을 등지고 강을 마주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리에 터전을 잡고 살았던 전통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100여 년 전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도 ‘도심 지척의 산’이 그렇게 신기했나보다. “경성에서 서양인의 피크닉이라 하면 대개 북한산이 통념으로 되어 있었다…지게꾼들을 데려와서 말과 대나무 가마로 간다.”(, 1934) 1894년 7월 관립법어(프랑스어)학교 교장으로 내한한 에밀 마르텔(1874~1949)의 회고이다. 대한제국 시절 궁내부 찬의관을 지낸 윌리엄 샌즈(1874~1946)는 한술 더 뜬다. “한국땅을 벗어나 휴일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시의 옛 궁궐..
'744살 청와대 주목', 가소롭게 바라봤을 영욕의 역사 대통령경호처의 임무는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그 가족의 경호업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이 틈을 내어 펴낸 책이 두 권이 있으니 그것이 (2007년 초판·2019년 증보판)과 (2019년)이다. 청와대와 그 주변이 어떤 곳인가. 1968년 북한 특수부대의 습격사건(1·21사태) 이후 청와대 앞길을 물론 인왕산과 북악산의 통행도 철저히 통제됐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부터 인왕산과 북악산, 청와대 앞길 등의 통행이 허용되고, 개방의 폭도 점차 확대됐다. 요즘은 매주 화요일~금요일, 둘째·넷째 주 토요일(공휴일 제외)에 청와대 내부관람(총 1시간 30분)까지 가능해졌다. 북악산도 2006년 성곽로에 이어, 2020년 북측 둘레길까지 개방되더니 이 기사가 신문지면을 탄 5일 오후 청와대 뒤쪽 북악산 남측..
"일러줄거야. 네 남편에게"…<청구영언>의 19금 노래가 보물 됐네 “○○○는 노래로 당세에 이름이 났지만 속되지 않았다. 얼굴빛이 희고 수염은 창처럼 뾰족했다. 어릴 때부터 300편을 줄줄 외었다.”() ○○○는 과연 누구이기에 ‘꽃미남’이고, 시 300편을 줄줄 외울 정도로 ‘뇌섹남’이었으며, 수준 높은 노래를 불렀을까. “남파 김백함은 노래로 나라 안에 이름이 났다. 성률(리듬)에 정통하고 문예도 닦아 새로운 노랫말을 지어 여항인(중인)들에게 익히게 했다. (보컬)김백함과 (거문고 연주자) 전만제가 찾아와 음악을 들려주니 내 가슴 속에 맺힌 마음의 병까지 모두 치유됐다. 그 음악은 귀신을 감동시키고 화기(和氣)를 일으킨다.”( ‘서문’) 남파 김백함은 또 누구인가. 이 언급에 따르면 ‘싱어송라이터’이자 ‘국민가수’이면서 ‘힐링뮤지션’이 아닌가. ■꽃미남, 뇌섹남, ..
1500년전 몽촌토성 '로터리' 연못…'고구려 남침'의 블랙박스 열리나 “이건 로타리(회전교차로) 같은데….” 지난 2016년 몽촌토성의 북문터를 발굴하던 조사단(한성백제박물관)은 재미있는 도로유구를 확인하게 된다. ‘평평한’ 대지를 가운데 두고 삼국시대에 조성된 포장도로(노면 폭 10m)가 빙 둘러 돌아가고 있었다. 이 도로는 북쪽으로 700m 떨어진 풍납토성과 이어지고 있었다. 는 “475년, 장수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백제의 도성(북성)을 7일 만에 빼앗고 (개로왕이 몸을 피한) ‘남성’을 공격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에 등장하는 북성이 풍납토성이고, 남성이 몽촌토성임을 암시하는 자료가 바로 몽촌-풍납을 잇는 도로였던 것이다. ■1500년전 회전교차로(로터리) 확인 조사단은 처음 보는 로터리형 도로가 신기했다. 한가운데 조성된 평탄지는 요즘 로터리에 조성해놓은 잔디밭 ..
설날 광화문에 황금갑옷 장군 그림을 붙인 이유는? 설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문배도가 걸렸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이 지난 26일 광화문에서 2022년 경복궁 광화문 문배도 공개행사를 열었다. “황금 갑옷의 두 장군의 길이가 한 길이 넘는데, 하나는 도끼를 들었고, 하나는 절을 들었다. 그것을 궁문의 양쪽에 붙인다. 이것을 문배(門排)라고 한다.”() 이 문배도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1881~82년(고종 18~19년) 무렵 경복궁 대문인 광화문에 붙였던 ‘황금 갑옷 장군(금갑장군) 문배도’를 찍은 사진을 토대로 미국에서 발굴했다. 140년 전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내부를 찍은 사진 속 사진을 단서로 끈질기에 추적한 결과 찾아낸 것이다. ‘문배’(門排)는 정월 초하루 궁궐 정문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의미로 그림을 붙이는 ..
사형수가 넘쳐났던 세종 시대의 감옥…성군의 치세에 무슨 일이? ‘3m 가량의 높은 담장에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옥사….’ 얼마 전에 조선시대 감옥을 주제로 한 논문이 발표됐다. 이은석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 54호 4권)에 발표한 논문(‘조선시대 지방 옥 구조에 관한 고찰’)이다. 발굴유적과 고지도를 비교분석한 논문인데, 그중 감옥의 형태가 원형이고, 남녀 옥사가 구분된 구조라는 것이 필자의 눈길이 쏠렸다. 우선 ‘원형감옥’ 이야기를 해보자. ■감옥은 왜 원형으로 지었을까 지금까지의 발굴과 고지도, 사진 등을 통해 분석한 조선시대 감옥은 모두 원형 감옥이었다. 조선시대 원형 감옥이 표시된 고지도는 109곳 146매에 달한다. 1914년까지 유지된 공주옥의 옛사진을 봐도 원형감옥이다. 또 1997년 발굴된 경주옥도, 2003~2004..
일제는 조선 임금들의 탯줄까지 일장기로 덮어놓았다 조선왕릉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2009년 왕과 왕비 무덤 44기 중 40기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왜 4기는 빠졌을까. 제릉(태조 이성계의 정비 신의왕후릉)과 후릉(2대 정종과 정안왕후릉)은 북한 땅에 있으니 뭐 그렇다치자. 연산군(1494~1506)과 광해군(1608~1623)의 무덤도 제외됐다. ‘왕릉’이 아니라 ‘묘’이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등재명칭이 ‘조선왕릉’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묘’는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산군과 광해군은 만 12~15년간 조선을 다스린 임금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폐위됐지만 그것은 조선 왕조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까지 ‘왕릉’이 아니라 ‘묘’라는 딱지를 그대로 붙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자격을 얻지 못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
바둑 잘두는 신라공주가 중국의 기성 '마랑'을 만났다면… 황남대총은 신라의 왕과 왕비, 왕·귀족이 묻혀있는 경주 대릉원에서도 초대형 고분에 속한다. 표주박 모양으로 조성된 이 고분은 내물(356~402) 혹은 눌지마립간(417~457) 부부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분이 왕(마립간), 북분이 왕비 무덤으로 보인다. 1973~75년 대대적인 발굴 결과 금관과 금동관 등 7만 여 점의 유물이 쏟아졌다. 그런데 1993~94년 황남대총(남분) 보고서를 쓰던 이은석 당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의 눈에 유독 밟히는 유물이 있었다. 주인공(60대 남성)이 묻힌 주곽(으뜸덧널)에 딸린 부장품 공간의 청동시루에서 출토된 칠기 2점이었다. 이중 1점(남분)의 바닥에서 확인된 ‘마랑(馬朗)’이라는 붉은 글씨가 심상치 않았다. ■‘마랑’이 누구인가 ‘마랑’은 과연 무엇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