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통일신라·고려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경주의 우물에 어린아이들이 빠져죽었을까. 통일신라 어린이는 인간제사의 희생물이었다지만 고려시대 성인 1명과 세아이의 죽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부지에서는 8~9세기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통일신라시대 우물이 확인됐다.
경주 ‘동궁 및 월지’ 유적의 우물에서 확인된 인골 4구. 30대 후반 남성과 8세 전후의 어린이, 3세 전후의 유아, 6개월 전후의 영아 등이 묻혔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우물을 들여다본 발굴단은 깜짝 놀랐다. 깊이 12m 가량의 우물 바닥에 거꾸로 쳐박힌채로 확인된 것이다. 고인골 전문가인 김재현 동아대 교수의 분석 결과 더욱 경악을 금치못했다. 바닥에 쳐박힌 두개골의 바로 밑에는 오른쪽 손가락 뼈들이 보였다. 이는 우물에 거꾸로 던져져 바닥에 꽂히기 직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 최후의 순간 오른팔을 앞으로 뻗고 있던 상황을 증거해주었다. 이런 최후의 몸부림도 소용없이 이 사람은 바닥에 부딪쳐 두개골 함몰과 함께 사망한 것이다. 이 유골의 나이를 분석해보니 추정신장 123㎝에 불과한 7~8세의 어린아이였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우물의 층위별로 출토된 유물들. 4구의 인골은 각기 다른 층에서 확인됐다. 같은 시기에 묻힌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 어린아이는 왜 우물 바닥에 거꾸로 쳐박혀 죽었을까. 어린아이는 소·말 등 동물뼈 2000여 점과 제사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토기·목기 등이 함께 발굴됐다. 따라서 이 우물은 식수용이 아니라 제사의식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짙다. 제사음식이나 제물로 사용된 동물뼈의 존재, 무엇보다 일부러 토기병의 입부문을 파손하고 던져놓은 행위 등은 분명한 제의행위의 흔적이다. 때문에 이 어린아이도 나라의 큰 제사를 지낼 때 산채로 우물 속으로 던져진 희생물이 아닐까 짐작된다. 국립경주박물관 조사단은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살아있던 어린이를 건져낼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동물뼈 및 제사도구들과 묻어놓은 것으로 미루어보면 단순 사고사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뿐이 아니다. 2017년 신라 별궁터인 ‘동궁과 월지’ 터에서 확인된 우물 3기 중 1기에서 4개체의 인골이 각종 씨앗 및 동물뼈들과 함께 출토됐다. 그렇다면 이 인골들도 사람제사의 희생양이 된 것일까.
신라 별궁인 동궁 및 월지. 신라멸망 후 방치된채 폐허가 남았던 것 같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렇다면 폐허가 된 ‘동궁과 월지’의 우물에서 확인되는 인골들은 무엇인가. 보고서는 우물 1기에서 확인된 인골은 모두 4개체로 판단됐다. 치아의 마모도 등을 분석한 결과 30대 후반의 남성과 8세 전후의 어린이, 3세 전후의 유아, 6개월 전후의 영아 등 아주 다양했다. 연구소측이 두번에 걸쳐 연대측정 해본 결과 고려전기인 1029~1154년 사이일 가능성이 95% 정도로 나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동궁 및 월지’가 신라멸망(935년) 이후 고려시대부터 방치되어 사실상 폐허가 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이곳 우물을 분석한 결과 하부층과 상부층에서 나온 식물 유체 양상이 확연히 달랐다”고 1일 밝혔다. 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경주 동궁과 월지Ⅲ 발굴조사 보고서’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판단되는 하부층에는 소나무류가 많았으나, 고려시대 초기 이후에 쌓인 상부층에서는 소나무류가 줄고 덩굴식물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부지의 우물에서 쳐박힌채 확인된 어린이 유골. 아마 제물로 희생된 아이였을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성인 남성 1명과 어린이·유아·영아 각 1명씩은 한 식구일까. 하지만 인골들이 확인된 구간이 우물 중간에서 바닥까지 넓은 범위라는 점에서 같은 시기에 매장됐을 가능성은 높아보이지 않는다. 신라멸망 이후인 11~12세기 사이 사망한 이들이 폐기 방치된 왕성지역의 우물 속으로 묻혔을 것이라는 해석이 합리적이다. 혹시 인골들이 몽골의 침입(1231~1259년)과 관련있는 것이 아니냐는 억측도 있지만 추정연대가 100년 정도 차이가 난다.
보고서가 특히 주목한 것은 인골의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복원해볼 수 있는 인골들의 생전 식생활이다. 동위원소는 방사성동위원소와 안정동위원소로 나뉜다. 방사성동위원소는 그 반감기를 이용해 연대측정에 활용하는데 반해 안정동위원소는 시간이 지나도 그 비율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피장자의 생존 당시 식생활연구에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다. 연구소측은 인골 4구의 뼈 콜라겐을 분석한 결과 30대 후반의 남성은 벼와 보리, 콩과 같은 쌀·밀류와 견과·콩과류 위주의 식생활을 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질소 안정동위원소 분석결과 3세 전후의 유아와 6개월 전후의 영아의 경우 모유수유가 이뤄졌음을 암시하는 수치가 보였다. 즉 모유수유를 하는 경우 아이의 질소안정동위원소 값이 엄마에 비해 2~3% 정도 높게 나타난다. 그런데 3세 전후, 6개월 전후의 인골에서 ‘30대 성인’보다 질소안정동위원소가 2% 정도 높게 측정됐다. 보고서는 “비록 30대 성인이 남성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향후 고려시대 인골과 관련된 자료가 축적되면 당시 모유수유와 이유 양상을 이해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