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술과 음악에 빠졌으며(好酒淫樂) 여자까지 좋아했다.” <사기(史記)>는 상나라(기원전 1600~1046)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한다.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숲처럼 꾸몄다(以酒爲池 縣肉爲林). 그 안에서 벌거벗은 남녀들로 하여금 서로 쫓아다니게 했다.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使男女裸 相逐其閒 爲長夜之飮).”(<사기> ‘은본기’)
 
악명 높은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사실이라면 이런 나라는 망해도 싸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동이의 후예인 상나라는 본디 하늘과 조상을 섬기는 전통으로 유명했다. <예기(禮記)> ‘표기(表記)’는 “은(상)나라는 신을 존숭하고 귀신을 섬겨 백성을 통치한다(殷人尊神 率民以事鬼)”고 했다. 그런데 마지막 군주인 주왕 때에 이르러 전통을 잃어버린다. 
 
“주왕은 선조를 위한 제사를 중단했다. 귀신(조상의 혼령)을 업신여겼다. 백성들도 제사를 경시하고 있다.”(<사기> ‘송미자세가’ 등)

상나라는 단순히 주색(酒色)에 빠져 망한 게 아니었다. 하늘과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게을리해서 죗값을 치른 것이다. 왕뿐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후한서> ‘동이전’ 등을 보면 부여와 마한 등도 ‘24시간 내내(晝夜無休) 음주가무’를 즐겼다. 하지만 단서가 있었다. ‘제사를 지낸 뒤(부여)’, 그리고 ‘파종 후 신령에게 굿을 올린 뒤(마한)’였다. 제사 후 한바탕 신명나는 축제를 펼친 것이다. 이때 썼던 그릇이 바로 조두(俎豆)였다. 

조두는 제사를 지낼 때 편육 등을 진열하는 제기다. 부여의 고토(古土)인 중국 지린성(吉林省) 일대에서 조두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는 “부여인들은 음식을 먹을 때도 조두를 사용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제사가 일상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동이의 후예인 공자도 어릴 적 소꿉장난할 때 조두를 펼쳐놓고 예를 올렸다(<사기> ‘공자세가’). 그렇기에 동이는 ‘예(禮)의 나라’로 꼽혔다.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보자. “오직 동이만이 대의를 따른다. 풍습은 어질다. 어진 이는 장수한다. 군자들이 죽지 않는 나라다(惟 東夷從大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공자도 “중국이 예를 잃었다(中國失禮). 군자불사의 나라인 동이로 가겠다(子欲居九夷)”(<논어> ‘자한’)고 했다. 곧 추석이 다가온다. 조상의 넋을 기리는 명절이다. 어떤 종교를 믿든…. 그런 뒤 즐기는 음주가무는 동이만의 전통일 터. 군자불사의 나라인 동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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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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