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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담배 때문에 미국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남초(南草·담배)는 1616~17년 사이에 조선에 들어왔다. 5년 만에 조선에서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해롭다는 것을 알고 끊으려 해도 끝내 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담배를 요초(妖草), 즉 요망한 풀이라 했다.”
 1638년(인조 16년)의 <인조실록> 기록이다. 이 기사처럼 담배의 모든 것을 요약해주는 대목을 찾기 힘들다. 중독성이 얼마나 강했으면 단 5년 만에 조선 전역에 대유행했을까. 벌써 그 당시 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도무지 끊을 수가 없어서 요망한 풀이라 일컬었다니….  

빈센트 반 고흐가 1885년 그린 <불붙은 담배를 문 해골>. 고흐는 장난스럽게 그렸지만 결과적으로 담배의 해악을 소름 끼치도록 표현했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부터 피웠던 담배

  하기야 그럴 만도 했으리라.
  유럽에 전해진 담배가 본격 재배된 것이 1558년 쯤이라 하니까 불과 60년 만에 조선에 전해졌고, 그 후 5년 만에 머나먼 극동의 조선 전역까지 퍼졌다니…. 그 파급 속도는 어마어마한 것이다. 사실 인류가 담배를 처음 피우기 시작한 것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인 기원전 5000~3000년이라는 게 정설이란다. 연초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남미 안데스 산맥에서 찾아낸 야생담배를 두고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현재의 담배와 비슷한 성분을 찾아냈다.
 고고학적인 증거도 있다. 예컨대 멕시코 마야 유적의 신전 벽면에 제사장이 담배 파이프를 손에 들고 있는 장면이 있다. 이 그림의 연대가 서기 432년이니까 지금으로부터 1600년 된 담배의 흔적이다. 또 6세기 북미 애리조나의 인디언이 남긴 파이프에서도 니코틴 성분이 검출됐다. 이는 신대륙 발견 이전부터 흡연의 풍습이 널리 퍼졌음을 알려준다.
 하기야 흡연이 꽤 오래된 풍습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청동기 시절의 임금은 제사장을 겸하고 있었다. 그들은 제의를 지냄으로써 하늘과 인간을 소통시켰는데, 새(鳥)와 같은 존재는 바로 하늘과 땅, 하늘과 인간을 소통시켜주는 메신저였다. 담배와 같은 풀을 피워 연기를 내는 행위도 비슷한 개념이었을 것이다. 공기 중에 피어오르는 연기는 왠지 하늘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영적인 존재로 여겼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곧 제정일치의 존재(임금이면서 제사장을 겸한 사람)가 치르는 제사 및 주술·치료의 의식이었을 것이다.
 담배 연기는 곧 제사장(임금)의 몸에 들어온 영혼들의 양식으로도 여겨졌다. 심지어 16세기 멕시코의 아스텍 사람들은 담배를 여신의 화신이라 여겼다. 제사장(임금)은 담배를 피움으로써 불의 정기를 마시고, 내뿜는 담배연기가 악마를 쫓아내거나 환자를 치료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다.
 
 ■콜럼버스는 범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요초, 즉 요망한 풀은 과연 언제쯤 유럽에 발을 디뎠을까.
 사람들은 콜럼버스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신대륙에서 그 망할 놈의 ‘담배와 매독’을 전파시킨 흉악한 장본인으로 꼽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콜럼버스의 변명을 한번 들어보자.
 그랬다. 신대륙 탐험에 나선 콜럼버스 원정대는 1492년 10월 12일 바하마 제도의 조그만 섬에 도착했다. 원정대는 그 섬 이름을 산살바도르라 지었다.
 원주민들은 그들을 찾아온 손님에게 아주 귀한 선물을 전달했다. 그 날짜 일기를 보라.
 “원주민들이 과일 나무로 만든 창과 특이한 냄새가 나는 말린 잎사귀를 가져왔다.”
 이 ‘특이한 냄새가 나는 말린 잎사귀’가 바로 담배였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잎사귀가 100년도 안돼 유럽 전역에 대유행하게 될 ‘신비의 풀’(물론 처음엔 요망한 풀이라는 인식은 없었다)이라는 것을…. 황금을 좇아 신대륙을 탐했던 콜럼버스는 이 풀을 바다에 물고기밥으로 던져 버렸다. 그로부터 한 달도 안된 11월 6일, 콜럼버스 원정대의 선원인 루이스 데 토레스와 로드리고 데 헤레스가 쿠바에 파견됐다. 그 때 둘은 어떤 식물로 만든 작은 막대기에 불을 붙여 그 향기를 들이 마시는 원주민들을 발견했다. 둘은 원주민이 준 잎을 피웠다. 담배를 피운 최초의 유럽인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콜럼버스는 담배를 처음 본 유럽인이었고, 그의 선원들은 담배를 처음 피운 유럽인들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들은 ‘냄새나는 하찮은 입사귀’를 굳이 유럽에 가져올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다만 콜럼버스가 어떻든 담뱃길을 여는데 선구자였던 것은 틀림없다. 뒤따라 들어온 스페인·포르투갈인들이 앞다퉈 원주민들이 생산한 입담배를 유럽으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브라질 원주민 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장면. 담배는 남미 안데스 산맥이 그 고향이라고 알려져 있다. 

   ■담배에 맥주를 끼얹은 사연

 담배는 단박에 유럽인들을 매혹시켰다.
 해프닝도 있었다. 영국의 초기 애연가였던 월터 롤리경이 한번은 파이프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이를 본 하인이 얼굴에 불이 붙은 줄 알고 다급한 나머지 맥주를 끼얹어 껐다는 일화이 유럽전역에 파졌다. 담배를 사랑한 롤리는 엘리바제스 여왕과 담배연기의 무게를 재는 내기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즉 담배의 무게를 잰 뒤 태운 다음의 꽁초와 담배재의 무게를 뺀 것을 담배연기의 무게라고 우긴 것이다.
 사실 롤리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기에 쳐녀여왕, 즉 버진 퀸(Virgin Queen)이라 일컬어졌던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1603)의 총신이었다.
 롤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도와 북미 식민지 개척에 앞장 선 인물인데, 신대륙 첫번째 식민지 이름을 ‘버진 퀸’ 엘리자베스 여왕의 별명을 따서 ‘버지니아’로 명명하기도 한 인물이다. 지독한 골초인 롤리는 영국 궁정에 흡연풍속을 전파시킨 장본인인데, 제임스 1세(1603~1625)이 등극하자 몰락하고 만다.
 그는 1618년 참수당하고 마는데, 처형 직전에 담배 한 대를 청해 피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한다. 최근까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버티다가 체념하고 진술하려 할 때나 사형 직전에 담배 한 대를 청하는 장면이 나오곤 했는데, 바로 그 장면의 효시가 롤리 경이 아니었을까.

 

   ■장 니코 대사와 니코틴

 담배종자의 재배기술은 1550년대 후반에 유럽에 도입됐다. 이 부분에 관한한 장 니코라는 이를 빼놓을 수 없다.
 니코는 포르투갈 리스본에 주재하는 프랑스 대사였는데, 포르투갈인으로부터 담배종자를 받아 담배를 재배했다. 그는 재배한 담배를 프랑스 왕비에게 헌상했다. 담배의 학명 가운데 속명을 니코티아나라 하고, 담배의 대표적인 성분을 니코틴이라 하는 것도 바로 니코 대사의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하여간 담배는 요원의 들불처럼 유럽 전역에 퍼진다.
 1565년 영국·독일 상륙, 1600년에 이태리·노르웨이·스웨덴·터키·시리아·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물론 중국과 일본까지…. 조선에도 1616~18 쯤 상륙했다니…. 지금처럼 통신망이 발전한 것도 아닌데…. 그 파급속도는 그야말로 LTE급이라 할 수 있다.
 하기애 비슷한 시기에 신대륙에서 전파된 감자가 유럽인들의 식탁에 오를 때까지 200년이 걸렸다는데…. 담배는 불과 50~60년 만에 전세계로 퍼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빨랐을까.
 그럴만도 했다. 담배를 피우는데 뭐 그렇게 준비할 게 없었으니까. 그저 흡입만 하면 일정양의 니코틴과 다른 화학성분이 곧바로 혈액에 침투하는 것이니까…. 게다가 담배는 처음에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었다.
 에컨대 세비아의 의사인 니콜라스 모나르데스는 “담배가 고통을 씻어버렸다”고 예찬론을 펼쳤다. 담배를 신앙처럼 떠받다는 이들이 유럽에 넘쳐났다.
 사람들은 “담배 덕택에 우리는 신의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찬탄했다. 담배란 몸을 덥게 하고 말려서 원기왕성한 상태에 이르게 하고 모든 병을 퇴치하는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의사인 토비아스 베너는 1621년 “뇌와 근육에 불필요한 사기(사악한 기운)을 녹이고 소모. 냉기를 없애는데다 위장 유방 폐의 모든 냉증과 습증에 매우 이롭다”고 했다. 특히 매독에 특효라는 소문이 돌았다.
 게다가 담배 피우는 것은 상류층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상류층이라면 이 새로운 유행에 한번 몸을 던져야 멋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간첩죄로 붙잡혀 사형된 언론인 정국은. 1954년 총살형으로 처형되기 직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처형 직전의 담배 한 대'는 1618년 제임스 1세에 의해 참수된 월터 롤리 경이 효시였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담배는 미국독립전쟁의 원인이었다.

 담배는 당시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영국인들의 신대륙 정착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또한 미국 독립전쟁의 원인 가운데 담배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예컨대 1610년 영국의 존 롤프라는 이가 신대륙에 나타나 담배를 재배했다. 그는 원주민의 담배가 너무 독한 것을 알고 스페인 이주민들이 재배하던 순한 담배종자를 몰래 도입해서 영국으로 수출한다. 이것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담배값이 금값이 됐다. 식민지의 제임스타운은 담배타운으로 바뀌었다.
 오죽했으면 제임스타운 총독은 “2에이커(2400여 평)의 땅에 옥수수를 심지않으면 담배재배를 할 수 없게 한다”는 명령까지 내렸을까.

 어떻든 담배는 식민지 미국에서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노동력 확보가 골치거리로 다가왔다. 담배는 노동집약적 작물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처음엔 영국본토에서 식민지 개척을 위해 이민선을 탔던 영국인들이 담배농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이들의 계약기간은 주로 1년이었다. 1년의 노동을 마치면 자유인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때문에 담배농장에서는 지속가능한 인력, 즉 흑인 노예를 선호하게 됐다. 흑인 노예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고 독립 무렵에는 남부 전체인구의 40%를 차지할 정도했다.
 미국독립전쟁의 원인으로는 흔히 두가지가 꼽힌다. 식민지 수탈을 위한 인지조례와 이로 인한 영국제품 불매운동, 그리고 보스턴 차사건 등이다.
 알다시피 영국은 1765년 식민지의 증권·증서 등과 신문 잡지 광고물 등 모든 인쇄물에 영국이 발행하는 인지를 사서 붙이도록 하는 이른바 인지조례를 발효했다. 당연히 식민지 사람들의 반발을 불렀다.
 또 하나의 핵폭탄인 보스턴 차사건은 1773년 터졌다. 영국은 미국 식민지의 상인에 의한 차의 밀무역을 금지시키고 이를 동인도회사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관세법을 성립시켰다. 그러자 보스턴 시민들이 항구 안에 정박한 동인도 회사 선박 2척을 습격, 차상자 342개를 깨뜨리고 차를 바다에 던졌다. 이 두 사건이 독립전쟁의 직접 도화선이 되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또 하나의 원인이 있었으니 바로 담배이다. 담배를 빼놓고는 독립전쟁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 하나. 초대대통령인 조지 위싱턴과 2대 대통령이자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은 대규모 담배농장을 경영하던 담배 귀족이었다는 사실이다. 조지 워싱턴은 23살에 버지니아 주 총사령관으로 프랑스와의 전투에 참전했다. 그 후 버지니아 최고재산가인 미망인 마르타 커스티스와 결혼한 뒤 대농장주로 변신해서 담배농사에 전념했다고 한다.

 담배가 식민지에서 엄청난 호황을 이루자 영국 본토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수탈이 본격화했다.
 영국 국왕과 영주들은 식민지 담배농장 토지를 독점하고, 갖가지 세금을 부과하는 등 횡포를 벌였다.
 식민지 농장주들은 소작농의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영국은 또 항해조례까지 제정했다. 교역하는 모든 담배는 반드시 영국배에 실어 영국의 항구에 도착시키도록 한 것이다. 다른 나라로 수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담배경작자는 높은 세금을 물고, 마음대로 팔 수도 없었으며, 생필품도 비싼 값으로 영국에서만 사야 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독립전쟁 직전 13개 식민지에서 본국상인에게 진 빚이 500만 파운드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이 가운데 5/6가 남부지방에서 진 빚이었는데, 토머스 제퍼슨도 런던 상인에게 1만 파운드의 빚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식민지 담배업자들은 영국의 착취에 맞서 독립전쟁에 적극 참여한 것이다.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처럼….(계속)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참고자료>

 김정화, <담배이야기>, 지호, 2000

 샌더 L 길먼, 저우 쉰 외 지음, <흡연의 문화사>, 이수영 옮김, 이마고, 2006

 이옥, <연경, 담배의 모든 것>, 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2008

 이안 게이틀리, <담배와 문명>, 정성묵 이종찬 옮김, 몸과 마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