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五里霧中), 이합집산(離合集散), 우왕좌왕(右往左往)….
 교수신문이 2001~2003년까지 내놓은 사자성어를 보라. 이렇게 알아듣기 쉬웠다.
 대통령 탄핵과 수도 이전 등의 대형 이슈가 터진 2004년의 ‘당동벌이(黨同伐異·같은 패끼리 모이고 다른 패를 공격한다)’는 그래도 촌철살인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였다. 교수신문은 2006년부터 새해 벽두부터 그 해의 ‘희망의 사자성어’도 선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갈수록 선정된 사자성어가 어려워졌다.

전국을 순행중이던 진시황이 급서하자 중거부령과 부새령을 겸했던 환관 조고가 바삐 움직였다. 황제의 유서를 조작해서 진시황의 막내아들 호해를 후계자로 옹립한 뒤 국정을 농단햇다. 그는 특히 궁궐의 출입을 관리 통제하는 낭중령에 올라 황제와 신하들의 소통을 끊고 마음껏 조정을 주물렀다.  

 ■정반대의 사자성어
 심지어는 난해한 <주역>에서 찾아낸 밀운불우(2007년 연말·密雲不雨·하늘에 구름만 빽빽할 뿐 비가 내리지 않음)에서 심오한 불교의 용어(2014년 연초·전미개오·轉迷開悟·번뇌로 인한 미혹에서 벗어나 열반을 깨닫는 마음에 이름)까지 등장했다. 교수들이 지적 허영심에 빠져, 혹은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쓸데없이 어려운 사자성어를 찾아낸다는 비판이 일었다. 필자 역시 그 지적에 동의했다.
 그런데 최근 교수신문의 연초·연말 사자성어를 비교해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교수들의 고민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들은 해마다 연초에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사자성어를 찾느라 고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연말에 한 해를 정리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찾는 것이리라. 연초 ‘희망의 사자성어’에 부합되는 글귀는 한 차례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연초와 정반대의 성어를 찾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나쁜 사자성어만을 일일이 찾는다는 것도 고역일게다. 예컨대 2007년 ‘내 탓이오’를 외치며 시작하라는 뜻에서 ‘반구저기(反求諸己)’를 희망했지만, 결국 자기기인(自欺欺人·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임)으로 끝났다.
 ‘세상이 잘 다스려지기(光風霽月)’를 희구했던 2008년은 결국 ‘호질기의(護疾忌醫)’, 즉 ‘자신의 결점을 숨기고 남의 잘못을 드러냄’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2009년은 ‘남과 화합하되 의(義)를 굽히지 마라’는 뜻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바랐지만 연말의 사자성어는 ‘방기곡경(旁岐曲徑)’이었다. ‘샛길과 굽은 길로만 갔다’는 것이다. 

 

 ■전미개오에서 지록위마로
 이후 2010~2013년 연초의 희망들은 강구연월(康衢煙月·태평성대), 민귀군경(民貴君輕·백성이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 파사현정(破邪顯正·잘못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냄), 제구포신(除舊布新·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 것을 펼침) 등 좋은 사자성어는 죄다 모아놓았다. 하지만 연말의 사자성어는 장두노미(藏頭露尾·진실을 감추려 하지만 결국 꼬리가 드러남), 엄이도종(掩耳盜鐘·귀를 닫아버림)과 거세개탁(擧世皆濁·온세상이 탁함), 도행역시(倒行逆施·순리를 거스름)이었다. 어찌 그렇게 반대로만 됐는지 모르겠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연초에 전미개오(轉迷開悟)의 희망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로 끝났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교수님들이’ 오랜만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성어를 택했다. 군주의 측근에서 국정을 농단한다는 측면이라면 ‘대통령 측근들의 국정개입 논란’을 가리키고, 진실 호도의 측면에서 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대처방식을 꼬집는 것이니 말이다.

 

 ■환관 조고의 세가지 직책
 사실 지록위마의 뜻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진나라 황제(진이세)의 최측근인 환관 조고가 자신의 권세를 가늠하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우겼다’는 사자성어다. 황제는 당연히 “이게 무슨 말(馬)이냐”고 했지만 ‘대신들 대부분’은 조고의 위세에 눌려 ‘말’이라 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한꺼풀 더 벗겨보기로 한다.
 진시황이 전국 순행 중 급서했을 때(기원전 210년) 조고의 직책은 부새령(符璽令)과 중거부령(中車府令)이었다. 부새령은 황제의 옥새를, 중거부령은 황제의 마차를 관리했던 직책이었다. 조고는 ‘부새령’의 직책으로는 황제의 유서를 조작해서 만만한 후계자(호해)를 황제에 올렸다. ‘중거부령’의 직책으로는 썩어가는 황제의 시신을 어가에 담아 수도(함양)까지 극비리에 옮겼다. 진이세(호해)가 등극했을 때 조고는 딱 한가지의 직책만 차지했다. 바로 낭중령(郎中令)이었다.
 ‘낭중령’은 대궐의 문호, 즉 대신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직책이었다. 그야말로 구중궁궐의 문고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것은 권력의 문고리였다. 조고는 황제에게 “황제가 조정에서 대신들과 정사를 논하면 폐하의 단점만 보일 뿐”이라며 “궁궐 안에 가만히 계시라”고 한다. 조고의 허락없이는 그 누구도 황제를 만날 수 없었다. 국정은 조고의 수중에 떨어졌다.
 ‘지록위마’의 고사는 이 때 나왔다. 조고의 이간질로 황제와 신하들 간의 소통은 막혔다. 승상(총리) 이사가 “조고가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고 황제에게 피를 토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자 황제는 “그렇게 청렴하고 부지런한 사람을 의심하느냐”고 질책했다. 이사는 도리어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으로 죽었다. 황제는 아방궁 공사를 반대하는 여론에는 “천하를 소유한 황제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 외쳤다. 사람들은 “황제가 사람의 머리로 짐승소리를 한다.(人頭畜鳴)”고 혀를 찼다.  진나라는 조고가 이세 황제를 궁궐에 두고 국정을 농단한 지 4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폐하는 걸주와 같은 군주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지록위마’ 고사의 전말인데, 이 또한 ‘2014년의 한자성어’로 부합되는 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말이 나온 김에 고사를 하나 더 인용해보자. 한나라 고조 유방이 애첩인 척희를 희롱하다가 측근인 주창에게 “나는 어떤 군주냐”고 물었다. 그러자 주창은 “폐하는 걸주와 같은 폭군입니다.”라 외쳤다. 말을 심하게 더듬었던 주창은 “척희의 아들을 태자로 삼겠다”는 황제 앞에서 얼굴을 붉히면서 “기, 기, 기어코 그 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期期期知其不可)”라 소리쳤다.  하나 더. 한나라 경제 때 낭중령이었던 주인(周仁)은 황제의 침실을 지킬 정도의 최측근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조정대신의 인물평을 물을 때마다 절대 입밖에 내지 않고 “폐하께서 친히 살피시라”로 했단다. 같은 낭중령이라도 조고와 주인은 그렇게 달랐다. 각설하고 교수신문은 2015년 ‘희망의 사자성어’로 ‘정본청원(正本淸源)’을 택했다고 한다. 근본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니 올해 역시 ‘희망사항’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5년을 마무리할 ‘올해의 사자성어’는 어떨까. 태평성대, 고복격양…. 그것도 아니라면 ‘말더듬이’ 주창이 외쳤다는 ‘걸주지주(桀紂之主)’는 혹 어떨까. 그런 ‘돌직구 직언’이 있다면 그 또한 제대로 돌아가는 조정이 됐다는 뜻이 아닌가. 경향신문 논설위원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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