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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루트를 찾아서

동북아 북방문명의 젖줄, 아무르

2007 11/20ㅣ뉴스메이커 750호

강줄기 따라 수많은 문화·유적 분포… 중류 ‘평저 융기문 토기’ 한반도서도 출토

나는 아무르 강을 보면 ‘아, 물이다’라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모스크바에 유학할 때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아무르’라는 명칭이 이주 한인들이 너무 힘들고 목이 마를 때 그 강물을 보고 “아, 물이다”라고 말한 연유로 생겨났다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다. 아무르 강 하류의 니브흐인들은 그 강을 다-무르, 즉 큰 강이라고 불렀고, 더 하류 쪽의 에벤크(에벵키)인들은 이를 차용하여 아마르 혹은 아무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중에 러시아인들이 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아무르 강이 되었다. 아무르 강은 그 물 흐르는 것이 검은 용과 같다 하여 흑룡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무르 강 유역 유적 분포도

바이칼 동쪽의 실카 강과 아르군 강이 합류하면서 시작하는 아무르 강은 동쪽으로 흘러 아무르 주와 하바로프스크 주를 지나 타타르 해협으로 흘러나간다. 아무르 강은 전체 길이가 2824㎞로, 상류·중류·하류로 크게 구분된다. 실카 강과 아르군 강이 합류하는 곳에서 제야 강 하구까지, 즉 블라고베시첸스크 시까지가 상류, 이곳에서 우수리 강까지, 즉 하바로프스크 시까지가 중류, 그리고 이곳에서 동해의 타타르 해협까지가 하류다.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교통로

아무르 강 유역에는 석기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는 수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나나이족을 비롯하는 수많은 소수민족도 이 강을 따라 살고 있다. 

아무르 강은 동북아시아 북방지역의 교통로이자 젖줄과도 같았다. 사시사철 동북아시아의 북방을 동서로 연결했으며, 또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풍부한 음식물을 제공해주었다. 여름이면 배를 타고 아무르 강과 그 지류를 따라 아주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겨울이면 폭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빙판길을 사람들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토기가 한반도와, 초기 철기시대의 토기가 일본과 각각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아무르 강과 그 지류에는 동해의 타타르 해협에서 올라오는 연어로 인해 강이 물고기로 넘쳐났다. 이곳의 주민들은 여름 한철의 연어 잡이로 겨울을 준비했다. 연어는 이곳 주민들의 주식이었고, 의복과 신발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낚시를 하여 물고기를 잡았다. 아무르 강에는 철갑상어도 많이 서식한다. 주변의 산악지역에는 곰과 사슴 등 수많은 동물도 서식한다. 그 때문에 아무르 강 유역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
.
신석기시대에 아무르 강 중류와 하류에는 수많은 고고학 문화가 발전했다. 하류 지역에서는 이미 1만3000년 전에 토기를 사용했다. 가샤 유적에서 출토한 이 토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이른 토기 중의 하나다. 더 하류로 가면 수추 섬 유적이 있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3년 동안 러시아와 공동 발굴조사를 한 유적이다. 길이가 약 400m에 불과한 자그마한 이 섬에서는 신석기시대 전 기간의 주거지가 약 120여 기 확인되었다. 

이 섬 안에는 환호가 있어 사람과 영혼이 거주하는 지역이 서로 구분되어 있으며, 주거지에서는 토기와 석기는 물론이고 사람 형상과 동물 형상을 한 다량의 토우도 출토되었다. 토기 중에는 번개무늬 토기가 있는데, 6000~7000년 전의 토기에 지금 우리가 쇠 울타리, 베개, 담장의 그림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꼭 같은 모양의 번개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유적은 풍부한 유구와 화려한 출토 유물 덕분에 ‘아무르의 미케네’라고 불리기도 한다.


코리안 루트 상에 분포한 대표적인 암각화인 레나강 상류 카축의 암각화(사진|김문석기자)와 아무르 강 유역 시카치-얄랸 암각화(사진|정석배교수), 그리고 울산시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왼쪽부터)

발해, 중·상류까지 진출 주장도

또한 아무르 강 하류 지역에는 ‘아무르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토우도 있으며, 토기에 사람의 얼굴을 새긴 것도 있다. 나나이인들이 사는 시카치-알랸 마을 주변에는 암각화 유적이 있다. 사람의 얼굴을 새긴 것과 사슴과 같은 동물의 형상을 새긴 바위들이 아무르 강변을 따라 수없이 널려 있다. 

나나이인들은 이 암각화를 매우 신성하게 여긴다. 태초에 사람이 3명 있었다. 그들은 카도라는 남자와 쥴치라는 여자를 만들고, 나중에 마밀쥐라는 처녀를 만들었다. 카도는 하늘에 해가 3개 있어 너무 뜨거워 살 수가 없다면서 2개의 해를 활로 쏘아 떨어뜨렸다. 이를 기념하여 마밀쥐가 암석에 그림을 그렸고, 쥴치가 이제 사람들이 내 남편이 2개의 해를 죽인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나나이인들은 이 신화의 내용대로 시카치-알랸 암각화를 자신들의 조상들이 남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르 강 유역에서 발굴한 세칭 ‘아무르의 비너스’(위)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3000년 전) 토기의 조각들. |정석배 교수
 
아무르 강 중류 지역에는 신석기시대 전기의 노보페트로브카 유적이 있는데, 평저 융기문 토기와 돌날로 만든 석기가 특징을 이룬다. 비슷한 평저 융기문 토기가 한반도 동해안과 남해안 지역의 신석기시대 전기 유적에서도 많이 출토된다. 강원도 오산리 유적과 부산 동삼동 패총 유적 그리고 제주도 고산리 유적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이런 유형의 신석기문화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바이칼 지역이나 중국의 중원문화권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 시기에 이미 환(環)만주문화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수년 전에 러시아의 한 고고학자는 발해가 아무르 강 중류의 제야 강 지역까지 진출했고, 어쩌면 더 서쪽으로 아무르 강 상류지역까지 진출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내용의 박사학위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이곳은 발해사를 전공하는 역사학자들이 그린 발해의 강역도 범위를 많이 벗어나는 지역이다. 그 개요를 말하면 다음과 같다. 

서기 3~4세기부터 7~8세기까지 아무르 강 유역에는 대체로 소흥안령-부레야 산맥을 경계로 하여 그 서쪽과 동쪽이라는 두 개의 큰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서쪽은 지금의 블라고베쉔스크 시가 위치하는 제야 강 너머까지의 저지대에 미하일로브카 문화가 존속했고, 동쪽에는 하바로프스크 시를 중심으로 하는 아무르 강 중·하류 지역에 나이펠드 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나이펠드 문화는 아무르 강의 지류인 제1송화강과 우수리 강의 저지대에 분포하는 중국 지역의 동인문화를 포괄한다. 

이 두 지역은 유물의 양상이 서로 다르다. 서쪽의 미하일로브카 문화에는 장란형의 동체가 있는 호형 토기와 구상의 동체에 목이 있는 병형 토기가 많은데, 모두 격자타날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수제다. 나이펠드 문화에는 동체가 길쭉한 화병형과 심발형 계통의 토기가 많으며, 모두 어깨 부문에 침선문과 다치구 압인문이 시문되어 있다. 모두 수제다. 그 외에도 물레에서 보완 손질을 한 구연이 나팔 모양으로 크게 벌어진 화병형 토기가 있는데 역시 어깨 부분이 침선과 다치구 압인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미하일로브카 문화에는 보이지 않는 환옥과 은고리가 결합된 귀고리가 많다.


아무르 강 수추 섬은 풍부한 유구와 화려한 출토 유물로 인해 ‘아무르의 미케네’라고 불린다. 한반도와도 연결되는 가장 오래된 번개무늬토기(왼쪽)가 나온 곳이기도 하다. 수추 섬에서 발굴한 석환과 곰상.
 
서쪽 8세기 문화에 고구려 토기 등장

여기에서 미하일로브카 문화는 사료에 나오는 몽골어계의 실위고, 나이펠드 문화는 퉁구스어계의 흑수말갈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 의견은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서기 8세기쯤에 이곳의 정치적 양상이 바뀌는데, 발해의 건국과 관련한 사건이 그것이다.

8세기쯤 발해의 건국과 함께 아무르 강의 동쪽 지역에 거주하던 흑수말갈이 발해의 압박을 받고 서쪽으로, 그러니까 실위의 미하일로브카 문화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로 인해 아무르 강 서쪽 지역에는 8세기쯤부터 나이펠드 문화의 요소가 확인된다. 
한편, 조금 후에 그러니까 서기 8세기 중엽 이후에 아무르 강 서쪽 지역에는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는데 바로 트로이츠코예 문화다. 이 문화는 말갈계의 수제 토기와 고구려계의 윤제토기를 함께 보이고 있다. 

말갈계 토기는 어깨 부분에 볼록한 융기대가 장식되어 있고, 간혹 동체가 격자타날로 장식되기도 하였다. 어깨 부분의 융기대는 실위의 미하일로브카 문화와 흑수말갈의 나이펠드 문화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던 요소다. 

바로 이 문화를 그 러시아 고고학자는 발해의 문화로 파악한다. 실제로 크로이츠코예 문화에 보이는 어깨가 융기대로 장식된 수제 토기와 고구려계의 윤제 토기는 연해주 지역에서도 확인되며, 그 외에도 철제 창이나 찰갑, 대도, ‘단검’ 등은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발굴 조사한 연해주의 체르냐치노 5 발해고분 유적에서 나온 것과 동일하다. 발해의 영역 연구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라 하겠다.

아무르는 흐른다. 그 물길을 따라 도처에 유적이 분포하고, 전설과 신화가 잠들어 있다. 오래전에는 한반도의 것과 매우 유사한 토기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막연하게 느끼던 흑수말갈과 실위의 실체가 성큼 다가왔고, 그에 따라 발해도 점차 그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 아무르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이제 그것들에 관심을 가질 때다. 더욱이 러시아 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우리가 이 지역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 정석배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교수·고고학> 
<후원 : 대순진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