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를 알면 조문하고 죽은 사람을 알면 애도한다.”
동양의 예법서인 <예기>는 조문(弔問)과 애도(哀悼)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했다.
원나라 시대의 학자 진호는 “조문은 “조문은 예의를 갖추어 위문하는 것이고, 애도는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는 것”이라고 부연설명했다. 따지고보면 법도를 갖추어 망자와 망자 가족을 위로하는 일은 쉽지않다. “조문은 원래 단순히 상주를 위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망자가 흙에 묻힐 때까지 도와줘야 하는 것”(<예
기>)이니 말이다.
동양의 조문절차가 매우 엄격한 것 같다. 하지만 진호의 언급대로 ‘예의와 진심’을 담는다면 그리 번거로울 것도 없는 예법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재(1680~1746)의 관혼상제 참고서인 <사례편람>은 “상가에서 전(奠·장례 때 올리는 음식)은 슬픔과 정성을 귀하게 여기므로 절대 술과 음식을 풍성하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선조들은 문상 때 향·초·실과 포·술 등 간소한 제물을 들고 갔다. 어떤 동네에서는 경황 중에 끼니를 챙겨먹지 못하는 상주를 위해 팥죽을 ‘부조’하기도 했다.
부조할 형편이 못되는 문상객은 상가의 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 시쳇말로 몸으로 떼운 부의금이다. 부의금을 내려고 뱀처럼 줄을 서는 요즘의 진풍경을 조상들이 보면 뭐라 할지 모르겠다.
또 검정색 양복에, 검정색 넥타이를 차려입지 않으면 큰일나는 줄 알지만 이것은 서양문화를 신봉했던 일제의 잔재가 투영된 풍습이다.
“상가에서는 남의 앞에서 꾸밈이 없어야 하므로 흰옷을 입는다”(<상변통고>)는 게 동양의 예법이었다. 하지만 유럽문화를 신봉했던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1897년) 일왕가의 장례식 때 검정색 상복을 입음으로써 졸지에 바뀌고 말았다. ‘소복(素服)’은 ‘꾸밈없는 옷’을 뜻한다. 따라서 검정옷을 고집하기보다는 흰옷이나 평상복 중 별나지 않은 정장을 차려입어도 된다.
지난 17일 일본의 상조업체가 차에 탄채 조문하는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장례식장’을 열었다. (사진은 일본 테레비 아사히 ANN뉴스)
접수대에 차를 멈춘 다음 태블릿PC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전열식 향을 직원에게 건넨 다음 큰 창너머로 보이는 빈소의 상주에게 ‘눈도장’을 찍은 다음 향을 점등하는 방식이다.()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조문편의라고 한다. 그러나 장례식장이 무슨 드라이브 스루 패스트푸드점인가. <사례편람>는 “멀거나 일이 있어서 문상을 못했으면 편지로서 위문했다(路遠惑有故 不及赴弔者 爲書慰問)”고 했다. ‘드라이브 스루’ 조문보다는 손으로 쓰는 ‘조문 편지’가 차라리 낫지 않을까. 새삼 조문의 의미를 떠올려보는 하루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