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의 권한은 단 두가지 뿐이다. 하나는 재상(宰相)을 선택·임명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한 사람의 재상과 정사를 논하는 것이다.”(<경제문감>)
삼봉 정도전(1342~1398)의 ‘재상론’은 혁명적이다. 재상을 잘 뽑아서 그와 모든 국정을 논하는 게 바로 군주의 권한이라는 것이다. 정도전은 더 나아가 “군주는 국가적인 대사만 ‘협의’할 뿐 다른 정사는 모두 재상에게 맡겨야 한다”고까지 했다. 누가 봐도 군주를 ‘핫바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정도전은 ‘왕권’을 외쳤던 이방원(태종)의 칼에 죽고 말았다. 당시 왕조시대였기에 받아들일 수 없었던, 너무도 혁명적이었던 주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정도전이 재상정치를 ‘꿈꿨던’ 이유를 곱씹어보면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군주는 현명할 때도 있지만 어리석을 때도 있다. 재상은 군주의 좋은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잡아야 한다.”
정도전은 “재상을 상(相·돕는다)이라 하는 이유가 있다”며 “그것은 바로 ‘임금을 도와서(相) 바로 잡는다’는 뜻”이라 했다. 즉 군주라고 다 군주는 아니라는 것. 성군과 폭군, 현군과 혼군(昏君)이 들쭉날쭉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상은 천하 선비들 가운데서 선택된 ‘인재 중의 인재’이며 그렇게 ‘선택된’ 재상이 ‘유능한 관료집단’의 수장으로 국사를 처리해야 천하민심이 안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주가 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정도전은 “어짊과 올바름을 해친 자는 군주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사내’에 불과하므로 죽여도 된다”(<맹자> ‘양혜왕·하’)고 했다. 그러니까 재상은 최악의 경우 민심을 잃은 군주를 죽일 각오까지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이완구씨의 국무총리 지명을 바라보면서 600년 전 정도전의 ‘재상론’을 재음미해본다. 총리 지명자가 갖가지 의혹에 대비해서 50여 년 전부터 준비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 한다. 물론 의혹 검증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요체는 군주가 백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보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도전의 이야기가 귓전을 때린다.
“천하를 화평하게 만드는 것이 재상의 몫입니다. 임금이 잘못할 때 비위를 맞춰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기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