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한 시간’을 뜻하는 ‘한참’ 단어에 몽골말(馬)의 체취가 남아있다. 예전에 몽골제국이 세계를 호령한 으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역참제도였다.
도로 40㎞마다 말을 갈아 탈 수 있는 참(站)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러니 매번 팔팔한 말을 갈아타는 몽골인들은 지금의 기준이라면 가히 LTE급 속도로 유라시아 동서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참과 참 사이의 거리(40㎞)를 ‘한참’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한차례 일을 하거나 쉬는 동안’의 뜻에서 나온 말이다. 쉬면서 먹는 밥을 새참이니 밤참이니 한 것도 예서 나왔다.
몽골의 말은 몸집도 작고 볼품도 없다. 털복숭이에 머리가 크고 목도 굵으며, 눈은 작고 다리가 굵고 짧다. 성질까지 더러우니 비호감의 전형이다.
예를들어 1223년 6월, 드니에프르 강변에서 몽골군대를 처음 본 킵차크와 러시아 제후연합군이 코웃음쳤다. “저런 쥐새끼 같은 말을 탄 미개인이라니….”
그러나 몽골의 보잘 것 없는 기마군을 깔보고 덤벼든 연합군은 싸우는 족족 전멸 당하고 만다. 하기야 사막과, 바위가 많은 구릉지, 바위와 바위 사이의 좁고 험하고 미끄러운 길 같은 거친 환경에서 키만 멀대같이 큰 서양말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사료만 4배 이상 축낼 뿐이다.
반면 ‘몽골말은 초원의 거친 풀만 먹어도 한 달 이상 달릴 수 있으며, 몽골군 역시 밥도 먹지않은채 10일 간이나 말 위에서 살 수 있다’(<동방견문록>)는 이야기가 서양으로 퍼졌다. 지금도 전력 질주 거리가 20~30㎞에 이르는 몽골말과, 고작 3㎞에 불과한 서양 경주마를 비교할 수 없다.
그랬으니 몽골인들은 함께 천하를 제패했던 전우(몽골말)를 애지중지의 차원을 넘어서 신성시했다. 예컨대 13세기 이노센트 교황의 사신으로 몽골을 방문한 프라노 카르피니는 “몽골인들은 안장과 고삐가 달린 수말과 암말을 시신과 함께 묻는다”고 기록했다.
몽골의 국장(國章)은 징기스칸 시절부터 ‘말꼬리’였는데, 지금도 ‘말 달리는 모습’을 주문양으로 배치해놓았다. 몽골에서는 남자아이가 3살이 되면 말 한필을 선물하는 관습이 있다.
비슷한 의미로 몽골을 방문하는 외국의 귀빈들에게도 몽골말을 선물하는 전통도 있다. 이번에 아시아·태평양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에게도 한 필씩 선사했다.
그러나 말 선물은 간단치않다. 운송이 까다로운데다 자칫 사고로 이어지면 외려 외교상 결례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물받은 준마는 몽골현지 농장에서 위탁관리하는게 관례라 하니 데려올 수는 없는 모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 역시 2006년 몽골방문 때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몽골말은 역시 마음만 받아야 할 선물인 것 같다. 가만 보면 유럽 뿐 아니라 고려군도 몽골의 기마부대에 사정없이 짓밟힌 역사가 있다. 새삼 떠오르는 아픔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