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청 시대 궁궐인 자금성(紫禁城)은 서양에서 ‘금지된 도시(Forbidden City)’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리 잘된 번역이 아니다.
출입금지를 뜻하는 금(禁)자와, 도시(City)로 번역된 성(城)자만 강조되었을 뿐이다. 서양인들의 눈이 ‘자(紫)’자가 지닌 심오한 동양의 사고체계를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대 동양에서는 하늘의 별을 삼원(三垣)과 28수(二十八宿) 등으로 구분했다.
북극성 주변의 별자리를 나눈 삼원은 ‘천상열차분야지도’에도 표시된 자미원(紫微垣)·태미원(太微垣)·천시원(天市垣)이다.
이 중 북극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별자리가 바로 자미원이다. 이 자미원을 따라 모든 별자리가 움직인다고 믿었다. 그리고 자미원에는 하늘세계를 다스리는 천황대제가 살고 있다고 여겼다.
천황대제가 정사를 돌보는 곳이 바로 태미원이고, 백성들이 사는 곳이 천시원이라는 것이다. 동양인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지상으로 옮겨와 그대로 재현했다.
천황대제가 존재했던 자미원을 본따 궁궐을 만들었다. 1406년부터 14년간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1402~1424)가 조성한 자금성의 자(紫)자는 바로 자미원에서 따왔다.
금(禁)자도 허투루 붙인 것이 아니다. <사기>에는 “한나라 경제(재위 기원전 157~141)가 금중(禁中)에 거처한다”는 표현이 있다.
하늘의 신탁을 받은 황제라면 쉽게 얼굴을 드러내서는 격만 떨어질 뿐이라고 여겼다. 진나라 시황제가 “앞으로 나를 칭할 때는 짐(朕)이라 한다”고 선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짐(朕)은 한자에서 ‘조짐(兆朕)’의 뜻도 갖고 있다. ‘조짐’은 드러나지 않고 어떤 기미를 내비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황제란 바로 이런 존재라는 것이다.
“황제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징조’만 느끼게 하면 되는 존재여야 한다”(<사기> ‘진시황본기’)는 것이다. 지독한 신비주의 컨셉트이다.
어쨌든 하늘 궁궐(紫)과 지상 궁궐(禁)을 합쳐놓은 자금성의 규모는 놀랍다.
방만 9999칸(실제로는 8707칸)으로 알려져 왔다. 갓 태어난 황제의 아들이 날마다 방을 바꾼다 해도 한바퀴 돌아 태어난 방에 도달하면 27살이 된다. 24명의 황제가 이곳에서 중국을 다스렸다.
지난 8일 중국이 자금성의 방을 몽땅 비우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았다.
하루동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부부와 트럼프 대통령 부부 등 딱 4사람만 자금성에 머물렀다. 당장 ‘1일 황제 트럼프’를 위한 멋진 퍼포먼스였다는 말이 돈다.
하지만 필자는 다른 생각이 든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 손님’이지만, ‘주인’은 시주석이다.
시주석은 트럼프를 1일 황제로 대접하면서 은연중 ‘시(習)황제’의 권위를 만천하에 알린 것이 아닐까.
그것도 다름 아닌 하늘과 땅의 황제들이 세상을 다스렸던 자금성에서….. 시진핑으로서는 도랑치고 가재잡는 형국이다. '1일 황제대접'을 받은 트럼프에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다.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