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말 ‘임나일본부’를 강의하던 스에마쓰 야스까즈(末松保和) 교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학생이 있었다. 경성제대생 김석형(金錫亨)이었다. 해방 후 월북한 그는 1963년 스에마쓰의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하는 논문(‘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진출’)을 발표한다. 일본학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논문을 소개한 하타다 다카시(旗田巍)는 “자는 사람 귀에 물을 붓는 것 같은 기상천외한 견해”라 했다.  

북한의 김석형은 1963년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에 맞서 이른바 '삼한 삼국의 일본열도 진출' 논문을 발표했다.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본열도로 건너간 삼한 삼국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이른바 분국을 세웠다는 것이었다. 그 가운데 가야인들이 오사카 지역에 세운 분국이 바로 임나라는 것이었다.

 사진은 1972년 일본 다카마쓰 무덤 학술대회에 참석한 김석형(오른쪽)이 남한학자 김재원 박사를 만나 악수하는 모습. 

스에마쓰 등이 체계화한 일본 고대사의 통설은 ‘왜가 4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 간 한반도 남부를 군사적으로 정벌,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경영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학계가 노렸던 ‘타율성·정체성의 식민사관’을 뒷받침했다. 즉 ‘한사군이 313년까지 한반도 서북부를, 4세기부터는 왜가 한반도 남부를 차례로 점령했으니 제대로 된 조선의 고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석형은 철옹성처럼 굳어진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뿌리째 흔들어놓았다.
 임나일본부는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일본 열도에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일본열도에 이주한 삼한·삼국의 주민들이 각각의 고국을 상징하는 분국을 세웠고, 그 중 가야인의 분국이 바로 임나국이었다는 것이다.
 김석형의 ‘분국론’은 그렇게 한일학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그것을 계기로 정설로 굳어졌던 임나일본부설이 본격적인 논쟁의 장으로 나왔다. 이후 가야지역에 존재했던 일본 거주민들을 통제한 행정기관설, 백제가 가야에 파견한 백제군사령부설, 왜가 가야에 파견한 외교사절설 등 임나일본부의 실체를 두고 갖가지 주장들이 나왔다.
 지난 2010년 한·일 학자들의 모임인 한일역사공동연구회는 “왜가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했을 수 있지만 임나일본부를 두고 지배했다고 볼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자 ‘일본이 드디어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했다’는 보도가 잇달았다. 과연 그럴까. 우선 ‘왜가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했을 수 있지만’이라는 단서가 걸린다. 또 당시 일본학자들의 의견이 일본 정부나 학계의 공식 견해도 아니었다.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는 “그저 일부 학자들의 개인견해였을 뿐”이라 전했다. 임나일본부의 한반도 남부 경영설은 여전히 일본학계에서 통용되는 학설이며, 따라서 거의 모든 일본 역사교과서에 기술된 ‘임나일본부’는 일본의 역사인식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Posted by 이기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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